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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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불교, 유교.

대동운부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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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사설

원(元) 나라 세조(世祖)가 상문(桑門 불문(佛門))에 혹(惑)하여 중국의 도장(道藏)을 다 불태우고, 유ㆍ도(儒道) 두 교를 물리쳐 외학(外學)으로 삼으며, 공자를 낮추어 중현(中賢)이라 하고, 상문을 높이어 정도(正道)라 하였다.
명 나라는 오랑캐인 원(元) 나라의 뒤를 이었는데, 오랑캐는 불교(佛敎)와 풍속이 같았으므로 주전선(周顚仙) 장삼반(張三半) 냉겸(冷謙)의 무리들이 분운(紛紜)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불가(佛家)의 여래(如來)가 현상(現象)한다는 것 같은 것도 모두 귀신의 환롱(幻弄)이다.
이에 앞서, 원 세조(元世祖)가 요승(妖僧) 상통(祥通)의 허황한 말을 듣고 유교(儒敎)와 도교(道敎)를 배척하는 한편, 공자를 중현(中賢)으로 강등시키고 불교[桑]를 높여 정도(正道)로 삼았다가, 성종이 즉위한 원년에 중외(中外)에 조서를 내려 공자를 높여 받들게 하고 위와 같이 시호를 더하였으니, 그 역량이 크다 하겠다.
거감주(居甘州)는 곧 서역(西域)에 있는 나라로서 불교를 신앙하는데, 파스파(巴思八)의 전한 바에 이미, “불교에 의거하여 몽고의 글자를 지어 원 나라 시대에 통용했다.
” 했으니, 공주가 사용한 문자는 이 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다면 지금의 언문과 모습은 다르지만 뜻은 같았을 것이다.
원(元) 나라 인종(仁宗) 때에 환관 이방녕(李邦寧)을 보내어 공자에게 석전(釋奠)을 올리게 하였는데, 갑자기 큰 바람이 대성전(大成殿)과 양무(兩廡)에 일어나 촛불이 모두 꺼지고 촛대 밑둥과 쇠술잔이 땅으로 떨어져 한 자쯤 들어가 뺄 수가 없었다.
경산(瓊山) 구준(丘濬)은 말하기를, “원(元)의 세조(世祖)가 유교(儒道)와 도교(道敎)를 내쫓고 전적으로 불교(佛敎)만을 숭상하며 공자를 낮추어서 중등의 현(賢)으로 만들었는데, 성종(成宗)이 비로소 성묘(聖廟)를 서울에 세웠다.
원사(元史)에는 이것을 휘(諱)했다.
” 하였지만, 그러나 원 나라 역사는 곧 명나라 사람이 편찬한 것이라 아마도 기휘(忌諱)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홀필렬(忽必烈) 때에 불법만을 숭상하고 선성(先聖)을 폄강(貶降)하여 중현(中賢)으로 삼고 사당도 밖으로 몰아내었다가, 성종(成宗) 때에 이르러 복원(復元)하였는데, 《원사(元史)》에는 그것을 기휘(忌諱)하고 있으나, 선성(先聖)을 모욕한 일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송남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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