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용지:건물 짓는 제도:몸채와 곁채의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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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 중국의 제도
중국의 건물 제도는 모두 ‘일(一)’자 형태여서 구부러져 꺾이거나 건물끼리 딱 붙어 있지 않다. 건물 안쪽을 기준으로 첫 번째 건물이 내실(內室)이고, 두 번째 건물이 중당(中堂), 세 번째 건물이 전당(前堂), 네 번째 건물이 외실(外室)이다.[1] 이 몸채마다 앞에 좌우의 ‘곁채’가 있는데,이것이 낭(廊)・무(廡)・요(寮)・상(廂)이다.[2] 몸채마다 한가운데의 1칸은 출입문이어서 반드시 앞뒤를 바로 마주 볼 수 있게 해 놓았기에, 건물이 3겹, 4겹이면 문은 6겹, 8겹이다. 문을 활짝 열어 놓으면 내실의 문에서 외실의 문까지 한눈에 관통하여 그 곧음이 화살과 같다. 그러니 이른바 “겹문을 활짝 열어 놓으니 내 마음이 이와 같도다.”[3]라는 말은 마음이 바르고 곧음을 비유한 것이다.《열하일기》[4][5]

2) 우리나라의 제도
중국 건물 제도는 모두 각각이 일(一)자 형태로 만들어져 서로 이어지지 않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몸채인 방(房)과 ‘마루[堂]’[6]에 곁채인 상(廂)이나 무(廡)가 빙 둘러 이어지고, 용마루와 처마,[7] 마룻대와 서까래가 구부러져 꺾이면서 딱 붙어 있어 집의 모양이 구(口) 자나 왈(曰) 자, 또는 ‘ㄱ’ 자 둘이 마주하기도 한다(ㄴㄱ).
나는 그 결점이 6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집의 용마루가 구부러져 꺾인 곳은 ‘기왓고랑[瓦溝]’[8]의 물길이 서로 만나는 곳인데, 깔아 놓은 암키와[鴦瓦][9]가 얕고 좁아 쉽게 넘친다. 지붕이 새고 마룻대가 썩는 문제가 대부분 이곳에 있으니, 그 결점이 첫째이다.
구(口) 자 모양의 건물 안이 마당인데, 마당이 좁은 데다가 집 그늘이 서로 가려 곡식이나 과일을 햇볕에 말리는 데 모두 불편하니, 그 결점이 둘째이다.
사방 처마의 낙수가 모두 마당으로 모이지만, 배수되는 곳은 문과 행랑채의 섬돌[10] 밑에다 보이지 않는 구멍과 작은 도랑을 만든 데에 불과하다. 이런 것들은 움푹 꺼져서 좁아지거나 모래나 진흙에 막혀 폭우라도 한번 오면 마당에 물이 흘러넘치니, 그 결점이 셋째이다.
건물이 이미 사방으로 둘러 있으니 바람 통할 곳이 없다. 이 때문에 조석으로 밥 짓는 연기가 처마의 서까래와 창과 벽 사이를 빙빙 돌면서 그을음과 연기로 더럽고 거무스름하게 온통 옻칠해 놓은 집처럼 만드니, 그 결점이 넷째이다.
불을 끄는 방법은 물을 퍼다 붓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쇠갈고리와 기타 연장으로 마룻대와 지붕을 무너뜨려 더 이상 번지지 않게 해야 한다. 중국의 건물 제도에서 건물들이 붙어 있게 짓는 방식을 꺼리는 이유는 대개 불을 걱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몸채와 곁채가 하나의 건물로 합쳐져 있기 때문에, 비록 수백 개의 쇠갈고리가 있다 해도 건물을 끌어 당겨 무너뜨리는 방법은 사용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한 귀퉁이에서 불이 나도 집 전체가 다 타게 되니, 그 결점이 다섯째이다.
집을 지을 때는 먼저 안팎을 구분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서울 안의 권문세가에서는 제아무리 크고 좋은 집이라도 종종 바깥채와 안채가 서로 이어지는 구조를 편하게 여긴다. 장마 때면 맨발로 드나들고, 심하면 창문이 마주하여 안채의 소리가 바깥채까지 들리니, 그 결점이 여섯째이다.《금화경독기》[11]

그러나 중국 북방은 들판이 평평하고 넓어 비록 시골의 민가라 해도 그들 모두 차지할 수 있는 땅이 광활하다. 그러므로 일(一)자로 된 집을 3겹, 4겹으로 지을 수 있다. 반면 남방의 경우는 산이 가파르고 물이 굽이져 흐르므로 그 사이의 빈터를 따라 집을 지어야 하기 때문에, 건물 제도가 구부러져 꺾이거나 붙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천공개물(天工開物)》이나 《고금비원(古今秘苑)》에는 모두 ‘고랑기와[溝瓦]’를 논한 곳이 있다. ‘고랑기와’는 바로 지붕이 만나 고랑을 이루는 곳에서 낙숫물을 받는 기와이다. 여기서 남방의 집 제도에도 구부러져 꺾이는 곳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우리나라의, 네 귀퉁이가 구부러지고 꺾여 구(口) 자 형태를 이루는 제도와 다를 뿐이다.
일반적으로 집을 지을 때는 지세(地勢)에 따라야 한다. 예를 들어 평평하고 넓은 땅을 얻었을 경우 몸채와 곁채가 딱 붙지 않으면 참으로 좋다. 어쩔 수 없이 구부러져 꺾이게 지을 수밖에 없다면, ‘고랑기와’에 특별히 유의하여 많은 빗물을 받더라도 넘치거나 새지 않도록 해야 된다.《금화경독기》[12]

각주

  1. 중국의……외실(外室)이다:중국의 전통 주택은 주 건물이 종축선 상에 차례로 배열되고, 좌우를 건물로 막아 그 사이에 마당을 만든다. 이렇게 마당을 중심으로 건물들이 둘러싸며 배치되기 때문에 사합원(四合院)이라 하는데, 마당의 개수에 따라 1진원(一進院), 2진원(二進院) 등으로 부른다. 본문에서는 4개의 건물을, 제일 깊숙한 곳에서부터 밖으로 나오며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평균적인 3진원 또는 4진원 규모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중국 북경 지역의 사합원(3진원)의 모습
  2. 낭(廊)・무(廡)・요(寮)・상(廂):낭(廊)은 지붕이 있는 통로의 총칭이다. 독립적으로 건축하기도 하는데, 주거건축에서는 대개 건축물 앞의 처마 밑 공간을 지칭한다. 무(廡)는 주위를 두르는 건축물을 말하지만 낭과 통용된다. 상(廂)은 주 건물의 앞에서 좌우로 대칭되는 건축물을 말한다. 요(寮)는 상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된다.
  3. 겹문을……같도다:송(宋) 태조(太祖) 조광윤(趙光胤, 927~976)의 말로, 원문과 유사한 내용의 글이 여러 문헌에 전한다. “변경에 신궁이 완성되었다. 정전에 납시어 앉아 겹문을 활짝 열도록 하고 좌우의 신하들에게 말했다. ‘이것은 내 마음과 같으니, 조금이라도 사심이 있다면 사람들이 다 알 것이다.’(汴京新宮成. 御正殿坐, 令洞開諸門, 謂左右, 曰:“此如我心, 少有邪曲, 人皆見之.”)” 《宋史》 卷3 〈本紀〉 第3.
  4. 《熱河日記》 〈渡江錄〉 “六月二十八日”.
  5. 《임원경제지 섬용지(林園經濟志 贍用志)》1, 풍석 서유구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옮김(풍석문화재단, 2016), 93~94쪽.
  6. 마루[堂]:중국의 용례와 차이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당(堂)은 대개 마루 혹은 대청의 의미로 사용한다
  7. 처마:외벽면의 바깥으로 돌출시켜 내민 지붕의 부분. 비바람이나 햇빛을 막는 구실을 함.
  8. 기왓고랑[瓦溝]:기와집 지붕에 빗물이 흘러내리도록 된 고랑
  9. 암키와[鴦瓦]:기와로 지붕을 이을 때 고랑이 되게 젖혀 놓는 기와이다. 앙와(仰瓦), 여와(女瓦)라고도 한다.
  10. 섬돌: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돕기 위한 중간 단계의 돌.
  11. 《임원경제지 섬용지(林園經濟志 贍用志)》1, 풍석 서유구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옮김(풍석문화재단, 2016), 94~96쪽.
  12. 《임원경제지 섬용지(林園經濟志 贍用志)》1, 풍석 서유구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옮김(풍석문화재단, 2016), 96~9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