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일
서동일(徐東日) | |
대표명칭 | 서동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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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徐東日 |
분야 | 정치 |
유형 | 독립운동가 |
생년 | 1893년12월25일 |
몰년 | 1965년04월26일 |
호 | 春波 |
출생지 | 경상북도 경산 |
사망지 | 서울 |
배우자 | 최옥경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1990년) |
능묘 |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로 570(망우동 산57-1) |
정의
독립운동가
내용
경북 경산 출신.
1923년 1월 중국 베이징으로 망명하여 독립 독립운동단체인 국민당에 가입하여 재정부장을 맡았다. 1924년 1월 군자금 모집을 위하여 국내에 귀국 경상북도 대구 일대에서 군자금 1,300여 원을 모집하여 베이징에 전달하였고, 1925년 1월에 재차 국민당 남형우의 명을 받고 귀국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5년 4월 국민당의 배천택, 김창숙등이 베이징에서 조직한 다물단에 가입하고 경산군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가 그해 10월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이듬해 1926년 3월 31일에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1995년 부인 최옥경의 묘에 서동일의 묘를 이장하여 합장하였다.
연보비
전면
서동일 선생(1893~1966 독립운동)
다물(多勿)이란 옛 땅을 회복한다는 뜻으로
용감(勇敢), 전진(前進), 쾌단(快斷) 등의 뜻과 함께
불언실행(不言實行)을 의미한다.
「다물단」의 의미
후면
1893 경북 경산군 자인면 서부동에서 출생
1923 중국 북경으로 망명. 군대 양성 등 무력으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조직된 「국민당」에 가입하여 재정부장으로 활동
1924 「국민당」의 밀명으로 귀국하여 군자금 모집 등 활동
1925 국민당이 일제 주구의 처단 등 보다 직접적 행동을 목적으로 조직한 항일 비밀 결사 「다물단」에 가입하여 다물단 선언서 등을 휴대하고 거듭 귀국. 군자금 모집 등 활동을 하다 피체, 징역 3년형 선고 받고 옥고를 치름
1990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지식 관계망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 연합아카이브, 독립운동가, 서동일 님, YouTube, 게시일: 2019년 4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