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궁
onthedh
조선시대에 왕세자빈을 지칭하거나 왕세자빈이 거처하던 곳을 지칭한 용어.
왕의 부인을 중전(中殿)이라고 하는 것처럼 왕세자의 부인은 빈궁이라 하여 왕세자에 대한 예우를 강화하였다. 빈궁에는 내시부(內侍府)에서 내시 8명이 와서 번(番)을 들었으며, 궁녀와 시종드는 종들이 배치되었다. 빈궁이 타는 수레는 빈련(嬪輦), 빈궁의 인신(印信)은 빈신인(嬪信印)이라 하였다. 빈(嬪)이라는 용어가 문헌에 처음 나타난 것은 《서경(書經)》의 <요전(堯典)>으로, 요(堯) 임금이 두 딸을 순(舜)에게 주고 그들을 일컬은 칭호로 사용되었다. 이후에 고대 제왕의 딸이 출가하면 궁정의 여관(女官)들이 이를 빈이라고 칭하면서 빈은 여자에 대한 가장 큰 존경의 의미를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전통이 계승되어 빈이라는 용어는 부(父)·모(母)의 사후에 지칭하는 고(考)·비(妣)의 경우처럼 죽은 처(妻)를 아름답게 부르는 칭호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빈궁이라 하면 왕세자빈을 지칭하며, 후궁의 빈에 대해서는 빈의 이름과 성을 붙여서 부르는 것이 관례였다. 장희빈(張禧嬪)을 희빈 장씨(禧嬪 張氏)라고 지칭한 경우 등이 그러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빈궁 [嬪宮]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