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광산김씨 김해 스토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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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는 일찍이 사마시에 합격하여 승문원권지정자와 예문관검열을 지낸 문신 관료였다. 고향에서 지내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해는 안동지방과 영남 북부에서 의병장으로써 의병 대열을 지휘하였으며, 전투 상황을 자세히 기록한 진중일기인 『향병일기』와 부대지휘관의 복무지침서인 『서행일기』를 저술하였다. | 김해는 일찍이 사마시에 합격하여 승문원권지정자와 예문관검열을 지낸 문신 관료였다. 고향에서 지내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해는 안동지방과 영남 북부에서 의병장으로써 의병 대열을 지휘하였으며, 전투 상황을 자세히 기록한 진중일기인 『향병일기』와 부대지휘관의 복무지침서인 『서행일기』를 저술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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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30일 (일) 23:33 판
*김해(金垓, 1555~1593)가 임진왜란 때의 구국의 길 가운데 작성한 기록인 향병일기(鄕兵日記)와 행군수지(行軍須知). 향병일기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83호로 지정되어 있다. (문화콘텐츠닷컴, 한국콘텐츠진흥원)
개요
세상이 평화로우면 도학에 전념하는 것이 군자이다. 그러나 나라에 변란이 있으면 칼을 집고 일어서서 구국의 길을 걷는 것이 군자이다.
이것은 광산김씨 예안파 김해(金垓,1555~1641)를 두고 할 수 있는 말이다.
김해는 일찍이 사마시에 합격하여 승문원권지정자와 예문관검열을 지낸 문신 관료였다. 고향에서 지내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해는 안동지방과 영남 북부에서 의병장으로써 의병 대열을 지휘하였으며, 전투 상황을 자세히 기록한 진중일기인 『향병일기』와 부대지휘관의 복무지침서인 『서행일기』를 저술하였다.
내용
『향병일기』는 서문과 발문 없이 1592년 4월 14일 왜적에 의한 동래성 침공 소식으로부터 그 다음해인 1593년 6월 19일 계림전투 중 전사 전까지의 의병 활동 경과를 날짜 별로 기록하고 있다. 즉, 김해가 왜적의 침입 소식을 들은 날로부터 1593년왜군에게 포위되어 경주의 의병 진영에서 장렬히 순국하기 바로 직전까지의 전투 상황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영남 북부 지역의 의병장으로서 여러 고을의 의병을 거느리고 예천, 용궁, 함창 등지 등지에서 벌인 왜군과의 전투 과정과 각종 내역 뿐 아니라 임진왜란 초기 영남 북부 지방의 의병 활동들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였다.
『행군수지』는 부대 지휘관의 정신자세를 논하고 군령을 세우는 방법과 병사를 선발하는 요령, 군마를 얻는 법, 보급문제, 부대훈령 등에 걸쳐서 차례로 기술 했다. 또한 진을 치는 법, 성을 지키는 요령, 간첩 색출, 항복을 받는 요령 등을 차례로 밝혀서 부대 지휘관이 반드시 읽고 익혀야 할 책이었다.
『향병일기』와 행군수지는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에 처한 군자의 의식과 대응 자세를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지역 의병사를 고찰할 수 있기 때문에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기록물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의의
지식 관계망
중심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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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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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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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웹 자원
- "향병일기"
『문화콘텐츠닷컴』online , 한국콘텐츠진흥원. - "향병일기"
『디지털안동문화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임진왜란을 맞아 안동에서 일어난 의병들"
『스토리테마파크』online , 한국국학진흥원. - "[전시한결같이 군자의 길을 걷다.]"
한국국학진흥원 공식 블로그online , 한국국학진흥원. - "향병일기"
국가문화유산포털online , 문화재청.
- "향병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