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영 스토리텔링
개설
『한중록(閒中錄)』은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가 지은 회고록으로, 총 4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1편은 혜경궁 홍씨가 환갑이 되던 1795년(정조19)에 작성되었으며, 2편은 1801년(순조1)에, 3편은 1802년(순조 2), 4편은 1805년(순조 5)에 작성되었다.
궁에서 지냈던 혜경궁 홍씨의 삶을 기록으로 남겼기 때문에, 궁중을 배경으로 작성되었으며, 궁중 용어와 궁중 풍속 등이 풍부하게 등장하여 그 가치가 있다. 또한, 역사적 인물이 서술한 글로써 정치적 사건에 대해 연루되거나, 당사자로서 겪은 내용을 서술하고 있으므로 역사의 보조자료로서의 의미가 깊다. 『한중록』은 여류문학으로써 당시 여성들의 삶과 가치관을 엿볼 수도 있다.
『한중록』의 내용은 혜경궁 홍씨의 출생과 세자빈 간택, 장헌세자의 죽음, 친정 가문의 몰락 등 다양한 사건이 실려있다. 그 가운데 혜경궁 홍씨 자신의 가문 결백을 주장하는 내용이 다수 등장하며, 친정의 복권을 위해 작성하였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명칭
신이 살펴보건대, 궁궐이란 것은 임금이 정사하는 곳이요, 사방에서 우러러보는 곳입니다. 신민(臣民)들이 다 조성(造成)한 바이므로, 그 제도를 장엄하게 하여 존엄성을 보이게 하고, 그 명칭을 아름답게 하여 보고 감동되게 하여야 합니다. 한(漢)나라와 당(唐)나라 이래로 궁전의 이름을 혹 그대로 하기도 하고, 혹은 개혁하였으나, 그 존엄성을 보이고 감상을 일으키게 한 뜻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지 3년 만에 도읍을 한양에 정하여 먼저 종묘를 세우고, 다음에 궁궐을 경영하시더니, 다음 해 을미일에는 친히 곤복(袞服)과 면류관(冕旒冠)을 쓰시고 선대의 왕과 왕후를 신묘(新廟)에서 제향을 올리며, 여러 신하들에게 새 궁궐에서 잔치를 베푸셨으니, 대개 신(神)의 혜택을 넓히시고 뒷사람에게 복록을 주심이옵니다. 술이 세 순배 되어서, 신 정도전에게 분부하시기를, ‘지금 도읍을 정하여 종묘에 제향을 올리고 새 궁궐의 낙성을 고하게 되매, 가상하게 여겨 군신(群臣)에게 여기에서 잔치를 베푸노니, 그대는 마땅히 궁전의 이름을 빨리 지어서 나라와 더불어 한없이 아름답게 하라.’ 하셨으므로, 신이 분부를 받자와 삼가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려 《시경(詩經)》 주아(周雅)에 있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는 영원토록 그대의 크나큰 복을 모시리라.’라는 시(詩)를 외우고, 새 궁궐을 경복궁이라고 이름짓기를 청하오니, 전하와 자손께서 만년 태평의 업(業)을 누리시옵고, 사방의 신민으로 하여금 길이 보고 느끼게 하옵니다.……후략…….태조실록 8권, 태조 4년 10월 7일 정유 2번째기사
『한중록』은 총 4편으로, 서로 다른 시기에 작성되었다. 또한, 4편의 창작 동기가 서로 다르므로 독립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4편의 작품 모두 특정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현재의 제목은 후세의 독자나 필사가가 붙인 것으로, 『한중록』을 칭하는 작품은 『한듕록』, 『한즁록』, 『恨中錄』, 『한듕만록』, 『閑中漫錄』, 『閑中錄』, 『혜경궁읍혈록』, 『읍혈록』, 『泣血錄』, 『불명불조(弗明弗措)』, 『寶藏』 등으로 다양하게 지칭된다.
저자
혜경궁 홍씨는 조선 21대 왕 영조의 아들 장헌세자의 부인이며, 정조의 어머니이다. 1735년(영조11) 6월 8일 선조의 딸인 정명공주와 부마 홍주원의 4대손인 홍봉한의 4남 3녀중 둘째로 태어났으며, 1743년(영조19) 세자빈에 간택[1]되었고, 1744년 (영조 20) 세자빈에 책봉[2]되었다. 1750년(영조 26) 의소세손을 출생[3], 1752년(영조 28) 정조를 출생[4]하였다. 임오화변 이후 1762년(영조 38) 혜빈 존호를 받았으며[5], 정조 즉위 이후 1776년 (정조 1)에 혜경궁 궁호를 받았다[6]. 이후 1899년 (고종 36)에 현경왕후로 추존[7]되었다.
혜경궁 홍씨는 10살의 어린 나이에 궁중에 들어와 1762년(영조 38) 남편인 장헌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참변[8]을 당하고, 1776년 정조가 즉위한 다음에는 작은 아버지 홍인한이 사사(賜死)[9]되고[10] 동생 홍낙임이 친국(親鞫)[11]을 받는 등 친정이 화를 입었다. 또한 1800년 정조가 죽고, 순조가 즉위하며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시작하자, 동생 홍낙임이 사사[12]되는 등 다시 친정이 화를 입었다. 혜경궁 홍씨는 이 시기를 거치며 한중록을 저술하였으며, 이후 친정가문의 억울함을 풀고자 하였다. 혜경궁 홍씨는 1815년 12월에 죽었다.
구성
1편
2편
3편
4편
한중록 이본
원문
참고문헌
주석
- ↑ 『영조실록』 58권 1743년(영조 19) 11월 13일
- ↑ 『영조실록』 59권 1744년(영조 20) 1월 9일
- ↑ 『영조실록』 72권 1750년(영조 26) 8월 27일
- ↑ 『영조실록』 77권 1752년(영조 28) 9월 22일
- ↑ 『영조실록』 99권 1762년(영조 38) 윤5월 21일
- ↑ 『정조실록』 1권 1776년(정조 1) 3월 10일
- ↑ 『고종실록』 39권 1899년(고종 36) 9월 1일
- ↑ 『영조실록』 99권 1762년(영조 38) 윤5월 13일
- ↑ 죽일 죄인을 대우하여 임금이 독약을 내려 스스로 죽게 하던 일.
- ↑ 『정조실록』 1권 1776년(정조 1) 7월 5일
- ↑ 임금이 중죄인을 몸소 신문하던 일
- ↑ 『순조실록』 3권 1801년(순조 1) 5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