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원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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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thedh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4월 27일 (토) 00:47 판 (새 문서: {{표석정보 |사진=표석_홍제원 터_01.jpg |사진출처=2019년 4월 촬영 |표석명칭=홍제원 터 |한자표기=弘濟院 |영문명칭= |설치연도=1987년 |주소=...)
홍제원 터 (弘濟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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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석명칭 | 홍제원 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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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弘濟院 |
설치연도 | 1987년 |
주소 | 통일로 440-1(홍제동 161-1 도) |
표석 문안
여기서 약 50m 골목 안 홍제동 138번지 일원은 홍제원(1394~1895)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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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조사 및 분석
편년자료 및 고전번역서
『조선왕조실록』에는 명(明)으로 떠나는 사신을 홍제원에서 전송한 일 및 중국 사신이 모화관에 당도하기 전 홍제원에서 옷을 갈아입은 일, 혹은 이곳에서 쉬어가거나 묵은 일에 대한 기록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홍제원은 돈의문(서대문) 밖의 첫 번째 원(院)으로서 서북(西北) 제1로로 통하는 곳이므로, 서북쪽 외방과 도성 사이의 주요한 연결 지점이었다. 다음은 『조선왕조실록』의 홍제원 기사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명으로 보내는 사신을 이곳에서 전송한 일을 기록하고 있다.
아래는 중국 사신을 홍제원에서 접대한 기록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한편 홍제원은 홍제원 건물을 포함한 그 일대의 터 전체를 지칭하는 말이다. 넓고 평평한 땅이었기 때문에 여러 용도로 활용되었다. 세종 대에는 보제원(普濟院)과 이태원(利泰院) 외에 홍제원에도 진제장(賑濟場)을 추가로 설치하여 백성들을 구휼하게끔 하였다. 홍제원 터에 흙집을 지어 진제장으로 사용한 것이다. 세조, 성종, 중종, 현종, 숙종, 정조 대에도 홍제원 진제장을 확대하여 기민을 구휼한 일이 나온다. 서울 서북권의 교통의 요지로서 백성들이 쉽게 오갈 수 있는 곳으로서 진휼소를 운영하기 적합했기 때문이다. 아래는 세종 대의 홍제원 원사 확대에 관한 기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