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혜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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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鄭道傳)은 궁궐에 대해 국왕이 정사하는 곳이며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곳이므로 그 제도를 장엄하게 하고 명칭을 아름답게 해야 한다고 하면서 『시경(詩經)』「대아(大雅)」편에 나오는 시를 따서 ‘경복궁’이라고 이름 지었다.[1]

정도전(鄭道傳)은 궁궐에 대해 국왕이 정사하는 곳이며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곳이므로 그 제도를 장엄하게 하고 명칭을 아름답게 해야 한다고 하면서 『시경(詩經)』「대아(大雅)」편에 나오는 시를 따서 ‘경복궁’이라고 이름 지었다.[2]-주석에 외부 링크 설정과 같음. 링크 이름 설정으로 각주에 부가 설명을 적는 것.

정도전(鄭道傳)은 궁궐에 대해 국왕이 정사하는 곳이며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곳이므로 그 제도를 장엄하게 하고 명칭을 아름답게 해야 한다고 하면서 『시경(詩經)』「대아(大雅)」편에 나오는 시를 따서 ‘경복궁’이라고 이름 지었다.[3]-주석에 링크 숫자만 나옴

정도전(鄭道傳)『태조실록』4년 10월 7일

정도전(鄭道傳)[2]『태조실록』4년 10월 7일-괄호 밖으로는 []효과 받지 않음


경희대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링크 이름 설정

[3]링크 이름 없이 생성

http://gukmun.khu.ac - 링크 그대로 보여주기

경복궁의 주요건물 위치를 보면 궁 앞면에 광화문이 있고 동·서쪽에 건춘(建春)·영추(迎秋)의 두 문이 있으며 북쪽에 신무문이 있다.(엔터1) 궁성 네 귀퉁이에는 각루가 있다.(엔터2)

광화문 안에는 흥례문이 있고 그 안에 개천(開川) 어구(御溝)가 있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나간다.(엔터2)

어구에 돌다리인 금천교(禁川橋), 곧 영제교(永濟橋)가 놓여 있고 다리를 건너면 근정문이 있으며(엔터3)


문을 들어서면 정전인(br1)
근정전이 이중으로 높이 쌓은 월대 위에 우뚝 솟아 있다.근정전 뒤의 사정문을 들어서면(br2)

왕이 정사를 보는 곳인 사정전이 있고 그 동·서쪽에 만춘전(萬春殿)·천추전이 모두 남향으로 놓여 있다.

하나

하나하나

사정전 뒤 향오문(嚮五門)을 들어서면 정면에 연침(燕寢)인 강녕전이 있고 그 앞 동서 양쪽에 연생전·경성전이 있다.강녕전 뒤에는 양의문(兩儀門)이 있고 문 안에 왕비가 거처하는 교태전이 있으며 잇대어서 동쪽에 원길헌(元吉軒)·서쪽에 함광각(含光閣)·동북쪽에 건순각(健順閣)이 있다. 그 뒤로는 후원이 전개되어 소나무가 우거지고 연못·정자 등이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다. 흥례문으로부터 이곳까지에는 동서로 낭무(廊廡)가 각 건물을 둘러싸고 있다.

둘둘둘둘

  1. 이밖에
    1. 궁 서쪽에
    2. 수정전이 있고
    3. 그 위에 경회루가 있는데
      1. 수정전은 의정부 청사로 쓰였던 곳이며,


  1. 경회루는
  • 임금과 신하들이 모여 잔치를 베풀던 곳이다.
  1. 또한 건춘문과 영추문 안에도
    • 수많은 건물들이 들어차 있었다.
      • 현재 궁내에 남아 있는 주요건물은 근정문·근정전·사정전·천추전·수정전·자경전·경회루·재수각·함화당·향원정·집옥재·선원전 등이며, 복원된 건물은 강녕전·자선당·태원전·광화문 등이다.근정전(국보 제223호)은 조선왕조 정궁의 정전답게 중층의 정면 5칸, 측면 5칸의 장대한 건물이며 건물의 양식은 조선 말기에 속하여 세부의 장식적 처리가 두드러진다. 근정문(보물 제812호)은 정면 3칸의 중층지붕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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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문 좌우로는 행각(行閣)이 연결되어 근정전을 둘러싸고 있다.경회루(국보 제224호)는 정면 7칸, 측면 5칸의 장대한 누각 건물로 하층은 네모진 돌기둥을 세우고 상층에는 사방에 난간을 두르고 나무기둥을 세웠다. 주변에는 네모난 큰 연못을 파고 우측면에 세 개의 돌다리를 놓았다. 누각 건물로는 현재 국내에서 제일 큰 규모에 속한다.향원정은 육각형 평면을 한 정자로 연못의 한가운데에 있으며 목조구름다리가 연결되어 있다.
자경전(보물 제809호)은 침전건물의 하나인데, 이 건물에는 후원의 담장과 굴뚝에 묘사된 십장생(十長生)무늬가 특히 주목된다(경복궁자경전십장생굴뚝, 보물 제810호).사정전 북쪽에 있는 아미산은 여러 단의 화계(花階)와 그 사이의 나무·괴석 등이 눈길을 끌며 전체적으로 사철의 변화에 따른 조화를 보여 주는 한국식 정원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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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도 봉황·귀면·당초문 등을 새긴 육각 화문(花文) 장식의 굴뚝(경복궁아미산의굴뚝, 보물 제811호)이 있다. 이밖에 18세기에 만든 바람의 방향과 강도를 측정하는 기기인 풍기대(風旗臺)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보물 제847호).국립중앙박물관이 경복궁에 있을 때는 경천사십층석탑을 비롯한 국보·보물로 지정된 석조물들이 야외에 전시되어 있었으나 용산에 새로 지어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대부분 옮겨져서 현재는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 등 일부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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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경복궁이 자리 잡은 위치는 도성의 북쪽 북악산 기슭으로 풍수지리설에 입각한 주산(主山)의 바로 아래이다. 궁의 전면으로 넓은 시가지가 전개되고 그 앞에 안산(案山)인 남산이 있으며 내수(內水)인 청계천과 외수(外水)인 한강이 흐르는 명당(明堂) 터이다. 궁의 왼쪽으로 종묘가 있고 궁의 오른쪽에 사직단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는 중국에서 고대부터 지켜져 오던 도성 건물배치의 기본형식인 좌묘우사(左廟右社)를 따른 것이다.고종 때 중건된 궁의 형태는 전체적으로 장방형으로 되어 있으며 궁성의 둘레는 1만 여척으로, 시가지를 내려다보듯이 남면(南面)하였고 궁의 주요건물들도 모두 남향으로 되어 있다.건물의 배치는 앞부분과 뒷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앞부분에는 정전과 편전들이 놓이고 뒷부분에는 침전과 후원이 자리 잡고 있어 이른바 전조후침(前朝後寢)의 격식을 갖추고 있다. 이것은 조선시대의 다른 궁궐들이 정전과 침전을 좌우에 놓거나 배치에 있어 앞뒤의 관계가 불분명한 것과 대조를 이루는데, 경복궁이 조선조의 정궁이므로 특히 엄격한 규범을 나타내고자 하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경복궁(景福宮))]

주석

  1. 『태조실록』4년(1395) 10월 7일
  2. 『태조실록』4년 10월 7일
  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