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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 주척(周尺)

주척은 전해지지 않은 지 이미 오래되어 논설이 분분한데, 오직 서진(西晉)의 순욱(荀勖)[1]이 주척을 상고하여 옛 유물로 견주어 본 설이 대부분 주척에 부합한다. 그러므로 《수서(隋書)》 <율력지(律曆志)>[2]에는 15가지 주척을 열거하면서 순욱의 주척을 기준으로 했다. 북송(北宋)의 정도(丁度)[3] 또한 “유흠(劉歆)[4]이 구리되[銅斛][5]를 주조할 때, 함께 주조한 착도(錯刀)[6]나 대천오십(大泉五十)[7]이라는 화폐들과 왕망(王莽)[8]이 천봉(天鳳) 연간[9]에 주조한 화포(貨布)나 화천(貨泉)[10]과 같은 종류의 화폐로 분(分)·촌(寸)을 견주어서 주척의 척도를 알 수 있다”[11]라 했다. 그 말이 순욱과 천년의 시간을 두고 부절을 맞춘 듯이 들어맞으니, 가장 근거가 있다. 지금 착도·화포·화천과 같은 종류의 화폐가 종종 우리나라로 흘러들어오는 경우가 있고, 명나라 주재육(朱載堉)[12]의 《율려정의(律呂精義)》[13]에 화포, 화천, 대천오십의 모양을 그린 그림이 있으며,[14] 근세 사람인 옹방강(翁方綱)[15]의《양한금석기(兩漢金石記)》[16]에도 후한(後漢) 건초(建初) 연간[17]의 동척도가 있다. 이 자료들을 모두 서로 참조하고 견주어서 주척의 원래 척도를 구하면 여러 학자들의 영향력 있는 설들을 모두 없애도 될 것이다. 주척은 구리로 주조해야 하지만 성천(成川)[18]에서 나는 옥돌로 만들기도 하고, 상아로 만들기도 한다.《금화경독기》[19]


2) 영조척(營造尺)

요즘 목수들이 쓰는 곱자는 대개 노반(魯般)[20]에서부터 전하여 당(唐)나라에 이르렀다. 당나라 사람들은 그 자를 ‘대척(大尺)’이라 불렀다. 이는 당나라 때부터 지금까지 쓰여져 ‘금척(今尺)’ 또는 ‘영조척(營造尺)’21이라 하니, 옛날에 말하던 ‘차공척(車工尺)’이다. 한방기(韓邦奇)[21]는 “금척 가운데 차공척만이 가장 표준에 가까우니, 모든 집에서 털끝만한 차이도 나지 않는다. 길이가 조금이라도 같지 않으면 수레가 다니기에 편리하지 않으니, 이를 누가 그렇게 만들었겠는가?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물려받아 자연스러워진 척도인 것이다.”[22]라 했다. 한방기가 말한 차공은 곧 노새수레를 만드는 장인이다. 옛말에 “문 닫고 수레를 만들어도, 문을 열고 나가 보면 바퀴간격이 맞아 떨어진다.”라 했으니 이 자의 정확함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자 가운데 가장 오래됐지만 항상 쓸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자 뿐이다.
【안 우리나라는 궤도를 통해 수레를 운행한 적이 없다. 이 때문에 지금 목수들의 영조척은 단지 집을 짓는 용도로 쓰이지만 지금 쓰이는 자 가운데에서 이 영조척이 가장 표준에 가깝다. 그렇다면 가령 털끝만한 차이가 있더라도 지금의 포백척(布帛尺)[23]처럼 심하게 어긋나지는 않는다. 중국 영조척의 길이는 명나라 보초(寶鈔)[24]에 박혀있는 검은 테두리 길이와 서로 같다. 주재육의 《율려정의》에 보초도(寶鈔圖)[25]가 있으니, 이를 살펴보면 중국 영조척의 길이를 구할 수 있다. 영조척을 구리로 주조하거나 상아로 만들어 집에 1개씩을 가지고 있다가 집을 지을 때마다 목수의 영조척과 기준을 맞춰야 한다.】《율려정의》[26]

3) 포백척(布帛尺)

우리나라의 포백척은 집집마다 길이가 달라 제멋대로여서 일정한 기준이 없다. 관동 삼척부(三陟府)[27]에 구리로 주조한 포백척이 있는데, 뒷면에 “정통(正統)[28] 11년 12월 상정 신조포백척(正統十一年十二月詳定新造布帛尺)”이라는 15글자가 있으니 곧 세종 때에 도량형 제도를 같게 한 것이다. 이 포백척을 영조척과 비교해 보면 포백척이 0.45척 길다. 포백척은 이 기준으로 쇠를 주물하여 은으로 눈금을 새기거나 또는 대나무로 만들어야 한다.《금화경독기》[29][30]

각주

  1. 순욱:?~289. 중국 위진(魏晉) 연간의 정치가. 처음에는 위(魏)에서 벼슬했다가 진(晉)에 들어가 후에 제북군공(濟北郡公)에 봉해졌다.
  2. 《隋書》 卷16 <律歷上> 第11 ‘審度’.
  3. 정도(丁度):930~1053. 북송의 관료 및 학자이다. 추밀부사(樞密副使), 참지정사(參知政事) 등을 역임하다가 해임된 뒤 관문전학사(觀文殿學事)를 지냈다. 음운학에 밝았으며 저서로 《집운(集韻)》, 《예부운략(禮部韻略)》 등이 있다.
  4. 유흠(劉歆):BC53?~BC23. 전한(前漢) 말의 유학자. 경서와 서지학에 밝았다. 왕망이 찬탈한 뒤 왕망을 죽이려 하다가 발각되어 자살했다.
  5. 구리되:구리로 만든 곡(斛)을 재는 용기이다.
  6. 착도(錯刀):한(漢)나라 때의 화폐이다.
    착도(《사고전서》).png
  7. 대천오십(大泉五十):한나라 때의 화폐. 왕망이 폐지했다.
    대천오십(《사고전서》).png
  8. 왕망(王莽):BC45~AD23. 전한 말의 정치가.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신(新)나라를 건국했다. 주(周)나라 때의 정책을 본떠 복고정책을 하였으나 내부의 반란과 외침이 지속되었다
  9. 천봉(天鳳) 연간:신(新) 왕망의 연호(14년~19년).
  10. 화포(貨布)나 화천(貨泉):왕망이 천봉 원년(14)에 주조한 화폐.
    화포(《사고전서》).png_화천(《사고전서》).png
  11. 유흠이……있다:《尙書通考》 卷4 “度”.
  12. 주재육(朱載堉):1536?~1610. 명나라의 황족으로 율수학(律數學)에 밝았다. 저서로 《악률전서(樂律 全書)》와 《율려정론(律呂正論)》, 《가량산경(嘉量算經)》, 《역산산차지법(曆算算差之法)》등이 있다.
  13. 율려정의(律呂精義):주재육의 음악이론서로, 악조의 기초가 되는 척도를 중심으로 연구했다. 《악률전서(樂律全書)》에 포함되어 있다.
  14. 율려정의……있으며:위 화폐들의 그림은 《악률전서》 권10 <율려정의내편> “審度” 제11에 있다.
  15. 옹방강(翁方綱):1733~1818. 청(淸)나라 때 금석학자. 금석, 보록(譜錄), 서화, 사장(詞章) 등에 정통했으며, 《사고전서》의 찬수관, 내각학사 등을 역임했다. 김정희(金正喜)의 금석학도 그에게 영향을 받았다.
  16. 양한금석기(兩漢金石記):전한, 후한의 금석문을 모아 고증한 서적. 옹방강이 저술했다.
  17. 건초(建初) 연간:후한 장제(章帝) 때의 연호(76~84년).
  18. 성천(成川):지금의 평안남도 성천군.
  19. 출전 확인 안 됨.
  20. 노반(魯般):?~?. 중국 노나라 사람. 공수반(公輸般)이 본명이라는 설도 있다. 운제(雲梯)를 만들어 유명해졌다.
  21. 한방기(韓邦奇):1476~1555. 명나라의 학자. 《원락지락(苑洛志樂)》, 《역학계몽의견(易學啓蒙意見)》 등을 저술했다.
  22. 금척은……것이다:《苑洛志樂》 卷1 “度”.
  23. 포백척(布帛尺):천의 길이를 재어 매매하거나 옷을 만들 때 썼던 자. 사진은 다음과 같다.
    포백척(국립민속박물관).png
  24. 보초(寶鈔):명나라 때의 지폐이다. 홍무 8년(1375) 대명보초(大明寶鈔)가 발행되어 명말까지 쓰였다.
  25. 보초도(寶鈔圖):《율학신설(律學新說)》에 수록되어 있다. 가장자리 좌우측 상단에 각각 보초 종이의 테두리[寶鈔紙邊] 라는 글이 있고, 테두리 안쪽으로 보초의 검은색 테두리[寶鈔黑邊] 라는 글이 있다. 보초의 검은색 테두리와 영조척의 길이가 일치한다.
    보초도(《사고전서》).png
  26. 《樂律全書》 卷22 <律學新說> “審度”. 해당 내용은 《율려정의》에 실려 있지 않다. 《본리지》에는 출전이 《율학신설》이라 되어 있으므로 오기라 생각된다.
  27. 삼척부(三陟府):지금의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28. 정통(正統):명(明)나라 영종(英宗)의 연호로 1435~1449년이다.
  29. 출전 확인 안 됨.
  30. 《임원경제지 섬용지(林園經濟志 贍用志)》3, 풍석 서유구 지음, 추담 서우보 교정,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풍석문화재단, 2017), 171~17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