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군 목포진입(人民軍 木浦進入, 1950.7.24) 6·25 전쟁 당시 목포에 인민군이 도착한 것은 7월 24일로 대부분의 군과 경찰이 작전상 후퇴를 하였기 때문에 별다른 저항이 없었다. 인민군은 1개 소대만 남겨놓고 낙동강 전선으로 투입되었다. 인민군은 진주하자마자 남로당 조직과 인민위원회를 조직하였으며 이 조직을 이용하여 사상교육과 토지개혁, 우익인사 색출에 주력하였다. 8월 들어 지주, 한민당원, 경찰, 군인, 우익계 청년단체인 서북청년단원 등을 색출하여 목포형무소와 연동 미곡창고 등에 1천여명을 수감시켰다. 9월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인민군들은 퇴각하면서 이들 인사들을 대거 학살하였다. 목포는 10월 1일 국군해병대가 목포 해안에 상륙함으로써 수복되었다. [1][2] 국군이 수복한 뒤로는 인민군에게 부역했던 사람들을 색출해 처벌하기 시작했고 이는 학교도 마찬가지여서 마지못해 부역했던 학생들까지도 무차별적인 폭력을 당하는 비극이 연출되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