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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디지털 인문학의 이해 중간고사
디지털 인문학에 대하여 본인의 생각을 서술하시오.
디지털 인문학(Digital Humanities)이란 정보통신기술(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방식으로 수행하는 인문학 연구와 교육 그리고 이와 관계된 창조적인 저작 활동을 일컫는 말이다.[1]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아카이브 구축을 보다 손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어떤 사실 혹은 지식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기록해오곤 했다. 팔만대장경, 직지심체요절,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등 목판, 금속 활자, 친필 등의 필요에 맞게 수단을 변경하여 기록을 이어갔다. 어떤 사실에 대해 연구하고 기록하고 아카이브하는 것. 그것을 이제는 디지털 세계 속에서 하는 것이다. 텍스트로만 이루어져 있던, 혹은 사진이 첨부되어 있던 정도의 아카이브에서 이제는 텍스트, 이미지, 음성, 동영상, 하이퍼링크 등의 모든 방식에서의 아카이브가 가능하게 되었다. 정보학과 인문학이 학문적 경계를 넘어 디지털 환경에서 통합하여 우리가 연구한, 보존하고 기록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학문 분야인 디지털 인문학으로 발전했다.
모든 자료가 정보화된 이 사회에서 우리는 정확한 자료만을 아카이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자료들의 아카이브는 국어학의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방언 자료들의 아카이브는 방언 지도 구축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국어 음성 언어 자료의 아카이브는 한국어 교육자들에게 정확한 발음을 알려줄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조선 왕조 실록 같은 역사적 자료들은 통시적 혹은 공시적 언어 자료의 말뭉치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학문 간의 경계에 구애받지 않는 융합적인 성격의 디지털 인문학은 통섭의 시작점이 될 수 있기에 앞으로도 꾸준히 연구되고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 중 1개를 선택하여 서술하시오.
덕수궁
덕수궁은 선조 임금이 선조 26년1593 10월 서울로 돌아올 때[2], 정릉동의 월산대군의 집을 행궁으로 삼으며”[3]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던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월산대군의 집은 왕의 거처로 삼기에 너무 작았기 때문에 주변의 집들을 순차적으로 궐내로 포함시키며 그 영역을 넓혀갔다.[4]
선조 승하 이후 광해군은 정릉동 행궁의 이름을 경운궁이라고 명명했다.[5] [6] 광해군은 창덕궁이 중건되었지만 이어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3년 반 동안 경운궁에서 머무르다 창덕궁으로 이어하였다.[7] 이후 1623년에 인조반정으로 인조가 즉위하였고[8] , 인조는 즉조당과 석어당을 제외한 나머지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었다.[9] 이 후 고종이 경운궁으로 환궁[10]하는 1897년까지 약 250년 동안 경운궁은 조선 역사에서 큰 기능을 하지 못했다.
고종은 헤이그 특사 파견으로 일본의 압박을 받아 퇴위하게 되었다.[11] 이후, 순종은 고종의 공덕을 칭송하는 궁호를 고종이 장수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덕수’로 칭하였다.[12] 순종이 창덕궁으로 이어하면서[13] 경운궁은 자연스럽게 고종의 궁호를 따 덕수궁으로 불리게 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에는 미군정의 사무소와 미소공동위원회의 회의장으로 석조전(石造殿)이 사용되었으며, 1948년에는 정부 수립과 광복 3주년을 기념하는 의식이 거행되는 등 정치의 중심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이후 경운궁은 덕수궁으로 통칭되며 시민공원으로 활용되거나 음악공연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석조전과 그 별관은 국립미술관, 궁중유물전시관 등으로 이용되면서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궁궐과 관련한 스토리텔링 주제 1개를 정해 서술하시오.
궁궐의 현판의 종류와 의미
우리의 옛 건축물들에는 대부분 건물의 특성을 나타내는 현판懸板이 걸려 있다. 수많은 전각들이 밀집되어 있는 궁궐은 현판의 경연장競演場이라고 할 정도로 각양각색의 현판들이 즐비하다. 궁궐의 현판은 해당 건축물의 기능이나 성격 등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아 궁궐의 문화를 이해하려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한다. 현판懸板이라는 용어가 일반화되어 있지만, 그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담고 있는 말은 편액扁額이다. 현판은 ‘글씨를 쓴 널빤지[板]를 걸었다[懸]’는 단순한 뜻이고, 편액은 ‘건물의 문 위 이마 부분에 써 놓은 글씨’라는 뜻이다. 편扁은 호戶와 책冊이 합쳐진 글자로 ‘문 위에 써 놓은 글’을 뜻하고, 액額은 이마라는 뜻이다.
궁궐의 현판은 건물의 용도와 성격에 맞추어 지은 것이 상당수인데, 대표적인 방법이 경전經典이나 기타 문헌에서 따온 것과 오행五行의 원리에 맞추어 지은 것이다. 물론 가장 많이 사용한 방법은 순수하게 글자의 의미를 조합하여 지은 것이다. 각 궁의 정문은 공통적으로 ‘화化’자가 들어간다. 경복궁의 광화문光化門, 창덕궁의 돈화문敦化門, 창경궁의 홍화문弘化門, 경희궁의 흥화문興化門이 그것이다.
이 정문의 이름과 긴밀하게 연관되는 것이 각 궁의 정전正殿 이름이다. 정전의 이름은 공통적으로 ‘정政’자가 들어간다. 경복궁은 근정전勤政殿, 창덕궁은 인정전仁政殿, 창경궁은 명정전明政殿, 경희궁은 숭정전崇政殿이다. 여기에는 유교 국가로서 조선의 정치 철학이 담겨 있다.
정전의 이름에 ‘정政’자가 들어간 것은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정문에 쓰인 ‘화化’자도 결국 바른 정치와 관련된 말로 연결지어 볼 수 있다. 지금은 잘 먹고 잘 사는 일에다 워낙 가치를 높게 두어서 경제 활동만 잘하면 된다는 식의 논리가 횡행하고 있지만, 유가적 관점에서의 정치는 먹고 사는 문제를 포함하면서도 그보다 먼저 올바른 인간으로 살아가게 하는 정신적인 교화敎化를 더 우선시하였다. 그래서 각 궁의 정문 이름에 교화를 뜻하는 ‘화化’자를 넣은 것이다.
또한, 주변을 돌아보면 동대문을 현판에 쓰인 대로 ‘흥인지문興仁之門’으로 부르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원 이름인 ‘흥인문’으로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속설에는 풍수지리에 따라 한양 동쪽의 지기地氣가 약하다고 하여 ‘지之’자를 넣어 보완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이름을 그렇게 고쳐 부른 것이 아니고 현판을 쓸 때 그렇게 했다는 말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고종 때까지 줄곧 속칭인 동대문으로 부르거나 원 이름인 ‘흥인문’으로 부른 예가 수백 개나 나타난다. ‘지之’자는 어조사로 넣어준 것이지 이름을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며, 한문에서는 이러한 용례가 흔하다.
궁궐은 우리 전통 문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궁궐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공간에서 생활했던 사람들의 생활사를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눈에 보이게 존재하는 유형의 문화재인 건축물 자체에 대한 이해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건축물에 대한 이해의 방편으로 각 건물의 이름이 새겨진 현판에 대한 이해가 첩경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하나의 기호로만 스쳐 지나가던 현판을 하나하나 관심을 가지고 해석해 보면 궁궐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국채보상운동 디지털 아카이브를 이용하고 개선점 및 오류 등을 5개 항목 이상 작성하시오.
- 의연금 검색 시스템 중 직업으로 검색하기[14] 부분에서 개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이트에는 ‘신분과 관계없이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한 인물을 이곳에서 찾아보세요’, ‘조직, 관직, 직업으로 세부 내용을 검색할 수 있습니다.’라고 적혀있지만 세부 탭에선 지역, 가족 정보확인 등 관련이 없는 항목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각 항목에 맞는 새로운 탭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 아카이브 검색 시스템 중 아카이브 검색하기 탭[15]에서 문집 항목을 선택해서 검색해보았더니 문집 자료들은 이미지가 없이 ‘상세보기’ 서비스만 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문집의 이미지나 원문을 볼 수 있도록 콘텐츠 혹은 링크를 추가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아카이브 검색 탭[16]의 상세 검색 항목에서 사진필름, 녹음동영상, 박물, 도면/지도, 기타를 선택 후 검색하면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라는 창이 나옵니다. 자료가 없는 항목은 상세 검색 탭에서 삭제하여 이용자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전문 검색 페이지[17]에서도 위와 같은 오류를 발견했습니다.
- 전문 검색 페이지[18]의 문서 유형 목록에서 연설문, 격려문, 발표문, 청구서, 임명장의 항목을 선택하고 검색을 하면 자료가 없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또한, 자료가 없는 항목들이므로 문서 유형 목록에서 삭제하는 것이 좋아보입니다.
- 아카이브 검색 페이지[19]에서 형태와 유형을 동시에 고르지 않고 유형만 고르고 검색하는 것에 오류가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형태를 고르지 않고 유형만 선택해서 검색을 할 시 처음 한 번만 검색이 되고 그 뒤 다른 유형을 골라서 검색을 할 시 검색이 되지 않습니다. 형태와 상관 없이 유형만 선택해서 검색을 하고 싶은 이용자들은 불편을 느낄 사항입니다.
- eBook 검색하기 페이지[20]에서 eBook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과 관련된 eBook을 검색할 수 있도록 정보 업데이트가 필요합니다.
- 이미지 클릭 시 보안 문서 변환 및 보안 뷰어 설치를 하라는 페이지가 뜹니다. 원본 이미지 이용 시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으므로 이미지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도록 새로운 항목을 만들어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참고문헌
홍순민, 『홍순민의 한양읽기 궁궐』, 눌와, 2017
김현, 「디지털 인문학: 인문학과 문화콘텐츠의 상생 구도에 관한 구상」, 『인문콘텐츠』 29, 2013. 6.
참고사이트
국채보상운동 디지털 아카이브
위키실록사전
문화재청
덕수궁관리소
각주
- ↑ 김현, 「디지털 인문학: 인문학과 문화콘텐츠의 상생 구도에 관한 구상」, 『인문콘텐츠』 29, 2013. 6.
- ↑ 『선조실록』 43권, 선조 26년 10월 1일 신사 2번째기사
- ↑ 『연려실기술』 제 17권 선조조고사본말
- ↑ 『선조실록』 43권, 선조 26년 10월 3일 계미 7번째기사
- ↑ 『광해군일기』 46권, 광해 3년 10월 11일 정축 1번째 기사
- ↑ 본래 흥경궁으로 명명하려고 했다가 전대의 궁호이기 때문에 경운궁으로 고쳐 썼다.
- ↑ 『광해군일기』 89권, 광해 7년 4월 2일 무인 1번째 기사
- ↑ 『인조실록』 1권, 인조 1년 3월 13일 계묘 1번째 기사
- ↑ 『인조실록』 2권, 인조 1년 7월 12일 경자 3번째 기사
- ↑ 『고종실록』 35권, 고종 34년 2월 20일 양력 1번째 기사
- ↑ 『고종실록』 48권, 고종 44년 7월 19일 양력 3번째기사
- ↑ 『순종실록』 1권, 순종 즉위년 8월 2일 양력 1번째기사
- ↑ 『순종실록』 1권, 순종 즉위년 11월 13일 양력 1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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