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2024-M001

my9univ
My9univ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5월 27일 (화) 13:48 판 (새 문서: <!-- #Links E2024-M001 5.18민주화운동 hasContextualElement E2024-M001 5.18민주화운동_최초충돌 hasContextualElement E2024-M001 전남대학교_정문 hasContextualElement...)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시간을 넘어 진실을 찾아서 》 계엄군의 시위 진압 시작

스토리 내러티브

1979년 12월 12일, 대한민국은 12.12 쿠데타라는 사건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 사건은 신군부라는 세력에 의해 주도되었고, 이는 이후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1980년 5월 17일)로 이어졌다. 신군부는 이러한 계엄 확대를 통해 그들의 권력을 강화해 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권력의 장악은 곧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민주화 운동의 불씨를 일으켰다. 전남대학교 정문에서 시작된 최초의 충돌은 계엄군의 대학 점령과 무차별 시위 진압으로 이어지며, 학생들과 시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박관현,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은 이러한 움직임을 이끌며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

계엄군광주교육대학교, 전남대학교, 그리고 조선대학교까지 점령하며 강압적인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항의와 저항을 계속했다. 이들은 신군부와 계엄군의 폭력에 맞서며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외쳤다.

특히, 전남대학교 정문에서의 충돌은 계엄군과의 대립의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다. 이곳에서 박관현과 많은 학생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높이며 민주화를 위한 싸움을 이어갔다.

결국, 5.18민주화운동은 단순한 충돌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 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자유와 정의의 가치를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고, 후대에도 잊혀지지 않을 저항과 희생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참고자료

type resource title/index URL
전남대병원 「응급 환자 기록지(#227050)」, 광주광역시 5.18사료편찬위원회 『5.18광주민주화운동 자료총서』 23권, 2000.
『정사(正史) 5.18』, 광주매일신문 정사 5.18 특별취재반 엮음, 1995.
광주광역시의사회 『5.18 의료 활동』 1권, 1996.
5·18기념재단, 『오월 광주 여행』, MOVE, 2022.
<5.18 관련 사건 조사결과> 58페이지, 서울지방검찰청, 국방부검찰부, 1995-07-18.
『광주민중항쟁사료전집』번호 6001, 현사연 엮음, 1990.


Notes


Story Network 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