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새 문서: 初二日,晴,朝至分水嶺,自嶺以北,地勢北下,豁豁諸水,俱會于泰子 河,西入于遼河,自嶺以南之水,俱會于八渡河,嶺之得名以此。至通遠堡,堡有...) |
(차이 없음)
|
2019년 10월 13일 (일) 00:57 판
初二日,晴,朝至分水嶺,自嶺以北,地勢北下,豁豁諸水,俱會于泰子 河,西入于遼河,自嶺以南之水,俱會于八渡河,嶺之得名以此。至通遠堡,堡有新·舊城,龍宰山當其後,前有龍宰河,西南有德山,又其南有飯 山,一名簽北山,又過李海市,里人曰:“昨夜,千戶馬牛忽所管護送軍人,先到于此,有虎攬傷所乘馬,自昔無此患,故過此者,皆山行野宿,今適有之,亦可畏也。”過斜哨屯河,時水漲湍急暴下,軍人高福者蹉跌赴流,吳鑒適浴,見其溺而援之,至李勝屯.
맑았습니다.
아침에 분수령(分水嶺)[1][2][3]에 이르렀습니다.
분수령 이북은 지세가 북쪽으로 내려가 골짜기의 여러 물이 모두 태자하(太子河)로 모여서 서쪽으로 요하(遼河)로 들어가고, 분수령 이남의 물은 모두 팔도하(八渡河)[4][5]로 모이니 '분수령'이란 고개이름을 얻은 것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통원보(通遠堡)[6][7][8]에 이르니 통원보에는 신성(新城)과 구성(舊城)이 있었습니다.
용봉산(龍峯山)은 그 뒤에 있고, 앞에는 용봉하(龍峯河)가 있었으며, 서남쪽에는 덕산(德山)이 있었습니다.
또 그 남쪽에 증산(山)이 있었는데 일명 옹북산(瓷北山)이라고도 하였습니다.
또 이해둔(李海屯)을 지나니 마을 사람이 말하기를,
“어제 밤에 천호 마총이 관할하는 호송 군인들이 먼저 이곳에 도착했는데, 타고 온 말을 호랑이가 잡아채서 상처를 입혔습니다. 예로부터 이런 걱정은 없었기 때문에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모두 산길을 걷고 들에서도 유숙했는데, 지금 마침 이런 일이 있으니 또한 두려운 일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초둔하(斜哨屯河)를 지나는데 마침 물이 불어서 물살이 급하였습니다.
군인 고복이란 자가 미끄러져 넘어져서 떠내려갔는데, 오새가 마침 목욕하다가 빠진 것을 보고 건져주었습니다.
이승둔(李勝屯)에 이르렀습니다.
2nd Day. Fair.
[We went from Watershed Range to Li-hai-t’un, where] a villager said, “Last night escort soldiers commanded by Chiliarch Ma Tsung came here ahead of you. A tiger seized and wounded one of the horses they had been riding. We have not had that trouble since long ago; that is why everyone who passed here would walk in the mountains and sleep out of doors. Now that this has happened, there is reason to be afraid again.” We passed the Hsieh-shao-t’un River. The water was then a flooding torrent, racing violently downstream. Ko Pok, a soldier, slipped and fell into the stream. Wu Hsi happened to be bathing and saw him drowning and rescued him.
We came to Li-sheng-t’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