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로(子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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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유(仲由)는 자를 자로(子路)라 했고, 노의 변(卞) 사람이다. 공자보다 9년 아래였다.

자로는 성격이 거칠고 용맹하게 힘쓰는 것을 좋아하며 의지가 강했다. 수탉의 꼬리로 만든 모자를 쓰고, 수퇘지의 가죽으로 장식한 검을 차고 다녔다. 힘만 믿고 공자를 업신여기기도 했다.

공자가 예의로 대하며 천천히 자로를 이끌자 자로는 후에 유자의 옷을 입고 스승에게 드릴 예물을 가지고 문인을 통해 제자가 되기를 청했다.

자로가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는 "앞장서고, 수고해라."라고 했다. 좀 더 듣기를 청하자 "싫증내지 마라."고 했다.

자로가 "군자는 용맹함을 숭상합니까?"라고 물자 공자는 "의를 가장 위에 둔다. 군자가 용맹함을 좋아하면서 의가 없으면 난리가 나고, 소인이 용맹함을 좋아하면서 의가 없으면 도둑질을 한다."라고 했다.

자로는 좋은 말을 듣고 아직 실천하지 못했는데 또 좋은 말을 들을까봐 겁을 냈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한 쪽 말만 듣고 송사를 단정할 수 있는 사람은 자로뿐일 게다."

"유야는 용감함에 있어서는 나보다 낫지만 취할 것이 없다."

"유야처럼 하다가는 제대로 죽지 못할 것이다."

"해지고 낡은 웃옷을 입은 채 여우나 담비의 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입은 자와 나란히 서 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사람은 바로 유야일 것이다!"

"유의 학문은 집에 들어가긴 했지만 방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계강자가 "중유는 어집니까?"라고 묻자 공자가 "전차 1천 대를 가진 나라의 군사와 재정을 맡을 수는 있지만 어진지는 모릅니다."라고 했다.

자로가 공자를 따라 떠돌기를 좋아 하여 장저(長沮), 걸익(桀溺), 망태기를 진 노인 등을 만났다.

자로가 계씨의 재(宰)가 되자 계손(季孫)이 "자로를 큰 신하라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공자는 "숫자만 채우는 신하라 할 수 있을 겁니다."라고 했다.

자로가 포(蒲)의 대부가 되어 공자에게 인사를 드리러 오자 공자는 "포에는 장사(壯士)들이 많고 다스리기 어렵다. 그러나 내가 너에게 일러주마. 공경스러우면 용맹한 자를 다룰 수 있고, 너그럽고 공정하면 사람들을 따르게 할 수 있으며, 공경스럽고 공정함으로 안정시키면 위에 보답할 수 있다."고 했다.

위(衛) 영공(靈公)에게 남자(南子)라는 총애하는 부인이 있었다. 영공의 태자 괴외(蒯聵)가 남자에게 잘못하여 죽을까 겁이 나서 도망쳤다. 영공이 죽자 부인은 공자 영(郢)을 세우고 싶어 했으나 영은 "망명한 태자의 아들 첩(輒)이 있습니다."라며 내켜하지 않았다. 이에 위는 첩을 국군으로 세우니 이가 출공(出公)이다.

출공 12년, 그의 아버지 괴외는 나라 밖에 살면서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자로는 위의 대부 공회(孔悝)의 읍재(邑宰)로 있었다. 괴외는 공회와 난을 일으키려고 모의하여 공괴의 집으로 들어가서는 마침내 그 무리와 함께 출공을 습격했다. 출공은 노로 달아났고, 괴외가 들어와 자리에 오르니 이가 장공(莊公)이다.

공회가 난을 일으켰을 때 자로는 외부에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는 달려오다가 위의 성문을 나서는 자고(子羔)와 마주쳤다. (자고가) 자로에게 "출공은 떠났고 문은 이미 닫혔으니 괜히 화를 당하지 말고 그대는 돌아가시오."라고 했다. 자로는 "그 집 밥을 먹는 사람은 그 집의 재난을 피하지 않는 것이오."라고 했다.

자고는 떠났고, 성으로 들어가는 사자가 있어 성문이 열리자 자로는 그를 따라 들어갔다. 괴외에게 가자 괴외는 공회와 대에 오르고 있었다. 자로가 "군께서 어찌 공회를 기용하려 하십니까? 잡아 죽이게 해주십시오."라고 했다. 괴외는 듣지 않았다. 그러자 자로는 대에 불을 지르려고 했다. 괴외가 겁이 나서 석걸(石乞)과 호염(壺黶)에게 자로를 공격하게 하니 자로를 쳐서 갓끈을 끊었다. 자로는 "군자는 죽어도 관은 벗지 않는다."며 갓끈을 매고는 죽었다.

공자가 위에 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오호라, 유가 죽겠구나!"라고 했는데 얼마 뒤 정말 죽었다. 이에 공자는 "내가 유를 얻고부터 귀에 나쁜 말이 들리지 않았는데."라고 했다. 이때 자공(子貢)은 노를 위해 제에 사신으로 갔다.

출처 정보

仲由가 季氏의 宰가 되어 三都를 허물려 하니, 이에 叔孫氏가 郈邑의 성을 허물었다. 季氏가 費邑의 城을 허물려 하자, 公山不狃와 叔孫輒이 費人을 거느리고 와서 魯나라를 襲擊하였다. 定公이 난리를 피해 季孫, 叔孫, 孟孫과 함께 季氏의 집으로 가서 武子의 臺로 올라갔다. 費人의 進攻을 이기지 못하여 費人이 定公 곁에까지 쳐들어오자, 仲尼가 申句須와 樂頎에게 명하여 내려가 토벌하게 하니, 費人이 敗走하였다. 國人이 그들을 추격하여 姑蔑에서 패배시키니 公山不狃와 叔孫輒이 齊나라로 달아났다. 드디어 費邑의 城을 허물었다.[1]

小邾의 射이 句繹을 가지고 魯나라로 도망해 와서 말하기를 "季路를 보내어 나와 〈口頭로〉 約定하게 하면 나는 〈魯나라와〉 結盟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魯나라가〉 子路를 보내려 하자 子路가 사절하였다. 季康子가 冉有를 子路에게 보내어 말하기를 "〈魯나라는〉 千乘의 나라인데, 魯나라의 盟約을 믿지 않고 그대의 한마디 말을 믿겠다고 하는데, 그대는 어찌 恥辱으로 여기십니까?"라고 하니, 子路가 대답하기를 "魯나라가 小邾國과 戰爭을 한다면 감히 그 까닭을 묻지 않고 그 城下에서 싸우다가 죽을 수 있지만 저 사람은 신하로서 신하의 도리를 다하지 않았는데 그 말을 들어준다면 이는 그의 行爲를 옳게 여기는 것이니, 나는 그리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2]

가을에 齊나라 陳瓘이 楚나라에 갈 때 衛나라를 지나는데, 仲由가 그를 뵙고 말하기를 "하늘이 혹시 陳氏를 도끼와 자귀로 삼아 齊나라 公室을 찍어 망하게 한 뒤에 다른 사람에게 그 公室을 所有하게 하려는 것인지를 알 수 없고, 아니면 陳氏로 하여금 끝내 그 齊나라를 享有하게 하려는 것인지를 또한 알 수 없으니, 만약 魯나라와 사이좋게 지내면서 때를 기다린다면 좋지 않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서로 나쁘게 지낼 필요가 있습니까?"라고 하니, 子玉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하지만 나는 使命을 받고서 楚나라에 使者로 가는 길이니, 그대가 사람을 보내어 이 말을 내 아우에게 告하시오."라고 하였다.[3]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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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위키
일본어 위키
영문 위키
바이두
Zdic
위키데이터
두산백과
중국인물대사전
중국역대인명사전


출처

  1. 春秋左氏傳(7)
  2. 春秋左氏傳(8)
  3. 春秋左氏傳(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