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U이주은
창덕궁 소개 및 개요
태종이 1405년(태종 5) 한양으로 재천도하면서 정궁이던 경복궁에 들지 않고 경복궁 동편에 새로 이궁(離宮)을 세워 이름을 창덕궁이라고 하였다[1]. 역대 왕들이 다른 궁보다 이곳을 좋아하였으며 17세기 이후에 경복궁을 대신해서 정궁으로 사용했다. 동쪽에는 담을 사이에 두고 창경궁이 있어서 창덕궁의 부족한 공간을 채워 주었다. 조선후기에는 두 궁을 합해서 동궐(東闕)이라 불렀다.
창덕궁은 도성 북쪽 응봉에서 내려오는 경사진 지형을 살려 지세에 맞추어 건물들을 지었다. 따라서 전체 건물 배치는 좌우 대칭을 피하고 크고 작은 건물과 마당들이 불규칙하면서도 서로 연속성을 갖고 이어지도록 구성하였다. 넓은 숲으로 이루어진 창덕궁 후원은 인공을 최소화하고 자연 상태의 언덕과 골짜기로 만들어졌으며 곳곳에 정자와 샘물이 마련되었다. 후원은 창경궁에서도 함께 이용했다. 왕이 사랑한 정원, 창덕궁
구분 | 목록 | 한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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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 | 오제본기 | 五帝本紀 |
하제본기 | 夏帝本紀 | |
은본기 | 殷本紀 | |
표 | 10권 | |
서 | 8권 | |
세가 | 30권 | |
열전 | 70권 |
불완전한 창덕궁
오늘날의 창덕궁에 관한 간략한 설명, (미흡한 복원, 세간의 상식과 실제 궁궐 간 차이) 경희대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창덕궁과 동궐도
분류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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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회화 |
유형 | 문화재, 작품 |
시대 | 조선 |
지정기관 | 문화재청 |
지정부류 | 국보 |
지정번호 | 제249-1호 |
본궁인 경복궁 동쪽에 있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것으로 동궐도(東闕圖)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궁궐그림 2점이다. 크기는 가로 576㎝, 세로 273㎝로 16첩 병풍으로 꾸며져 있다. 오른쪽 위에서 비껴 내려 보는 시각으로 산과 언덕에 둘러싸인 두 궁의 전각과 다리, 담장은 물론 연꽃과 괴석 등 조경까지 실제와 같은 모습으로 선명하고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배경이 되는 산과 언덕에 대한 묘사는 중국 남종화의 준법을 따르고 있으나, 건물의 표현과 원근 처리에 있어서는 서양화 기법에 영향을 받은 듯하다. 또 다른 그림도 똑같은 형식과 기법, 크기를 하고 있으나 채색을 하고 검은 글씨로 건물의 명칭을 써 넣은 점이 다르다.
그림에 들어있는 건물들의 소실여부와 재건된 연대 등으로 짐작하여 순조 30년(1830년) 이전에 도화서 화원들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 두 점의 그림은 회화적 가치보다는 궁궐 건물 연구에 더 큰 의미를 갖고 있다. 평면도인 궁궐지나 동궐도형보다 건물 배치나 전경을 시각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어 고증적 자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창덕궁 구역 별 소개
- 건물의 위치, 만들어진 목적과 사용용도, 변질된 부분, 얽힌 일화와 역사 속 사건들을 중점으로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