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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건국은 새로운 질서와 시대의 출발을 의미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그 중심에는 이성계뿐 아니라, 전장을 누비며 역사의 흐름과 함께했던 존재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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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에게는 여덟 마리의 뛰어난 준마가 있었다. 횡운골(구름을 가로지르는 송골매), 유린청(기린처럼 노니는 푸른 말), 추풍오(바람을 쫓는 까마귀), 발전자(벼락을 내뿜는 붉은 말), 용등자(용이 날아오르는 듯한 자줏빛 말), 응상백(서리가 응결된 듯한 흰 말), 사자황(사자처럼 사나운 황색 말), 현표(검은 표범)이며, 이들을 통칭하여 ‘팔준’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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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준은 단순한 탈것이 아니라, 태조 이성계와 함께 조선의 건국 과정에 함께했던 존재였다. 그 가운데 응상백은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 당시 탔던 말로 알려져 있다. 응상백은 털빛이 모두 희고 부리와 눈, 발굽이 검은 특징을 지녔으며, 제주도에서 태어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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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6년 조선 전기의 대표 화가 안견은 세종의 명을 받아 팔준도를 그렸으나, 임진왜란 등을 거치며 소실되어 오늘날에는 전해지지 않는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팔준도는 1705년 숙종 대에 제작된 것으로, 민간에 전해지던 팔준도를 바탕으로 모사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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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시작을 함께 달렸던 팔준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역사 속 숨은 조연으로 남아 있다. 그 가운데 응상백은 제주도에서 태어나 바다를 건너서 나라의 운명을 함께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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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시작을 함께한 제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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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건국은 새로운 질서와 시대의 출발을 의미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그 중심에는 이성계뿐 아니라, 전장을 누비며 역사의 흐름과 함께했던 존재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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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에게는 여덟 마리의 뛰어난 준마가 있었다. 횡운골(구름을 가로지르는 송골매), 유린청(기린처럼 노니는 푸른 말), 추풍오(바람을 쫓는 까마귀), 발전자(벼락을 내뿜는 붉은 말), 용등자(용이 날아오르는 듯한 자줏빛 말), 응상백(서리가 응결된 듯한 흰 말), 사자황(사자처럼 사나운 황색 말), 현표(검은 표범)이며, 이들을 통칭하여 ‘팔준’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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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준은 단순한 탈것이 아니라, 태조 이성계와 함께 조선의 건국 과정에 함께했던 존재였다. 그 가운데 응상백은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 당시 탔던 말로 알려져 있다. 응상백은 털빛이 모두 희고 부리와 눈, 발굽이 검은 특징을 지녔으며, 제주도에서 태어난 말이다. 횡운골은 홍건적을 물리칠 때, 유린청과 용등자, 사자황, 현표는 왜구를 물리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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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6년 조선 전기의 대표 화가 안견은 세종의 명을 받아 팔준도를 그렸으나, 임진왜란 등을 거치며 소실되어 오늘날에는 전해지지 않는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팔준도는 1705년 숙종 대에 제작된 것으로, 민간에 전해지던 팔준도를 바탕으로 모사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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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시작을 함께 달렸던 팔준의 이야기는 오늘날 역사 속 숨은 조연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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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팔준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9780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팔준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9780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조선왕조실록사전 > 팔준도. http://waks.aks.ac.kr/rsh/dir/rview.aspx?rshID=AKS-2007-AEZ-3101&dataID=AKS-2013-CKD-1240001_DIC@00014690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조선왕조실록사전 > 팔준도. http://waks.aks.ac.kr/rsh/dir/rview.aspx?rshID=AKS-2007-AEZ-3101&dataID=AKS-2013-CKD-1240001_DIC@00014690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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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유산진흥원 > 국유정담 > 2014년 01월 - 한국의 말 그림 https://www.kh.or.kr/brd/board/741/L/menu/740?brdType=R&bbIdx=100757 (출처: 한국관광공사)
 
 
* 대한민국 구석구석 > 여행기사 > 제주 말이 궁금해? 궁금하면 여기! 제주 조랑말체험공원 https://korean.visitkorea.or.kr/detail/rem_detail.do?cotid=a7b631cb-b1b3-4492-bb2a-bbcd1e8e8008 (출처: 한국관광공사)
 
 
 
* Cultural Heritage Wiki > 수원 화성. https://dh.aks.ac.kr/~heritage/wiki/index.php/수원_화성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Cultural Heritage Wiki > 화서문(華西門). https://dh.aks.ac.kr/~heritage/wiki/index.php/수원_화성_-_화서문
 
* 유네스코와 유산 > 화성. https://heritage.unesco.or.kr/%ED%99%94%EC%84%B1/ (출처: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2026년 3월 22일 (일) 07:21 기준 최신판

해설

Kor

1

  • 제목: 조선의 시작을 함께한 제주마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여덟 마리의 뛰어난 준마가 있었다. 횡운골(구름을 가로지르는 송골매), 유린청(기린처럼 노니는 푸른 말), 추풍오(바람을 쫓는 까마귀), 발전자(벼락을 내뿜는 붉은 말), 용등자(용이 날아오르는 듯한 자줏빛 말), 응상백(서리가 응결된 듯한 흰 말), 사자황(사자처럼 사나운 황색말), 현표(검은 표범)이며, 이들을 통칭하여 팔준이라고 불렀다. 팔준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태조 이성계와 함께 조선의 건국과 발전을 함께한 존재이다. 1388년 이성계는 명나라의 요구를 따르지 않고 회군하여 이후 조선을 건국하게 된다. 즉 조선 건국의 결정적인 사건인 위화도회군 당시 이성계가 탄 말이 응상백이다.

2

  • 제목: 조선의 시작을 함께한 제주마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여덟 마리의 뛰어난 준마가 있었다. 횡운골(구름을 가로지르는 송골매), 유린청(기린처럼 노니는 푸른 말), 추풍오(바람을 쫓는 까마귀), 발전자(벼락을 내뿜는 붉은 말), 용등자(용이 날아오르는 듯한 자줏빛 말), 응상백(서리가 응결된 듯한 흰 말), 사자황(사자처럼 사나운 황색말), 현표(검은 표범)이며, 이들을 통칭하여 팔준이라고 불렀다. 팔준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태조 이성계와 함께 조선의 건국과 발전을 함께한 존재이다. 특히 그 중 응상백은 이성계가 위화도회군 때 탔던 말로 유명하며, 제주마이다. 1446년 조선 전기의 유명 화가 안견은 조선 세종의 명을 받아 팔준도를 그렸으나, 임진왜란 등으로 소실되어 오늘날에는 전해지지 않는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팔준도는 1705년 숙종대에 그려진 것으로 민간에서 전해지던 팔준도를 모사하여 그린 것이다.


3(지피티)

  • 조선의 시작을 함께한 제주마

조선의 건국은 새로운 질서와 시대의 출발을 의미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그 중심에는 이성계뿐 아니라, 전장을 누비며 역사의 흐름과 함께했던 존재들이 있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에게는 여덟 마리의 뛰어난 준마가 있었다. 횡운골(구름을 가로지르는 송골매), 유린청(기린처럼 노니는 푸른 말), 추풍오(바람을 쫓는 까마귀), 발전자(벼락을 내뿜는 붉은 말), 용등자(용이 날아오르는 듯한 자줏빛 말), 응상백(서리가 응결된 듯한 흰 말), 사자황(사자처럼 사나운 황색 말), 현표(검은 표범)이며, 이들을 통칭하여 ‘팔준’이라 불렀다.

팔준은 단순한 탈것이 아니라, 태조 이성계와 함께 조선의 건국 과정에 함께했던 존재였다. 그 가운데 응상백은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 당시 탔던 말로 알려져 있다. 응상백은 털빛이 모두 희고 부리와 눈, 발굽이 검은 특징을 지녔으며, 제주도에서 태어난 말이다.

1446년 조선 전기의 대표 화가 안견은 세종의 명을 받아 팔준도를 그렸으나, 임진왜란 등을 거치며 소실되어 오늘날에는 전해지지 않는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팔준도는 1705년 숙종 대에 제작된 것으로, 민간에 전해지던 팔준도를 바탕으로 모사된 작품이다.

조선의 시작을 함께 달렸던 팔준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역사 속 숨은 조연으로 남아 있다. 그 가운데 응상백은 제주도에서 태어나 바다를 건너서 나라의 운명을 함께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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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의 시작을 함께한 제주마

조선의 건국은 새로운 질서와 시대의 출발을 의미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그 중심에는 이성계뿐 아니라, 전장을 누비며 역사의 흐름과 함께했던 존재들이 있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에게는 여덟 마리의 뛰어난 준마가 있었다. 횡운골(구름을 가로지르는 송골매), 유린청(기린처럼 노니는 푸른 말), 추풍오(바람을 쫓는 까마귀), 발전자(벼락을 내뿜는 붉은 말), 용등자(용이 날아오르는 듯한 자줏빛 말), 응상백(서리가 응결된 듯한 흰 말), 사자황(사자처럼 사나운 황색 말), 현표(검은 표범)이며, 이들을 통칭하여 ‘팔준’이라 불렀다.

팔준은 단순한 탈것이 아니라, 태조 이성계와 함께 조선의 건국 과정에 함께했던 존재였다. 그 가운데 응상백은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 당시 탔던 말로 알려져 있다. 응상백은 털빛이 모두 희고 부리와 눈, 발굽이 검은 특징을 지녔으며, 제주도에서 태어난 말이다. 횡운골은 홍건적을 물리칠 때, 유린청과 용등자, 사자황, 현표는 왜구를 물리칠 때,

1446년 조선 전기의 대표 화가 안견은 세종의 명을 받아 팔준도를 그렸으나, 임진왜란 등을 거치며 소실되어 오늘날에는 전해지지 않는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팔준도는 1705년 숙종 대에 제작된 것으로, 민간에 전해지던 팔준도를 바탕으로 모사된 작품이다.

조선의 시작을 함께 달렸던 팔준의 이야기는 오늘날 역사 속 숨은 조연으로 남아있다.


5

시도

  • 조선의 시작을 함께한 제주마와 팔준

조선의 시작에는 특별한 말들이 함께했다. 태조 이성계는 여덟 마리의 뛰어난 준마, 팔준을 소유했다. 그 중 하나인 응상백은 서리처럼 하얀 털을 가진 부루말의 일종으로, 위화도회군에도 참여했다. 팔준은 용등자, 유린청, 추풍오, 횡운골 등 다양한 특성을 가진 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세종의 명에 따라 안견은 팔준을 그림으로 그렸다. 이 그림은 1446년 "팔준도"로 완성되었으나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1705년, 숙종은 민간에서 전해지던 팔준도를 모사하여 궁중에 보관하게 했다. 이 팔준도의 복제본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조선의 역사와 문화적 유산을 이어주는 중요한 작품으로 남아있다. 제주마는 이러한 팔준의 전통을 이어받아 제주도에서 천연기념물로 자리 잡았다. 흰색 털을 가진 부루말은 이러한 제주마의 일종으로, 조선의 역사를 상징하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태조 이성계의 용맹함과 지혜는 팔준과 함께 조선의 역사를 새롭게 이끌어갔다. 그들의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 조선의 시작과 제주마의 전설

조선의 시작을 함께한 제주마는 단순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며 여덟 마리의 준마, 즉 팔준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 팔준에는 용등자, 유린청, 응상백, 추풍오, 횡운골과 같은 전설적인 말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응상백은 위화도회군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팔준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조선의 건국과 발전에 기여한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세종은 안견에게 팔준을 그린 그림, 팔준도를 그리도록 명했습니다. 이 그림은 조선의 문화와 역사를 상징하는 중요한 작품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다만, 1705년 숙종이 민간에서 전해지던 팔준도를 모사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하게 했습니다. 팔준 중 하나인 응상백은 부루말로 알려진 흰색 털을 가진 말의 일종으로, 제주마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제주마는 제주도에서 서식하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재래마로, 조선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시작과 함께한 제주마와 팔준의 이야기는 단순히 전설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조선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 조선의 여덟 준마와 제주마의 유산</title>

조선 태조 이성계가 소유했던 여덟 마리 준마, 팔준은 조선 건국의 상징적인 존재였습니다. 팔준에는 횡운골, 추풍오, 응상백 등 다양한 명마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각각 특별한 명칭과 특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응상백은 "서리가 응결한 듯한 순백의 말"이라는 이름 그대로 흰색의 부루말로 분류됩니다. 응상백은 1388년 위화도회군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에 참여한 말로도 알려져 있으며, 조선 건국의 중요한 순간에 역할을 했습니다. 조선의 4대 왕인 세종은 사가인 안견에게 팔준도를 그리도록 명령했습니다. 안견은 조선 전기의 유명한 화가로, 「팔준도」, 「몽유도원도」 등 여러 작품을 남겼습니다. 1446년에 제작된 팔준도는 비록 지금은 전해지지 않지만, 1705년 숙종이 민간에서 전해지던 「팔준도」를 모사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게 했습니다. 팔준은 제주마와도 연결됩니다. 제주도에서 서식하고 있는 제주마는 전통적인 재래마로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제주마는 팔준 중의 일부 종들의 특징을 포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조선의 준마와 제주마의 이야기는 단순한 동물의 이야기를 넘어서, 국가의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며, 오늘날까지도 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 조선의 팔준과 제주마의 전설</title>

조선 건국 초기, 태조 이성계는 여덟 마리의 전설적인 준마, 팔준을 소유했습니다. 이 준마들은 그저 말이 아니라, 조선의 기틀을 마련한 중요한 동반자였습니다. 이 준마들 중 하나인 응상백은 "서리가 응결한 듯한 순백의 말"이라는 뜻을 가지고, 전설적인 부루말로 분류됩니다. 부루말은 일반적인 말과 다르게 흰색 털을 자랑하며, 그 위엄이 남다릅니다. 응상백은 특히 1388년의 위화도회군 사건에 참여한 말로 유명합니다. 이 사건은 이성계가 명나라의 요구를 따르지 않고 회군하여 이후 조선을 건국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그 과정에서 응상백은 조선 왕조의 시작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조선 전기의 유명 화가 안견은 조선 세종의 명을 받아 팔준도를 그렸습니다. 안견은 「팔준도」뿐만 아니라 「몽유도원도」와 같은 명작을 남긴 화가였습니다. 세종은 1418년부터 1450년까지 재위하며 많은 업적을 남겼고, 안견에게 팔준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의뢰했습니다. 팔준도는 당시의 문화를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이었으나, 안타깝게도 현재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대신 1705년에 숙종이 이 팔준도를 다시 그려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하게 했습니다. 이 팔준은 제주도의 천연기념물인 제주마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제주마는 팔준의 유산을 이어받아 그 특성을 간직한 살아있는 재래마로,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제주도의 보물입니다. 조선의 역사 속에서 팔준과 제주마가 남긴 흔적은 여전히 우리의 문화에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자료

팔준도

  • 팔준도 (八駿圖)는 말을 소재로 한 그림 중에 여덟 필의 준마(駿馬: 잘 달리는 우량한 말)를 소재로 한 말 그림이다. 조선 초 개국 이래 태조의 팔준에 관한 부(賦)와 세종 때 이를 그린 기사가 조선왕조실록이나 개인 문집류에서도 산견된다. 안견(安堅) 같은 거장은 적어도 두 번 이상 팔준도를 그렸음이 확인되나 전래되는 작품은 없다. 문인화가 중에서 말 그림을 즐겨 그린 윤두서(尹斗緖)는 「우마도권(牛馬圖卷)」에 말 여덟 마리를 함께 등장시키기도 하고, 전칭작으로 「팔준도」를 남기고 있다. 조선 후기에는 김홍도(金弘道) 전칭의 그림으로 전해지는 8곡 병풍으로 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이 있다. 그리고 조선 말기 장승업(張承業) 및 조석진(趙錫晉)이 남긴 걸작이 잘 알려져 있다.
  • 팔준도가 처음 제작된 것은 1446년(세종 28)이다. 세종대왕(1397~1450·재위 1418~1450)은 북방 오랑캐와 왜구를 몰아내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 백성을 도탄에서 구해낸 이성계의 일생을 칭송하기 위해 <용비어천가>을 전거로 팔준의 모습을 담은 '팔준도'을 만들도록 했다.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안견이 태조의 여덟 마리 말을 그렸고 집현전 학사들은 찬문을 붙여 집현전에 보관했다. 집현전 학사였던 신숙주는 '팔준도부'에서 "적을 무찔러 함락시키고 나라를 깨끗이 맑힌 공적은 실로 말 위에서 얻었으니 말의 공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음이 마땅하다"라고 했다. 1447년 관료들을 대상으로 하는 과거 시험에서도 팔준도를 제목으로 하는 글을 짓도록 했다. 여기서 성삼문(1418~1456)이 장원을 했다. 팔준도는 후대에도 계승된다. 1453년 계유정난을 일으켜 왕위에 오른 세조는 국왕으로 취약한 정통성이 고심이었다. 세조는 태조팔준도를 본따 1463년(세조 9) 잠저시절 끌고 다니던 열두마리의 준마를 묘사한 '십이준도'를 그리게 했다. 실록에서 세조는 "말 달리고 활을 쏘아 승부를 겨루는 날에 남보다 10배나 빨랐으니 삼군(三軍)이 우러러 보고 복종하였던 것은 어찌 말의 도움이 없었다 하겠는가"라며 정난의 합리화를 꾀했다. 폭군으로 악명높은 연산군(1476~1506·재위 1494∼1506)도 자신의 네 마리 말을 그리도록 하고 '사준도'라 불렀다. 태조와 세조의 행적과 권위를 빌어 폭정에 대한 비난여론을 잠재우고 권력을 더욱 강화하려고 했다.
  • 조선시대 도화원의 화원 안견이 1446년과 1447년에 제작한 「팔준도(八駿圖)」는 오늘날 전해지지 않는다.
  • 세종대의 태조팔준도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다. 숙종(1661~1720·재위 1674~1720)은 이를 안타까워하며 1705년(숙종 31) 사대부가에서 전하는 작품들을 모아 팔준을 다시 제작케 했다. 현재 전해지는 그림은(?) 숙종이 도화서 화원에게 명하여 그리게 한 태조 이성계의 여덟 마리 말 그림인 '팔준도첩' 중 '응상백'이다. 서리가 엉긴 것처럼 흰 백마여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이름 옆의 화제는 "순백색(純白色) 오자(烏觜) 오안(烏眼) 오신(烏肾) 오제(烏蹄) 산어제주(産於濟州) 회군시어(回軍時御)"이다. 응상백은 갈기와 꼬리를 비롯해 털빛이 모두 희고 부리와 눈, 발굽이 검은 제주산 말이라고 했다. '회군' 할 때 탔다고 했는데 곧 압록강 위화도에서의 회군이다.
  • "하늘이 영기한 재주를 내시어 백성을 편안하게 살도록 하실때 여섯 준마가 시기를 맞추어 나니. 하늘이 용기와 지혜 가진 분을 주시어 나라의 편안을 위하시매 여덟 준마가 때를 맞추어 나니···" 훈민정음으로 쓴 최초의 작품인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69장 내용이다. 용비어천가는 1445년(세종 27) 정인지 등이 지은 악장이다. 이세민이 나라를 안정시키는데 여섯마리의 말이 도왔듯 이성계의 조선건국 과정에서도 여덟 마리의 말이 함께 했다고 노래는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용비어천가> 여러 곳에서 이성계가 타고 다녔던 말이 언급된다.
  • 실학자 이덕무(1741~1793)의 <앙엽기>는 "우리 태조가 개국할 때 탔던 준마가 8마리 있었다. 첫째는 횡운골로 여진에서 난 것이요, 둘째는 유린청으로 함흥, 셋째는 추풍오로 여진, 넷째는 발전자로 안변, 다섯째는 용등자로 단천, 여섯째는 응상백으로 제주, 일곱째는 사자황으로 강화, 여덟째는 현표로 함흥에서 난 것"이라고 했다. 횡운골은 '구름을 가로지르는 송골매', 유린청은 '기린처럼 노니는 푸른 말', 추풍오는 '바람을 쫓는 까마귀', 발전자는 '벼락을 내뿜는 붉은 말', 용등자는 '용이 날아오르는 듯한 자줏빛 말', 응상백은 '서리가 응결된 듯한 흰 말', 사자황은 '사자처럼 사나운 황색말', 현표는 '검은 표범'이라는 뜻이다. 말은 저마다 이성계와의 사연을 갖고있다. 추풍오와 용등자는 유린청, 횡운골과 마찬가지로 전장에서 화살상처를 입은 역전의 용사다. 사자황은 지리산에서, 현표는 토동(兎洞)에서 왜구를 물리칠 때, 응상백은 위화도 회군때 탔다.
  • 횡운골(홍건적을 물리친 여진산 명마로 '구름을 가로지르는 송골매를 닮은 말'이란 뜻), 유린청(游麟靑ㆍ왜구를 물리쳤던 함흥산 명마로 '기린처럼 노니는 푸른 말'이란 뜻), 추풍오(追風烏ㆍ여진산 흑마로 전쟁터에서 화살 한 발을 맞은 적이 있는 역전의 용사인데 '바람을 쫓아가는 까마귀'란 의미), 발전자(함경도 안변 출신의 말로 '벼락을 내뿜는 붉은 말'이란 뜻), 용등자(龍騰紫ㆍ해주에서 왜구를 물리친 단천 출신의 말로 '용이 날아오르는 듯한 자줏빛 말'이란 의미), 응상백(凝霜白ㆍ위화도 회군 때 탔던 제주도 말인데 '서리가 응결한 듯한 흰 말'이란 의미), 사자황(獅子黃ㆍ지리산에서 왜구를 물리쳤던 강화도 말로 '사자처럼 사나운 황색마'란 뜻), 현표(玄豹ㆍ왜구를 떨게 했던 함흥산 명마로 '검은 표범'이란 뜻) 등 8준마가 안견의 붓끝에서 다시 태어났다.
    • 횡운골(橫雲鶻): 구름을 가로지르는 송골매를 닮은 말.
    • 유린청(遊麟靑): 기린처럼 노니는 푸른 말.
    • 추풍오(追風烏): 바람을 쫓아가는 까마귀 같은 흑마.
    • 발전자(發電赭): 벼락을 내뿜는 듯한 붉은 말.
    • 용등자(龍騰紫): 용이 날아오르는 듯한 자줏빛 말.
    • 응상백(凝霜白): 서리가 응결한 듯한 순백의 말.
    • 사자황(獅子黃): 사자처럼 사나운 황색 말.
    • 현표(玄豹): 표범처럼 검은 점이 있는 말.
  • 안견이 그린 팔준도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전하지 않는다. 숙종 때 안견의 그림을 바탕으로 제작된 '팔준도첩'이 있는데, 이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숙종어제팔준도찬병소서(肅宗御製八駿圖贊井小序)'와 팔폭을 모두 갖춘 '팔준도 화첩'(덕수 2236·42.5×34.8cm)이 소장돼 있다. 세종 대의 팔준도 전통을 계승한 매우 뛰어난 수작 팔준도라는 평가다. 그림 표지 좌측에 전서로 '팔준도원헌진장(八駿圖元軒珍藏)' 제첨이 붙어있고 제1폭 우측 하단에도 '원헌(元軒)' 주문방인(붉은 글씨의 사각도장)이 날인돼 있어 헌종(1827~1849·재위 1834~1849)이 소장한 것임을 안다. 팔준도에는 '전 윤두서 필 팔준도'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윤두서가 말을 잘그렸고 그의 그림체와도 비슷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궁중 수요의 회화제작에 윤두서와 같은 사대부가 참가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워 당시 임금의 촉망을 받는 화원이 그렸을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또다른 팔준도(덕수 2101·168.7×59.7cm)도 전해내려오고 있다. 팔준도는 국보나 보물로 지정돼 있지 않다.
  • 국립중앙박물관엔 여러 팔준도첩이 전하는데 아래 사진이 포함된 팔준도는 사실적 화필의 대가 윤두서(1668~1715)가 그렸다고 전한다. 세종 때 용비어천가와 함께 처음 제작됐고, 당대 최고 화가 안견이 그린 것을 이후 모사해 민간에까지 퍼졌다. 조선 전기 것은 남아 있지 않고 현재 전해지는 건 전란으로 소실된 후 숙종 연간에 제작한 것들을 기준 삼은 모사본들이다.

목장지도

  • 목장지도(보물, 조선 1678년 필사본, 국립중앙도서관)는 1678년에 전국에 분포하는 목장을 그린 필사본 채색지도첩이다. 1권 42면으로 구성된 이 지도첩은 모두 3장으로 구성되었다. 첫 장에는 진헌마정색도(進獻馬正色圖), 두 번째 장에는 도군별 목장상황을 담은 회화식 지도, 세 번째 장에는 이 지도첩의 제작 동기와 시기를 알려주는 허목(許穆)의 기문(記文)이 실려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 이 지도첩은 당시의 마정(馬政)과 목장에 관한 시책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2008년 보물로 지정됐다. 역사상 말은 국가운영에 있어 중요한 동물이어서 삼국시대부터 국가의 마정 체계가 확립돼 있었다. 말의 관리와 정책은 고려시대 들어 더욱 체계적으로 이뤄져 왕실의 말, 전쟁과 외교용 말 등을 공급하는 국영 목장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도 이 같은 정책이 유지돼 국가에선 전국의 목장에 대한 정보를 실은 지도책을 편찬해 마정에 활용했다. 역참과 파발제가 확립되면서 전국의 역에 역마를 배치하고 국가적 행사나 군사적 임무에 이를 활용케 했다. 해당 유물은 1678년(숙종 14)에 중추부사 겸 사복시 제조인 허목(1595~1682)이 이전에 간행됐던 목장지도를 보완해서 편찬한 것이다. 43면으로 구성된 이 지도에 의하면 전국 각도의 말 목장 수는 138개소, 설치된 곳은 53곳이다. 전국의 말은 2만213필로 수말 6939필, 암말 1만3274필이다. 특히 제주도 목장이 전국 말 중에 1만2411필로 가장 높은 비중을 보여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옛말을 실감케 한다.


진헌마정색도

목장지도의 진헌마정색도에는 살곶이 목장을 배경으로 목마도를 그렸다. 이들 말은 실제로 국왕이 타는 어승마 21필이면서 동시에 왕실 목장에서 자유롭게 방목되는 말들을 상징하기도 한다(〈그림 8〉). 이 목장에는 실질적으로 말 관련한 시설이 거의 없다.

마상청앵도

  • 김홍도 필 ‘마상청앵도’(보물, 18세기 말~19세기 초, 간송미술관) 단원 김홍도(1745~1806 이후)의 '마상청앵도'(보물). 시동(侍童)을 대동한 선비가 말을 타고 길을 가던 중 꾀꼬리 한 쌍이 노니는 소리에 말을 멈추고 시선을 돌려 버드나무 위의 꾀꼬리를 무심히 바라보는 모습을 그렸다. 인물 묘사에 사용된 섬세한 필선, 말과 마구에 사용된 부드러운 필법, 선비의 시선과 표정, 대담한 공간감 등이 잘 어우러져 김홍도가 추구한 한국적인 정서가 잘 표출됐다. 사진 국가유산포털 / 조선시대 말 그림은 문인화가와 직업화가 모두가 즐겨 그렸고 말만 그리거나 사람과 함께 등장한 것 등 다채롭다. 기마상·수렵·행렬·마구간·세마 등 풍속화에도 빠지지 않고 중국과 마찬가지로 제왕이나 유명인의 말에 얽힌 고사(故事)의 범주에서 그려지기도 했다. /‘마상청앵도’는 단원 김홍도(1745~1806 이후)가 자연과 교감하는 인간의 세심한 모습을 서정성 깊게 표현한 작품이다. 시동(侍童)을 대동한 선비가 말을 타고 길을 가던 중 버드나무 위에서 노니는 꾀꼬리 한 쌍에 시선을 멈추는 모습이다.

편자 박기

단원의 그림 중엔 이 같은 서정적 풍경 뿐 아니라 ‘단원 풍속도첩’(보물, 국립중앙박물관)의 ‘편자박기’처럼 일상의 말 사육과 관리를 보여주는 장면도 여럿이다. '김홍도필(金弘道筆) 풍속도 화첩(風俗圖 畵帖)'(보물)에 수록된 풍속화 25점 중 '편자 박기'다. 말을 눕힌 다음 네 다리를 나무에 묶어 요동치지 못하게 하고 편자를 박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화면 왼쪽 위에는 땀 흘리는 두 사람의 목을 축여줄 물이 상 위에 놓여 있고, 아래에는 바구니와 공구가 배치되어 화면의 구도를 살리고 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에서는 '편자 박기', '신행', '장터길' 등 교과서로만 접했던 작품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다. 조선 중기의 여류문인 허난설헌 그림으로 전하는 '목마도' 등 품격있는 회화 작품과 삶의 희로애락이 깃든 다양한 풍속화를 만날 수 있다.


군마도

  • 장승업의 '군마도'. 일제강점기 유리건판 촬영본이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18세기 이후 청으로부터 서양 과학과 문물이 유입되고 회화 모든 장르에서 사실적인 화풍이 화두가 되면서 서양화법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이를 반영하듯 이 당시 제작된 군마도에선 물 마시는 말, 휴식을 취하는 말, 초원을 달리는 말, 나뒹굴거나 무리 지은 말 등이 사실적인 필치로 그려져 있다.

이러한 군마도 화풍은 조선 말기 화단의 대표 화가라 할 장승업(1843~1897)에게 이어져 여러 말 그림 걸작들이 남겨져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우리나라의 주요 유적, 유물을 찾아 수록한 『조선고적도보』(1934)에도 그의 ‘군마도’가 소개됐다, 색채나 음영 없이 백묘법(白描法, 동양화에서 색채나 음영 없이 먹으로 윤곽선만으로 대상을 그리는 화법)으로 일곱 마리 말과 인물을 그린 소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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