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용지:건물 짓는 제도:흙손질: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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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2) 장벽[1]
집의 네 벽을 ‘장벽’이라 하는데, 우리나라의 장벽은 성글고 얇은 점이 몹시 걱정된다. 그 제도는 다음과 같다. 먼저 인박(引欂, 하인방)과 중박(中欂, 중인방)을 설치한다.【주추 윗부분에서 두 기둥 사이에 박(欂) 하나를 가로로 놓는 부재(部材)를 인박이라 하고, 기둥의 높이를 나누어 한가운데에 박 하나를 가로로 놓는 부재를 중박이라 한다.】 【안 박(欂)은 벽대(壁帶)로, 음이 박(博)이다. 지금 사람들이 중박을 중방(中枋), 인박을 인방(引枋)으로 부르는데, 이는 음이 와전 되어 그런 것이다.[2]】 그런 다음 ‘가시새[棘塞]’[3]를 박는다.【들보[4]에서 중박까지와 중박에서 인박까지, 모두 가는 나무줄기를 0.7~0.8척 간격으로 수직 방향으로 세워 박는데, 민간에서는 이를 ‘가시새’라 한다.】
손가락 굵기의 물푸레나무 가지【싸리나무나 기타 잡목도 모두 괜찮다.】를 가시새에 의지해 가로세로로 얽어 마름모 모양을 만들고 이를 새끼줄로 단단히 묶는다.[5] 그런 뒤에 누런 찰흙 반죽으로 그 속을 먼저 흙손질하고 다 마르기를 기다려 그 바깥과 합쳐 흙손질한다. 안팎의 반죽이 모두 마르면 새벽흙에 말린 말똥을 개어 그 위에다 얇게 흙손질한다. 이것이 우리나라 장벽의 제도이다.
마름모 모양의 크기가 하나라도 고르지 않으면 바른 흙이 울퉁불퉁 고르지 않고, 새끼줄이 썩어 물푸레나무 가지가 들뜨면 온 벽이 모두 헛된 공간만 차지하게 된다. 또 흙이 마르고 나무가 수축하면서 벽과 기둥이 서로 분리되면 벽의 사방 경계에 금이 가서 새어 들어오는 바람을 막지 못한다.
게다가 벽 말릴 때 허송세월하는 일이 가장 걱정된다. 수십 일 해가 쨍쨍하지 않거나 건조한 바람이 불지 않으면 벽이 쉽게 마르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 몹시 서두르다 일을 허술하게 하여 안팎의 벽이 다 마르기를 기다리지 않고 급히 새벽흙을 흙손질하면, 도배지에 곰팡이가 슬면서 벽도 따라서 깎여 떨어져 나간다.
또 벽 두께가 몇 치를 넘지 않으니 바람이나 한기가 쉽게 들어온다. 솜옷이 꺾일 정도의 혹독한 추위 때마다[6] 방 안의 온기와 밖의 냉기가 서로 부딪히면 창과 벽 위에 서리나 얼음이 맺히게 되는데, 이것이 녹을 때 벽에 바른 종이도 녹아 풀어지면서 벽도 따라서 깎여 떨어져 나간다.
간혹 기와 조각과 부순 자갈을 진흙 반죽과 섞어 쌓아 올리기도 하는데, 이를 ‘화방벽(火防壁)’이라 한다. 흙벽에 비해 상당히 바람을 잘 막을 수 있으나 진흙 반죽의 두께가 손가락 길이 남짓하여 벌레나 쥐가 구멍 뚫는 사태를 막지 못하기 때문에 온돌 근처에 이런 구멍이 하나라도 있으면 순간적으로 쉽게 불을 끌어들인다. 인가의 화재[7]는 대부분 이곳에서 일어나니 역시 좋은 방법이 아니다.
내 생각에 방의 제도는 쉽게 갑자기 바꿀 수는 없지만, 동・서・북 삼면은 대략 캉 제도를 본받아 벽돌로 장벽을 쌓고 둥근 창을 내야 한다. 남쪽 칸은 창 낼 곳이 많아 벽돌로 쌓을 수 없다. 그렇다면 창턱 아래는 지금의 풍속대로 나무 난간【민간에서는 ‘머름[末蔭]’[8]이라 한다.】을 설치하고, 창 좌우 및 윗벽은 모두 나무판으로 촘촘히 배열하여 벽을 만든다. 벽 가운데에는 가는 나무막대를 가지고서 가로·세로로 격자창을 만들고 지금의 장지문[9] 만드는 법처럼 두꺼운 창호지로 바르면, 방풍과 제습 효과가 흙벽보다 훨씬 좋다.《금화경독기》[10]

각주

  1. 장벽(墻壁):본래 담과 벽을 아울러 말하는 담벼락이라는 뜻이나, 여기서는 방의 벽을 가리킨다고 서유구가 명시했기에 풀지 않고 용어로 남겨 둔다. 담장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소개한다.
  2. 중방과 인방에 대해서는 ‘벽대’에 관한 주를 참조 바람.
  3. 가시새[棘塞]:사전에서는 벽 바탕을 붙이기 위하여 기둥이나 중깃에 작은 구멍을 내어서 건너지른 수평재를 말한다고 풀이했으나, 여기서는 가로 방향이 아니라 세로 방향으로 박는다고 했다.
  4. 들보:원문의 ‘棟梁’을 옮긴 말이다. ‘棟梁’은 본래 ‘마룻대와 들보’라는 뜻이나, 여기서는 들보로 이해해야 한다.
  5. 이때 세로로 얽은 나무를 ‘설외’(또는 선외, 세로외)라고 하고, 가로로 얽은 나무를 ‘누울외’(또는 가로외, 누운외)라고 한다.
  6. 솜옷이……때마다[每當折綿之威]:혜홍(惠洪, 1071~?)의 시에 “차가운 서릿바람에 솜옷이 꺾이고 뺨이 다 어는데, 사람 없는 긴 회랑에는 잎사귀만 휘날리네.(霜威折綿寒入頰, 長廊無人風卷葉)”라는 구절이 있다.
  7. 화재:원문의 ‘회록지재(回祿之災)’를 옮긴 것으로, ‘회록(回祿)’은 불을 관장하는 신이다.
  8. 머름[末蔭]:창 밑의 하인방과 창턱 사이에 머름동자를 세우고 널(머름착고판)로 막아 댄 부분. ‘遠音(머름)’이라고도 쓴다.
    머름 부분
  9. 장지문:아래 ‘장지문’ 조목 참조.
  10. 《임원경제지 섬용지(林園經濟志 贍用志)》1, 풍석 서유구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옮김(풍석문화재단, 2016), 129~1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