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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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안녕하세요 추서호입니다. 수원박물관 박유명초상화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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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명朴惟明(1582~1640)은 본관이 상주尙州로 1620년(광해군 12)에 무과에 급제하여 서산군수로 관직을 시작하였다. 1623년(인조 1)에 인조반정에 참여하였으며, 그 뒤 당상선전관堂上宣傳官을 거쳐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하였고, 사후 공조판서工曹判書에 추증되었다. 이 초상화는 인조반정에 참여한 공으로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에 책록 되었을 때 공신상이다. 오사모에 구름무늬가 없는 단령을 입은 채 공수拱手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으로 17세기의 전형적인 공신상 양식을 보여준다. 낮은 오사모 아래에는 붉은 선묘로 얼굴윤곽이 묘사되어 있고, 미간의 가는 세로 주름과 광대뼈가 두드러진 얼굴표현에서는 신중함과 더불어 무관다운 용맹함이 잘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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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수원 영동시장 싸전거리에서 이귀성씨가 '화춘옥'이라는 간판을 걸고 시작한 것이 '수원갈비'의 시초였다. 처음에는 해장국을 시작하면서 해장국에 갈비를 넣어주는 것으로 시작을 하다가 갈비에 양념을 해 구운 것을 팔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유명인들이 화춘옥을 찾아오면서 수원갈비는 더욱 유명해 지고 수원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수원갈비는 1985년 4월 12일 수원시 고유 향토음식으로 지정되었다. 수원에서 갈비가 유명해지게된 역사적 유래는 수원에는 예전부터 큰 소시장이 있었다고 전한다. 정조 때 수원 화성을 건설하면서 많은 인부와 사람들이 수원으로 모여들었고, 당시 수원은 농업이 발달된 곳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농자천하지대본이 나라의 근간이 되는 정책이었고 따라서 농업생산에 큰 역할을 하는 소를 함부로 도축하지 못하게 하였다. 하지만 수원은 화성을 건설하면서 예외적으로 소의 도축이 허용되었고 소를 이용한 음식도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다양하게 발전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수원 이외 왕릉이 있는 주변에는 해마다 제사가 있어 쇠고기 음식이 발달한 곳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수원갈비는 수원의 향토음식으로 가장 유명하고 전국 곳곳에 수원갈비라는 간판을 내건 식당들이 많다. 갈비는 만드는 과정은 먼저 갈빗대 옆에 붙어 있는 도톰한 살을 한쪽부터 얇게 편다. 먼저 갈빗대 쪽에서 바깥쪽으로 칼을 넣어 저민 후 뒤집어서 저미고 2번 정도 반복하여 끝까지 잘 편다. 반대쪽에 붙어 있는 살도 갈비를 앞뒤로 뒤집어가며 끝부분까지 얄팍하게 편다. 분량의 양념이 고루 베도록 주물러서 양념을 한다. 양념한 갈비를 한쪽부터 잘 펴가면서 칼끝으로 잔칼질한다. 고기의 결이 수직이 되게 하면 힘줄이 끊어져서 너덜너덜 해지므로 평행이 되게 잔칼질을 한 후 이틀 정 [네이버 지식백과] 수원갈비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