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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후조당 유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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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당시에는 시호를 내릴 때 받은 교지와 「퇴계유묵」, 『향병일기』, 『전가보첩』<ref>이 중 퇴계선생유묵, 퇴계선생서법, 후조당시호교지 및 증직교지는 보물 제 1019호(광산김씨 예안파 종가 전적)로 지정되었다.</ref> 등 4종 6점이었으나, 현재는 『전가보첩』과 『향병일기』을 제외하고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문화재 지정 당시에는 시호를 내릴 때 받은 교지와 「퇴계유묵」, 『향병일기』, 『전가보첩』<ref>이 중 퇴계선생유묵, 퇴계선생서법, 후조당시호교지 및 증직교지는 보물 제 1019호(광산김씨 예안파 종가 전적)로 지정되었다.</ref> 등 4종 6점이었으나, 현재는 『전가보첩』과 『향병일기』을 제외하고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퇴계유묵』은 2책으로 퇴도선생유묵은 퇴계이황의 묵서로서 이황이 직접 필사한 김효로의 묘갈명(묘비에 쓰여진 글)이고, 퇴계선생서법은 이황이 송나라 학자 소옹의 시를 쓴 것으로 초서가 특출한 필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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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유묵』은 2책으로 퇴도선생유묵은 퇴계이황의 묵서로서 이황이 직접 필사한 김효로의 묘갈명(묘비 앞에 세우는 작은 돌비석)이고, 퇴계선생서법은 이황이 송나라 학자 소옹의 시를 쓴 것으로 초서가 특출한 필첩이다.
  
 
『향병일기』 2책은 필사본으로 김해(金垓)가 쓴 임진왜란 일기로 임진년부터 계사년까지의 기록문이며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향병일기』는 2종의 필사본이 존재하며, 그 중 1종은 날짜순에 따라 軍務와 관련된 일을 사실 그대로 직서하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83호로 지정되어 있다.
 
『향병일기』 2책은 필사본으로 김해(金垓)가 쓴 임진왜란 일기로 임진년부터 계사년까지의 기록문이며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향병일기』는 2종의 필사본이 존재하며, 그 중 1종은 날짜순에 따라 軍務와 관련된 일을 사실 그대로 직서하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83호로 지정되어 있다.

2021년 6월 20일 (일) 00:43 판

후조당 유물()
후조당 유물, 디지털안동문화대전, 안동시.
대표명칭 후조당 유물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군자리길 29
지정일 1974년 12월 10일
웹사이트 후조당유물,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개요

안동 후조당 유물은 무엇인가


안동 후조당 유물은 김부필(金富弼,1516∼1577, 호:후조당)의 종손가에 소장되어 있는 각종 문적이다.

문화재 지정 당시에는 시호를 내릴 때 받은 교지와 「퇴계유묵」, 『향병일기』, 『전가보첩』[1] 등 4종 6점이었으나, 현재는 『전가보첩』과 『향병일기』을 제외하고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퇴계유묵』은 2책으로 퇴도선생유묵은 퇴계이황의 묵서로서 이황이 직접 필사한 김효로의 묘갈명(묘비 앞에 세우는 작은 돌비석)이고, 퇴계선생서법은 이황이 송나라 학자 소옹의 시를 쓴 것으로 초서가 특출한 필첩이다.

『향병일기』 2책은 필사본으로 김해(金垓)가 쓴 임진왜란 일기로 임진년부터 계사년까지의 기록문이며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향병일기』는 2종의 필사본이 존재하며, 그 중 1종은 날짜순에 따라 軍務와 관련된 일을 사실 그대로 직서하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83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가보첩』 1책은 경북 안동의 오천(烏川)에 거주하는 광산김씨 선조들의 편지를 족보에 따라 모은 것이다. 김연·김유·김부의·김부인·김부윤·김해 등 많은 선조들의 편지를 모은 것으로 내용이 다양하여 연구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다.

또한 1825년(순조 25) 순조가 250여년 전에 사망한 김부필에게 ‘문순공(文純公)’의 시호(諡號)를 내린 것과 1822년(순조 22) 김부필에게 증직(贈職)을 내린 교지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교지의 양식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김부필은 누구인가


김부필은 김연(金緣,1487∼1544)의 아들로 퇴계 이황의 문인이며 여러차례 벼슬이 내려졌지만 사양하고 학문에 정진하였던 조선시대 학자이다. 그의 모습을 보고 이황이 “후조주인(後彫主人)은 깨끗한 절개를 굳게 지켜, 임명장이 문전에 이르러도 기뻐하지 않는구나 …….”라는 시를 지어 그의 지조와 절개를 높이 평가하였다. 또한 그는 아우 김부의(金富儀), 4촌형 김부인(金富仁), 4촌아우 김부신(金富信)·김부륜(金富倫), 고종 금응훈(琴應壎)·금읍협(琴應夾)과 한 동네에 살면서 학문을 토론하고 덕업을 권장하여 ‘오천칠군자(烏川七君子)’라 칭송되었다.

1570년 이황이 역동서원(易東書院) 건립 시 협조하였으며, 1574년 조목(趙穆)과 함께 도산서원 건립을 주도하였으며, 학문과 행실로서 신망이 두터웠다.

저서로는 『후조당문집(後彫堂文集)』이 있으며, 안동 후조당 종택을 지었다. 묘소는 안동 금학산에 있으며, 위패는 안동 예안의 낙천사(洛川祠)에 봉안되었다.


영문

Relics of Hujodang, Andong


영문 해설 내용

미디어 자료

지식 관계망



중심요소

ID Class Label


문맥요소

ID Class Label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주석

  1. 이 중 퇴계선생유묵, 퇴계선생서법, 후조당시호교지 및 증직교지는 보물 제 1019호(광산김씨 예안파 종가 전적)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1. 웹 자원
    • 김용만, "후조당 유물"『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김학수, "김부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후조당 유물"『디지털안동문화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후조당 유물"『광산김씨대종중』online, 광산김씨대종중.
    • "후조당 유물"『유교넷』online, 한국국학진흥원.
    • "후조당시호교지"『옛문서생활사박물관』online, 한국국학진흥원.
    • "김부필"『한국고전종합DB』online, 한국고전번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