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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九日,至常州府,是日晴,請朝,無錫縣知縣,忘其姓名,來遺礙物,自驛過建渡橋,入無錫縣治之中,縣即古句吳太伯所都,過建虹橋、都憲門、少司寇弟、億豐橋、進士坊,至錫山之下,山縣西北間,又自錫山過十里鋪、高橋巡檢司、(藩)【潘]鋪、洛社鋪、石潭橋、横林鎮鋪、橫林橋、戚墅鋪、興明橋,至劍井,井在東岸,作屋以覆,即瑞氣升騰之地,日夕,過鷹鋪、大橋,至宋菱橋,橋之東西,皆作二層,閣以當路,即進士牌樓也,又過大虹橋三,至常州府,從東水關入城,府治及武(晉)進縣”之治,俱在城中,所過虹橋,亦至七八,行十餘里,至毗陵曝泊,又出自西水關,府即延陵郡吳季子采邑,湖山之美,亭臺之設,自古稱道,又過遞運所、沛河橋,至(牛)(牛)大壩,手牽舟上岸,繞度壩限,日曙矣, | 十九日,至常州府,是日晴,請朝,無錫縣知縣,忘其姓名,來遺礙物,自驛過建渡橋,入無錫縣治之中,縣即古句吳太伯所都,過建虹橋、都憲門、少司寇弟、億豐橋、進士坊,至錫山之下,山縣西北間,又自錫山過十里鋪、高橋巡檢司、(藩)【潘]鋪、洛社鋪、石潭橋、横林鎮鋪、橫林橋、戚墅鋪、興明橋,至劍井,井在東岸,作屋以覆,即瑞氣升騰之地,日夕,過鷹鋪、大橋,至宋菱橋,橋之東西,皆作二層,閣以當路,即進士牌樓也,又過大虹橋三,至常州府,從東水關入城,府治及武(晉)進縣”之治,俱在城中,所過虹橋,亦至七八,行十餘里,至毗陵曝泊,又出自西水關,府即延陵郡吳季子采邑,湖山之美,亭臺之設,自古稱道,又過遞運所、沛河橋,至(牛)(牛)大壩,手牽舟上岸,繞度壩限,日曙矣,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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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성명은 잊은 [https://www.google.com/maps/place/%EC%A4%91%EA%B5%AD+%EC%9E%A5%EC%91%A4+%EC%84%B1+%EC%9A%B0%EC%8B%9C+%EC%8B%9C/@31.4742581,120.1446243,10z/data=!4m13!1m7!3m6!1s0x35b38e5843e0a6a5:0xd536ed17c4fd3526!2z7KSR6rWtIOyepeyRpCDshLEg7Jqw7IucIOyLnA!3b1!8m2!3d31.491169!4d120.31191!3m4!1s0x35b38e5843e0a6a5:0xd536ed17c4fd3526!8m2!3d31.491169!4d120.31191 무석현(無錫縣)](无锡, Wúxī, 우시)<ref>[http://kr.people.com.cn/n3/2016/1104/c313143-9137247.html 주말에 장쑤 우시(無錫) ‘수향 골목’ 다녀오기]</ref><ref>[https://amkorinstory.com/2601 [중국 특파원] 장쑤성 우시(무석)로 떠난 여행]</ref><ref>[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jschina&logNo=221601516134 장쑤성 우시 둥린수위안]</ref><ref>[http://blog.daum.net/diverkorea/13745952 우시스튜디오]</ref><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EB%8F%99%EB%A6%BC%EB%8B%B9(%E6%9D%B1%E6%9E%97%E9%BB%A8) 동림당]</ref><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EC%A0%84%EA%B2%B8%EC%9D%B5(%E9%8C%A2%E8%AC%99%E7%9B%8A) 전겸익]</ref><ref>[http://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WDnJ&fldid=iBLm&datanum=112&q=%B9%DA%C1%F6%BF%F8%BF%A9%C0%DA%B8%EE%B8%ED%C0%CE%B0%A1&_referer=V7kfJwkeLEGMZxGlgqZEmZ5LeBDxE-YI7f38R4WGyA5WHXUCXu4wK7pN.A8aF7D.J3VU2mbkbxgk2RJDa7MbjOEX-Q3mea_S 동란섭필]</ref>의 지현244이 와서 찬거리를 주었습니다. | 아침에 성명은 잊은 [https://www.google.com/maps/place/%EC%A4%91%EA%B5%AD+%EC%9E%A5%EC%91%A4+%EC%84%B1+%EC%9A%B0%EC%8B%9C+%EC%8B%9C/@31.4742581,120.1446243,10z/data=!4m13!1m7!3m6!1s0x35b38e5843e0a6a5:0xd536ed17c4fd3526!2z7KSR6rWtIOyepeyRpCDshLEg7Jqw7IucIOyLnA!3b1!8m2!3d31.491169!4d120.31191!3m4!1s0x35b38e5843e0a6a5:0xd536ed17c4fd3526!8m2!3d31.491169!4d120.31191 무석현(無錫縣)](无锡, Wúxī, 우시)<ref>[http://kr.people.com.cn/n3/2016/1104/c313143-9137247.html 주말에 장쑤 우시(無錫) ‘수향 골목’ 다녀오기]</ref><ref>[https://amkorinstory.com/2601 [중국 특파원] 장쑤성 우시(무석)로 떠난 여행]</ref><ref>[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jschina&logNo=221601516134 장쑤성 우시 둥린수위안]</ref><ref>[http://blog.daum.net/diverkorea/13745952 우시스튜디오]</ref><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EB%8F%99%EB%A6%BC%EB%8B%B9(%E6%9D%B1%E6%9E%97%E9%BB%A8) 동림당]</ref><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EC%A0%84%EA%B2%B8%EC%9D%B5(%E9%8C%A2%E8%AC%99%E7%9B%8A) 전겸익]</ref><ref>[http://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WDnJ&fldid=iBLm&datanum=112&q=%B9%DA%C1%F6%BF%F8%BF%A9%C0%DA%B8%EE%B8%ED%C0%CE%B0%A1&_referer=V7kfJwkeLEGMZxGlgqZEmZ5LeBDxE-YI7f38R4WGyA5WHXUCXu4wK7pN.A8aF7D.J3VU2mbkbxgk2RJDa7MbjOEX-Q3mea_S 동란섭필]</ref>의 지현244이 와서 찬거리를 주었습니다. | ||
− | 석산역에서 건도교(建渡橋)를 지나 무석현치(無錫縣治)의 안으로 들어왔는데, 무석현은 곧 옛날 구오(句吳) 태백(太伯) | + | 석산역에서 건도교(建渡橋)를 지나 무석현치(無錫縣治)의 안으로 들어왔는데, 무석현은 곧 옛날 구오(句吳) 태백(太伯)이 도읍했던 '''곳'''이었습니다. |
− | 건홍교(建虹橋)·도헌문(都憲門)·소사구제(少司寇第) | + | 건홍교(建虹橋)·도헌문(都憲門)·소사구제(少司寇第)·억풍교(億豊橋)·진사방(進士坊)을 지나 석산(錫山)의 아래에 이르렀는데, 석산은 무석현의 서쪽과 북쪽 사이에 있었습니다. |
− | 또 석산에서 십리포(十里鋪)·고교순검사(高橋巡檢司) | + | 또 석산에서 십리포(十里鋪)·고교순검사(高橋巡檢司)·반봉포(潘q鋪)·낙사포(洛社鋪)·석독교(石潭橋)·횡림진포(橫林鎭鋪)·횡림교(橫林橋)·척서포(戚墅鋪)·흥명교(興明橋)를 지나 검정(劍井)에 이르렀습니다. |
검정은 동쪽 언덕에 있었는데 지붕을 만들어 덮었으니, 곧 상서로운 기운이 올라오는 곳이었습니다. | 검정은 동쪽 언덕에 있었는데 지붕을 만들어 덮었으니, 곧 상서로운 기운이 올라오는 곳이었습니다. | ||
− | 해질 무렵 마안포(行爲鋪) | + | 해질 무렵 마안포(行爲鋪) 대교(大橋)를 지나 채릉교(采__橋)에 이르렀습니다. |
채릉교의 동쪽, 서쪽에는 모두 2층 누각을 지어서 길을 막고 있으니 곧 진사패루(進士牌樓)였습니다. | 채릉교의 동쪽, 서쪽에는 모두 2층 누각을 지어서 길을 막고 있으니 곧 진사패루(進士牌樓)였습니다. | ||
− | 또 큰 홍교(虹橋) 셋을 지나 상주부에 이르러서 동수관(東水關) | + | 또 큰 홍교(虹橋) 셋을 지나 상주부에 이르러서 동수관(東水關)으로부터 성에 들어갔습니다. |
상주부의 부치와 무진현(武進縣)의 현치는 모두 성안에 있었습니다. | 상주부의 부치와 무진현(武進縣)의 현치는 모두 성안에 있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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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리를 가서 비릉역(此陵驛)에 이르러 조금 머물렀다가 다시 서수관(西水關)으로 나왔습니다. | 10여 리를 가서 비릉역(此陵驛)에 이르러 조금 머물렀다가 다시 서수관(西水關)으로 나왔습니다. | ||
− | 상주부는 곧 연릉군(延陵郡)이므로, 오나라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study0700&logNo=220935278322&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 계자(季子)]<ref>[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9672392&memberNo=17146883 계찰계검(季札繫劍)]</ref><ref>[http://www.hangyo.com/news/article.html?no=45703 <사자성어로 교육읽기> 계찰괘검(季札掛劍)]</ref>252의 채읍(采邑) | + | 상주부는 곧 연릉군(延陵郡)이므로, 오나라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study0700&logNo=220935278322&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 계자(季子)]<ref>[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9672392&memberNo=17146883 계찰계검(季札繫劍)]</ref><ref>[http://www.hangyo.com/news/article.html?no=45703 <사자성어로 교육읽기> 계찰괘검(季札掛劍)]</ref>252의 채읍(采邑)으로서, 호수와 산의 아름다움과 정(亭)과 대(臺)의 설치는 예로부터 명성이 자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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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체운소(遞運所)와 패하교(流河橋)를 지나 분우대파(奪牛大廟)에 이르러, 배를 당겨 매고 언덕으로 끌어올려 겨우 방죽의 끝을 지나니 날이 샜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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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th Day. Arrival at Ch’ang-chou Prefecture. This day was fai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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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10일 (목) 10:06 판
十九日,至常州府,是日晴,請朝,無錫縣知縣,忘其姓名,來遺礙物,自驛過建渡橋,入無錫縣治之中,縣即古句吳太伯所都,過建虹橋、都憲門、少司寇弟、億豐橋、進士坊,至錫山之下,山縣西北間,又自錫山過十里鋪、高橋巡檢司、(藩)【潘]鋪、洛社鋪、石潭橋、横林鎮鋪、橫林橋、戚墅鋪、興明橋,至劍井,井在東岸,作屋以覆,即瑞氣升騰之地,日夕,過鷹鋪、大橋,至宋菱橋,橋之東西,皆作二層,閣以當路,即進士牌樓也,又過大虹橋三,至常州府,從東水關入城,府治及武(晉)進縣”之治,俱在城中,所過虹橋,亦至七八,行十餘里,至毗陵曝泊,又出自西水關,府即延陵郡吳季子采邑,湖山之美,亭臺之設,自古稱道,又過遞運所、沛河橋,至(牛)(牛)大壩,手牽舟上岸,繞度壩限,日曙矣,
상주부(常州府) 도착하였습니다.
이 날은 맑았습니다.
아침에 성명은 잊은 무석현(無錫縣)(无锡, Wúxī, 우시)[1][2][3][4][5][6][7]의 지현244이 와서 찬거리를 주었습니다.
석산역에서 건도교(建渡橋)를 지나 무석현치(無錫縣治)의 안으로 들어왔는데, 무석현은 곧 옛날 구오(句吳) 태백(太伯)이 도읍했던 곳이었습니다.
건홍교(建虹橋)·도헌문(都憲門)·소사구제(少司寇第)·억풍교(億豊橋)·진사방(進士坊)을 지나 석산(錫山)의 아래에 이르렀는데, 석산은 무석현의 서쪽과 북쪽 사이에 있었습니다.
또 석산에서 십리포(十里鋪)·고교순검사(高橋巡檢司)·반봉포(潘q鋪)·낙사포(洛社鋪)·석독교(石潭橋)·횡림진포(橫林鎭鋪)·횡림교(橫林橋)·척서포(戚墅鋪)·흥명교(興明橋)를 지나 검정(劍井)에 이르렀습니다.
검정은 동쪽 언덕에 있었는데 지붕을 만들어 덮었으니, 곧 상서로운 기운이 올라오는 곳이었습니다.
해질 무렵 마안포(行爲鋪) 대교(大橋)를 지나 채릉교(采__橋)에 이르렀습니다.
채릉교의 동쪽, 서쪽에는 모두 2층 누각을 지어서 길을 막고 있으니 곧 진사패루(進士牌樓)였습니다.
또 큰 홍교(虹橋) 셋을 지나 상주부에 이르러서 동수관(東水關)으로부터 성에 들어갔습니다.
상주부의 부치와 무진현(武進縣)의 현치는 모두 성안에 있었습니다.
지나온 홍교 또한 7-8개나 되었습니다.
10여 리를 가서 비릉역(此陵驛)에 이르러 조금 머물렀다가 다시 서수관(西水關)으로 나왔습니다.
상주부는 곧 연릉군(延陵郡)이므로, 오나라 계자(季子)[8][9]252의 채읍(采邑)으로서, 호수와 산의 아름다움과 정(亭)과 대(臺)의 설치는 예로부터 명성이 자자합니다.
또 체운소(遞運所)와 패하교(流河橋)를 지나 분우대파(奪牛大廟)에 이르러, 배를 당겨 매고 언덕으로 끌어올려 겨우 방죽의 끝을 지나니 날이 샜습니다.
19th Day. Arrival at Ch’ang-chou Prefecture. This day was fair.
At dawn the County Magistrate of Wu-hsi County – I have forgotten his name - came and presented food to us. From the station we [continued on through Wu-hsi County and Ch’ang-chou Prefecture to Niu-pen Great Embank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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