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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인문학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서술하시오.

인문학 연구는 원래 문헌 자료 등을 주된 연구 대상으로 삼고 그 성과를 발표하는 방법도 서적의 출판 등의 종이 매체를 이용한 한정적이고 제한적인 영역 내에서 진행되고 있었으나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면서 인문학계에도 디지털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고문서와 같은 1차자료는 점차 디지털 아키이브로서 공유되기 시작하여 박물관이나 도서관 깊숙이 보관되어 평소에 보기 어려운 자료들도 인터넷을 통해 어디서든 접속할 수 있게 되었고 연구자가 아닌 일반 사람들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 인문학을 활성화되게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디지털 인문학은 ‘옛날 자료’를 다루기 위한 아날로그적 지식도 동반해야 하기 때문에 편리해진 면이 있는 이면에 그렇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 중 1개를 선택하여 서술하시오.

대상: 덕수궁

덕수궁의 궁궐로서의 역할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덕수궁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크게 두 차례 궁궐로 사용되었다. 덕수궁이 처음 궁궐로 사용 된 것은 임진왜란 때 피난 갔다 돌아온 선조가 머물 궁궐이 마땅치 않아 월산대군의 집이었던 이곳을 임시 궁궐로 삼으면서 부터이다. 왕이 머물던 곳이라 정릉동 행궁이라고 불렀고 행궁은 왕들이 임시로 머무는 궁을 말한다. 이후 선조에 이어 광해군이 왕위에 올랐는데,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정릉동 행궁에 새 이름을 붙여 경운궁이라고 불렀다. 경운궁이 다시 궁궐로 사용된 것은 조선 말기 러시아 공사관에 있던 ''고종''이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부터이다. 경운궁은 러시아 공사관과 멀지 않고, 주변에 외국 여러 나라의 공사관이 있어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위치였다. 경운궁으로 돌아온 고종은 이후 나라의 이름을 대한 제국으로 바꾸고,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며 황제국 다운 국가 체제를 갖추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황제가 머무는 궁궐에 맞게 경운궁도 새롭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참고 사이트

국가문화유산포털 - 덕수궁 소개

국사편찬위원회 <대한 제국 황실의 궁궐이었던 덕수궁>

궁궐과 관련된 스토리텔링 주제 1개를 정해 서술하시오

주제: 경희궁, 일본인을 위한 교육기관(경성중학교)

경희궁이 궁궐로서의 면모를 완전히 상실하고 새로운 위상이 부여된 것은 1910년 경성중학교가 이곳에 들어서면서부터이다. 학교 건립 초기인 1909년에는 독립관 일대를 교사로 활용하다가 1910년에 경희궁 터에 건물을 완공했다. 그때까지 유지되던 숭정전 등 일부 전각은 경성중학교 교사로 사용됐고, 이전 시기에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던 공허지는 학교 운동장이 되었다. 1920년대 후반부터는 그나마 몇 개 남아 있던 전각마저 외부에 매각됨으로써 경희궁 건물은 잔해조차 완전히 사라졌다. 한편 경성중학교는 1932년 대화재로 목조 건축인 본관 등이 상당한 피해를 입었고, 1935년에 신축 교사를 완공함으로써 새로운 위용으로 학교의 모습을 일신시켰다.
광복 이후에도 경희궁은 학교부지로 활용됐다. 경성중학교는 1946년에 명칭이 변경되어 현재 서울고등학교의 전신인 서울공립중학교로 개교했으며, 강남으로 이전하기 전인 1980년까지 이곳에 있었다. 서울고등학교는 경희궁 터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옛날의 흔적을 간직한 최고의 명문 학교로 명성을 날렸다.

참고 사이트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경희궁은 살아있다>2015년12월11일- 2016년3월13일, 전시도록 (63쪽, 70쪽)

이미지

경성중학교 시오타니 01.JPG

출처:서울역사아카이브

국채보상운동 디지털 아카이브를 이용하고 개선점 및 오류 등을 5개 항목 이상 작성하시오.

개선점 및 오류
1 보상 한자가 맞는 것(報償)과 틀린 것(補償)이 공존하고 있다.
2 사이트에서 목자를 누르면 가운데에 크게 나오는 타이틀이는 일본어로 나오는 것과 중국어로 나오는 것이 있다.
3 목자에 마우스 커서를 쭉 맞추면 나오는 상세 목자 표기에 중국어와 일본어가 섞여 있다.
4 전체적으로 띄어쓰기나 줄 바꾸기가 자연스럽지 않은 부분이 있다.
5 아카이브 목자에 <중요한 상세> 페이지에서 ‘義捐(의연)’이라는 한자가 자주 나오고 일본에서도 쓰이는 한자이지만 ‘義援’이라는 한자를 쓰는 것이 더 일본 사람들에게 의미 전달이 쉬울 것 같다.
6 ‘국채 1300만圓’이라는 표기로는 일본 화폐의 단위인 円의 옛한자 圓인지 한국 화페 단위인 ‘원’을 뜻하는 건지 알 수 없다.
7 역사 페이지에서 거국적(擧國的)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뜻은 대충 알 수 있지만 한국적인 표현이고 일본에서는 낱말이 말고 구로 표현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8 ‘기념관 오시는 길’ 부분이 다 일본어로 되어 있지만 한국어로도 같이 표기하면 실제로 방문할 때 유용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