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M김동주
목차
중간고사
디지털 인문학에 대한 본인의 생각
오늘날 디지털은 어떤 분야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수단이다. 정보통신기술과 하드웨어기술 등이 발달하면서 디지털은 하나의 소통매체로 자리잡았다. 디지털 인문학은 이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착안하여 인문학 연구를 하거나 교육, 창조적 활동 등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연구된 인문학분야를 컴퓨터를 통해 더 발전시키거나 그 자료를 디지털화 하는 것, 나아가서 디지털을 통해 이루어지는 현재의 인문학 연구를 하는 것 모두 디지털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문학적 자료를 아카이빙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디지털인문학의 영역이다. 가령 조선왕조실록을 디지털화해서 연구자들은 물론 일반 대중들까지 검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분명 디지털인문학의 대중적인 큰 발전이다. 텍스트로 보는 것을 넘어 텍스트 속에 담긴 정보와 지식을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시킨다. 그러기 위해서 소프트웨어의 사용법이나 디지털세계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그 후에 정보를 체계화, 분석해서 시각화 할 수 있다. 그러면 원하는 자료만 손쉽게 찾을 수 있고, 시청각 매체와 접목시키면서 인문지식의 이해를 비롯해 활용 또한 용이해졌다. 기존의 인문학을 현시대에 맞게 변화시키는 것이므로 완전히 새로운 인문학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디지털이라는 특수 매체를 방법으로 사용하는만큼 충분히 새롭다.
디지털 인문학의 가치는 이런 특성을 이용한 그 파급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방대한 데이터의 양을 디지털화 하면 ‘지식을 대중적인 문화 상품의 창작에 활용’하거나 ‘인문지식이 일반인들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상품의 소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1] 그 점이 이전의 인문학과 디지털 인문학의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
덕수궁에 관한 서술
덕수궁은 조선과 대한제국의 궁궐이고 현주소는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이다. 주요 전각으로는 대한문, 중화문, 함녕전, 즉조당, 석어당, 덕홍전, 광명문, 정관헌, 석조전, 석조전 서관, 중명전이 있다.
덕수궁은 크게 두 차례 궁궐로 사용되었다. 선조가 임진왜란 피난 이후 전릉동 행둥으로 삼으면서 궁궐로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정릉동 행궁이 아닌 경운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다시 궁궐로 사용된 것은 조선 말이 고종이 이곳을 사용하면서 부터다. 당시 덕수궁의 권역은 현재의 권역보다 3배 가까이 이르렀다. [2]
1897년에는 고종이 즉조당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했고, 1905년 광무 9년에는 수옥헌에서 을사늑약[제2차 한일협약]을 체결하였으며 1907년 고종황제의 강제 퇴위 등 덕수궁은 조선 말기에 다양한 일을 겪은 장소이다.
1897년 | 대한제국 선포 |
1905년 | 을사늑약 체결 |
1907년 | 고종황제 강제퇴위 |
1910년 | 석조전 건설 |
1910년에는 덕수궁 내에 서양식 전각을 지었고 그 건물이 바로 석조전이다. 석조전은 영국인이 설계한 조선시대 궁중건물 중 대표적인 유럽풍 석조 건축물이다.
1930년대부터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면서 기존의 형태를 많이 잃었으나 2009년에 문화재청에서 준공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 공사를 진행했다. 2014년에 10월에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으로 개관하였다.[3]
궁궐에 관한 스토리텔링
궁궐에 장식된 동물 무늬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현재 서울의 상징물 중 캐릭터인 해치는 사전적으로 시비와 선악을 판단하여 안다는 상상의 동물로 정의되어있다. 궁궐에서의 쓰임은, 경복궁 복원 당시 제작된 전설의 동물이고 광화문 앞 좌측과 우측에 해치상이 있다. 이 의미는 해치의 높은 판단력과 시비를 가려 응징하는 뿔 등으로 치우침 없이 모든 백성들을 옳은 방향으로 다스려는 조성 왕들의 정치적 철학이자 방향성이다. 궁궐 장식에도 해치가 있었는데 법과 정의의 화신을 상징한다.
특히 의복에 장식되었던 동문문양은 용, 봉황, 원앙, 나비, 박쥐 등이 있다, 용은 제왕의 권위를 상징하고 위엄을 나타낸다. 의복 뿐만 아니라 정전 천장 중앙에 황룡 두 마리가 장식되어 있다. 그것은 세상의 중심에 군림하면서 백성을 다스리는 왕의 권위와 위엄을 나타낸다.
봉황은 성군 또는 태평성대를 의미한다. 봉황은 왕이 나라를 잘 다스리고 천하가 태평할 때 나타나는 예사롭지 않은 현상이나 동식물, 상서의 최상에 속하는 신령스러운 동물이다. 대표적으로 창덕궁 인정전, 창경궁 명정전 전창의 봉황 장식이 있다. 왕의 높은 덕과 지혜, 그들이 다스리는 태평성대를 상징한다. 지붕 위에는 용두가 있었는데 이는 나쁜 귀신, 사악한 잡귀로부터 건물을 지킨다고 알려져있다. [4]
이 외에도 장수, 행복, 부부애, 평안 등을 상징하는 동물들이 있다. 원앙, 기린, 코끼리, 사슴, 학, 박쥐가 그렇다. 원앙은 주로 한 쌍의 금실 좋은 부부를 상징해서 혼례복이나 침구에 그려졌고 박쥐는 장수를 상징했다.[5]
관련영상 - 경복궁의 동물이야기
국채보상운동 디지털 아카이브
- 초기 화면에서 스크롤을 내리면 아카이브 검색, 의연금 검색, 콘텐츠 보기, 전문 검색, 1907 KOREA, ebook 검색 등의 카테고리가 나오는데, 초기 화면의 필요성을 모르겠다. 원하는 정보를 찾기 위해 더 많은 클릭과 화면 전환이 필요해질 뿐이라서 사이트의 경제성이 좋지 못하다고 느꼈다. 메인화면과 초기화면을 합치는 게 더 좋을 듯 하다.
- 메인화면(초기 화면에서 스크롤을 내렸을 때 볼 수 있는 화면) 카테고리 아래에 ‘아카이브로 보는 국채보상운동’ 타이틀이 있는데 이미지와 제목들을 두서없이 모아둔 듯 하다. 오히려 그 아래에 있는 ‘콘텐츠 보기’가 더 홈페이지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국채보상운동의 아카이빙을 용이하게 할 것 같다. 위에 있는 이미지와 제목들은 콘텐츠 보기를 통해 국채보상운동의 주요한 인물과 에피소드 등을 확인한 후에 좀 더 세밀하게 알아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자료이다.
- 검색을 할 때 기록물, 의연금, 콘텐츠, 등이 있고 전체통합 검색을 위에서는 상단 바 우측에 위치한 ‘검색’ 메뉴를 활용해야 하는 게 불편하다. 같은 검색인데 굳이 이렇게 나눠서 메인 타이틀의 핵심 파트를 차지할 이유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차라리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처럼 카테고리화 해놓고 통합 검색창 하나만 메인에 띄워두고 키워드 검색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1907 KOREA 메뉴를 클릭했더니 대구 1907로 이동했다. 사이트의 이름에 맞게 대구 1907로 하는 게 더 좋을 듯 싶다.
- 아카이브 통계를 확인하니 신문 유형별 통계에서 ‘미분류’항목이 가장 많았다. 아카이브 검색 설정을 신문, 미분류 항목으로 설정하고 검색한 결과 다양한 콘텐츠가 나왔다. 제목이 [國債報償金檢査所臨時事務所를]라고 되어 있어서 상세정보를 확인해보니, 정작 아카이브 설명란에는 '국채보상금검사소임시사무소를'이라는 제목의 1908년 10월 1일자 신문 기사이다. 라는 문구가 명확하게 있었다. 다른 기사는 제목도 한글로 번역해서 달아두고, 분류 또한 기사로 명확했는데 이렇듯 번역이 되지 않거나 원문만 적히고 해석은 적히지 않은 컨텐츠가 많았다. 분류 역시 기사, 광고 등으로 설명란에는 명시되어있는데 미분류로 등록된 것들이 많다.
각주
- ↑ 김현·임영상·김바로, 『디지털 인문학 입문』, HUEBOOKS, 2016.5쪽
- ↑ 국가문화유산포털 - 덕수궁 소개
- ↑ 문화재청 덕수궁 –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 ↑ 허균, 『궁궐 장식 조선왕조의 이상과 위엄을 상징하다』, 돌베게, 2011.
- ↑ 국립고궁박물관,『궁중문양판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도록 제7책,그라픽네트』,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