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질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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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책

원나라가 고려를 꾸짖는 모습. *혹은 힐난하는 모습.

대동군부운옥

원나라 황제가 고려국의 사풍을 고치려고 하니 앞으로 일어난 일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이에 조인규가 홀로 말을 타고 원나라에 들어가 천자를 뵙고 의견을 명백하게 아뢰어, 옛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게 되었다.
충렬왕 때 원나라 사신 야율희일이 와서 대성전의 집이 좁고 매우 누추한 것이 반궁의 제도에 맞지 않는 것을 언급함에 왕이 유사에게 명하여 새로 중수하게 하였다.
유탁이 대산이 되었을 때 천제석이라 자칭하고 요망한 말로 군중을 미혹시키는 무당이 있었다.
유탁이 그를 매로 때리니, 원나라 사신이 유탁에게 말하기를 "옛날에 부인을 형벌한 사람이 있습니까?"하니, 유탁이 학식이 없어서 능히 대답하지 못하였다.
원나라 사신이 와서 충혜왕을 결박해 갔다.
숙주에 이르러 왕이 이불을 달라고 했는데, 숙주 수령 안균이 이불을 올리지 않았다.
원나라 사신이 안균에게 말하기를 "너의 임금이 추위가 두려워 이불을 달라고 하는데 네가 주지 않으니 신하의 의리에 있어 어찌된 것인가?"라고 하고서 쇠로 만든 자를 그를 쳤다.
충렬왕 17년에 거란병이 침략하여 북쪽 경계의 여러 성을 함락하였다.
오영인이 원나라에 들어가 황제에게 아뢰니 황제가 말하기를 "너의 나라는 당태종이 친히 정벌에 나서서도 쉽게 이기지 못하였는데 지금 이런 조그마한 나라의 침략을 어찌 두려워할 것이 있는가?"라 하였다.
오영인이 말하기를 "고금의 성쇠가 같지 않습니다.
"하니 황제가 야전을 하라고 유시해주었는데 그에 따라 공격하여 드디어 물리쳤다.
원나라 사신 장수지가 우리나라에 와서 밀직사사 한희유에게 물어 말하기를 "추밀원은 지금 어떤 호칭으로 바뀌었습니까?" 하니 한희유가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또 묻기를 "그대는 어떻게 재상이 되었는가?" 하니 한희유가 "군공 때문이다"라 대답하였다.
이에 장수지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권의는 성격이 간사하고 아첨을 잘 하였다.
일찍이 경상도의 안렴사가 되어 가렴주구와 가혹한 형벌로 다시리니, 백성들이 매우 괴로워하였다.
원나라 사신이 경상도를 왕래하면서 이에 말하기를 "별감을 많이 파견하여 마음대로 가렴주구와 포확함을 숭상하며 형벌을 남용하여 속죄금을 과중하게 받음으로 인하여 죽는 백성들이 많다.
백성은 천자의 백성인데, 어찌 이런 지경에 이르게 하는가?"하였다.
김방경이 권의를 처벌하자 하였지만 왕이 들어주지 않았다.
고려 충렬왕 때에 합단이 침략하니 원나라 황제가 병사를 보내어 토벌했는데, 원나라 장수가 왕에게 말하기를 "왕이 친히 나가 도적을 막으소서." 하였다.
왕이 늙고 병든 것으로 사양하니, 원나라 장수가 말하기를 "이웃 사람이 잘못하여 불이 나도 오히려 가서 구제하는데, 하물며 자신의 일에 있어서 어찌 좌시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원나라 하간왕이 곽영석을 사신으로 보내왔다.
그가 문묘에 배알할 때 학사가 황폐하게 무너져 있었다.
곽영석이 관방에게 말하기를 "내 듣건대 당신네 나라는 예로부터 문을 숭상한다고 하던데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소?"라고 하였다.
원나라 황제가 고려 충혜왕을 게양에 귀양보냄에 황제가 왕에게 고하기를 "그대는 임금이 되어 백성에게 포학하니, 비록 그대의 피로써 천하의 개에게 먹게 하더라도 오히려 먹지 않으리라"고 하였다.

성호사설

충선왕(忠宣王)이 원(元)나라에 있을 적에 어떤 학사(學士)가 왕에게, “일찌기 듣건대, 왕의 선조가 당 숙종에게서 나왔다고 하니, 숙종이 언제 동방에 나가 놀았으며 아들까지 두게 되었었는가?”고 하였다.

<힐난하는 모습>

송남잡지

내용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