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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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재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12월 12일 (토) 00:3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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謝 恩于大內。是日陰。丑時。李翔自其家來謂臣曰。你今具冠服。入朝謝 恩。不可緩也。臣指頭上喪冠曰。當此喪。衣夫錦戴紗帽。於心安乎。翔曰。你在殯側。則爾父爲重。今在于此。知有 皇帝而已。 皇帝有恩。若不往謝。大失人臣之禮。故我中國禮制。宰相遇喪。 皇帝遣人致賻。則雖在初喪。必具吉服。馳入 闕拜謝。然後反喪服。蓋以 皇恩不可不謝。謝之則必於 闕內。闕內不可以衰麻入。此嫂溺援手之權也。你今從吉。事勢然也。臣曰。昨日受賞之時。我不親受。今謝 恩之時。亦令從吏以下往拜若何。翔曰。受之之時。無拜禮節次。雖代受可也。今則禮部,鴻臚寺。俱議你謝 恩事。已入奏云。朝鮮夷官崔溥等云云。你爲爾等之班首。其可安然退坐乎。臣不得已率程保等。從李翔步至長安門。猶不忍穿吉服。李翔親脫臣喪冠。加以紗帽曰。若國家有事。則有起復之制。汝今自此門。吉服而入。行謝禮畢。復出此門時。還服喪衣。只在頃刻間耳。不可執一無權也。時皇城外門已啓鑰。常參朝官。魚貫而入。臣迫於事勢。服吉服入 闕。過一層門,二層二大門而入。則又有二層大門。乃午門也。軍威嚴整。燈燭煇煌。李翔坐臣於中庭。有頃。擊鼓於午門之左訖。撞鍾於午門之右訖。三虹門洞開。門各有二大象守之。其形甚奇偉。昧爽。朝官以次列班於門前。李翔引臣齒於朝班。又引程保等別作一隊。序於國子監生員之後。五拜三叩頭後。出自端門。又出承天之門。門在大明門之內。又東出長安左門。復穿喪服。過長安街。還于玉河館。李孝枝,許尙理,權山等。皆帶 賞賜衣袴。來謁于臣曰。前此旌義人從李縣監暹。亦漂到于此。 皇帝無賞賜之恩。今我等從行次來。特蒙此不意之賞。展拜於皇帝之前。得非幸歟。臣曰。夫豈偶然哉。賞者。賞有功也。汝等有何功於大國乎。漂死復甦。生還本國。 皇帝之恩。亦已極矣。況又以汝賤陋。得入彤闈。受此賞賜。汝等其知之乎。 帝之撫我賞我。都是我 王畏天事大之德。非汝等所自致。汝其勿忘我 王之德。勿輕帝賜。勿壞勿失勿賣。以爲他人之有。使汝子孫世守。永爲寶藏也。



대궐에서 황제의 은혜를 사례했습니다.

이 날은 흐렸습니다.

축시(丑時)에 이상이 자기 집으로부터 바로 신에게 와서 말하기를,

“당신은 지금 관복을 갖추고 입조하여 황은에 사례해야 하니 지체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머리 위의 상관(喪冠)을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친상을 당하여 비단옷을 입고 사모(紗帽)를 쓰는 것이 마음이 편하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당신이 빈소 곁에 있다면 당신의 아버지가 중하지만, 지금은 이곳에 있으니 황제가 계심을 생각할 따름입니다. 황제의 은혜가 있는데 만약 가서 사례하지 않는다면 인신(人臣)의 예절을 크게 잃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국의 예제는 재상이 친상을 당할 적에 황제께서 사람을 보내어 부의(博儀)를 보내시면, 비록 초상 중에 있더라도 반드시 길복을 갖추고 달려가 대궐에 들어가 사례하고 난 후에 상복을 도로 입습니다. 황제의 은혜는 사례하지 않을 수 없으며, 사례한다면 반드시 대궐 안에서 해야 하고, 대궐 안은 상복 차림으로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형수가 물에 빠지면 손을 잡아 꺼내주는 권도(權道)입니다.

당신이 지금 길복을 갖춰야 함은 상황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어제 상을 받을 때 내가 친히 받지 않았으니 지금 사은(謝恩)할 때도 따라온 아전 이하로 하여금 가서 배례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상을 받을 때는 배례하는 절차가 없으니 비록 대신 받아도 되지만, 지금은 예부와 홍려시가 함께 당신의 사은할 일을 의논한 뒤 상주하여 조선의 관원 최부 등 운운하였습니다. 당신은 당신들의 우두머리로서 어찌 태평스럽게 물러나 앉아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신은 마지못해 정보 등을 거느리고 이상을 따라 걸어서 장안문까지 이르렀으나 그래도 길복을 차마 입지 못하였습니다. 이상이 몸소 신의 상관(喪冠)을 벗기고 사모를 씌우며 말하기를,

“국가에 일이 있으면 기복(起復)하는 제도도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이 문에서부터 길복을 입고 들어가 사은하는 예를 마치고 다시 이 문을 나올 때 다시 상복을 입게 되면 그 시간은 잠깐 사이일 뿐이니 한 가지에만 집착하여 권도가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 황성(皇城)의 바깥문이 열려, 상참(常參)하는 조관(朝官)들이 죽 늘어서서 들어갔습니다.

신은 사세에 몰려 길복을 입고 대궐에 들어갔습니다.

1층 문과 2층 두 대문을 지나서 들어가니 또 2층 대문 이 있었는데 바로 오문(午門)[1]이었습니다.

군대의 위용은 엄정하였고 등불은 휘황하였습니다.

이상이 신을 중정(中庭)에 앉혔습니다.

조금 있으니 오문의 왼쪽에서 북을 치고 오른쪽에서 종을 치자 홍문(肛門) 셋이 활짝 열렸습니다.

문마다 두 마리의 큰 코끼리가 지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기이하였습니다.

먼동이 틀 때 조관들이 차례대로 문 앞에 늘어섰습니다.

이상이 신을 인도하여 조관의 반열에 나란히 서게 하고 또 정보 등을 인도하여 별도로 1대(隊)를 만들어 국자감생(國子監生)의 뒤에 서게 하였습니다.

다섯 번 절하고 세 번 머리를 조아리고 난 뒤에 단문(端門)으로 나오고, 또 승천문(承天門)으로 나오니 승천문은 대명문(大明門)의 안쪽에 있었습니다.

다시 동쪽으로 장안좌문(長安左門)으로 나와서 다시 상복을 입고는 장안가(長安街)를 지나서 옥하관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효지, 허상리, 권산 등은 모두 상으로 하사받은 옷을 가지고 신에게 와서 말하기를,

“전에 정의(佐義) 사람이 현감(縣監) 이섬을 따라나섰다가 표류하여 이곳에 이르렀을 때는 황제께서 상을 내려주시는 은혜가 없었는데, 지금 우리들은 행차를 따라왔다가 특별히 이런 뜻밖의 상을 받고 황제의 앞에서 절을 하게 되었으니 행운이 아니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어찌 우연이겠는가? 상이란 것은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너희들은 대국에 무슨 공로가 있는가? 표류되어서 죽을 뻔하다가 다시 소생하여 살아서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황제의 은혜는 이미 지극하다. 하물며 또 너희들의 비천한 신분으로서 황궁에 들어가 이런 상을 받게 되었음에랴! 너희들은 알고 있는가? 황제께서 우리를 어루만져주시고 상을 내리시는 것은 모두가 우리 임금께서 하늘을 두려워하여 사대를 하신5 덕택이지 너희들이 스스로 가져온 것이 아니다. 너희들은 우리 임금의 덕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황제의 상을 가벼이 여기지 말아야 할 것이니 이를 손상시키거나 잃어버리지 말고, 팔아서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지 않도록 하며, 너희 자손으로 하여금 대대로 지키도록 하여 영원히 간직하는 보물로 삼아라” 라고 하였습니다.




20th Day. Acknowledging Graciousness in the Palace. This day was cloudy.

Between 1 and 3 a.m. Li Hsiang came from his house and said to me, “You will now put on the hat and clothes, go into Court, and acknowledge graciousness. You must not be slow.” I pointed to the mourning hat on my head and said, “in my mourning, if I wear brocade and a light silk gauze hat, will I be easy in my heart?” Li Hsiang said, “If you were beside the coffin, your father would be important. Now you are here; know only that here is the Emperor. When the Emperor is gracious it is a great breach of ministerial courtesy if one does not go and thank him. That is why by our Chinese code of etiquette, if a prime minister goes into mourning and the Emperor sends a man with a funeral donation, though (the minister] is in deepest mourning, he must put on festive dress and hurry to the Palace to bow his thanks. Only after that may he change back to mourning dress.

“Imperial graciousness must be acknowledged. To acknowledge it, one must be inside the Palace. To get inside the Palace, one may not be in sackcloth. It is a matter of expediency, like giving a hand to a drowning sister-in-law. If you fall in with the festive mood now, you will be bowing to circumstances.” I said, “When the awards were received yesterday, I did not receive them personally. How would it be if now, at the time of the acknowledgement of graciousness, I again ordered my staff and those below them to go and bow?"

Li Hsiang said, “When you received the things, there was no elaborate series of bows, and it was all right to delegate someone. But now, the Ministry of Rites and the Court of State Ceremonial have discussed the matter of your acknowledging graciousness and have already put in a memorial that says, 'The Korean barbarian official Ch'oe Pu and others . . .'You are at the head of the list. Can you afford to be absent?”.

I could do nothing but lead Chòng Po and the others behind Li Hsiang and walk to Ch’ang-an Gate. Still, I could not bear to put on festive dress. Li Hsiang himself took off my mourning hat and put on a light silk gauze hat. Not only that, he said, “When state business comes up, there is a way to rise from mourning and return to duty. You will now go in through this gate in festive dress; when you have finished the rite of acknowledgement and left through this gate again, you will change back to mourning dress. It will be only for that short while. There can be no complete regulation without exceptions.”

By that time, the outer gates of the Imperial City had already been unlocked, and the ministers of daily attendance were entering in order. Compelled by circumstances, I put on festive dress and entered the Palace. We passed through a one-story gate and two large two-story gates. Then there was another big two-story gate, which was Wu Gate. Troops were drawn up smartly, lights burned brightly. Li Hsiang seated me in the central courtyard. Soon, drums were beaten at the left end of Wu Gate and bells struck at the right end. Three arched gates opened, and at each gate two big elephants stood on guard, their forms spectacular.

Just before daylight, the officials of the Court lined up by ranks in front of the gate. Li Hsiang led me to my place in the Court ranks and then led Chong Po and the others to form a separate group. They followed after the students of the National University.

After five genuflections with three kowtows each, we went through Tuan Gate and passed through the Gate of Ch'eng-t'ien, which was inside Ta-ming Gate. We went to the east, passing out through Ch’ang-an Gate again, and I put back on my mourning clothes. We passed Ch’ang-an Street and returned to Jade River House.

Yi 'lyo-ji, Hồ Sang-ni, and Kwon San came in the clothing that had been awarded them and visited me. They said, “Before this, men from Sõnŭi under Junior Director Yi Sõm also drifted here, but the Emperor did not graciously make awards. Next we come, and we alone receive these unexpected awards and bow before the Emperor. What good fortune we have had!”

I said, “Can it possibly have been by chance? An award is awarded for merit. What merit have you in China? Drifting to death you were saved and will be returned alive to your country; the Emperor has already been extremely gracious, the more so since you worthless bodies have been let inside the Vermilion Gate to receive those awards. Do you understand that? The Emperor's taking care of us and giving us awards are due to the virtue of our King, who fears Heaven and serves China, and not to you. Do not forget our King's virtue, do not treat Imperial gifts lightly. Neither damage them nor lose them; do not sell them to others. Let your descendants keep them as treasures forever.”




二十日

谢恩于大内。是日阴。丑时,李翔自其家来谓臣曰:“你今具冠服入朝谢恩,不可缓也。”臣指头上丧冠曰:“当此丧,衣夫锦,戴纱帽,于心安乎?”翔曰:“你在殡侧,则尔父为重,今在于此,知有皇帝而已。皇帝有恩若不往谢,大失人臣之礼。故我中国礼制,宰相遇丧,皇帝遣人致赙。则虽在初丧必具吉服驰入阙拜谢,然后反丧服。盖以皇恩不可不谢,谢之则必于阙内,阙内不可以衰麻入,此嫂溺援手之权也。你今从吉,事势然也。”臣曰:“昨日受赏之时,我不亲受。今谢恩之时,亦令从吏以下往拜若何?”翔曰:“受之之时,无拜礼节次,虽代受可也。今则礼部、鸿胪寺俱议,你谢恩事已入奏,云:‘朝鲜夷官崔溥等’云云。你为尔等之班首,其可安然退坐乎?”臣不得已率程保等从李翔步至长安门,犹不忍穿吉服。李翔亲脱臣丧冠,加以纱帽,曰:“若国家有事,则有起复之制。汝今自此门吉服而入,行谢礼毕复出此门时,还服丧衣。只在顷刻间耳,不可执一无权也。”时,皇城外门己启钥,常参朝官鱼贯而入。臣迫于事势,服吉服入阙,过一层门、二层二大门而入,则又有二层大门,乃午门也。军威严整,灯烛辉煌。李翔坐臣于中庭。有顷,击鼓于午门之左讫,撞钟于午门之右讫,三虹门洞开,门各有二大象守之,其形甚奇伟。昧爽,朝官以次列班于门前。李翔引臣齿于朝班,又引程保等别作一队,序于国子监生员之后。五拜三叩头后,出自端门,又出承天之门,门在大明门之内,又东出长安左门,复穿丧服,过长安街,还于玉河馆。李孝枝、许尚理、权山等皆带赏赐衣裤来谒于臣,曰:“前此旌义人从李县监暹亦漂到于此,皇帝无赏赐之恩。今我等从行次来,特蒙此不意之赏,展拜于皇帝之前,得非幸欤?”臣曰:“夫岂偶然哉?赏者赏有功也。汝等有何功于大国乎?漂死复苏,生还本国,皇帝之恩亦已极矣。况又以汝贱陋得入彤闱,受此赏赐,汝等其知之乎?帝之抚我赏我,都是我王畏天事大之德,非汝等所自致。汝其勿忘我王之德,勿轻帝赐,勿坏勿失勿卖以为他人之有,使汝子孙世守,永为宝藏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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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해록역주 p.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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