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참배 반대운동(神社參拜 反對運動, 1937)
1937년 9월 6일 ‘애국절’을 맞아 일제는 전 조선 2백만 학생을 총동원하여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는데, 전남에서는 광주 숭일학교, 수피아학교, 목포에서는 사립 영흥학교와 정명여학교가 신사참배에 반대하여 불참하였다. 이에 일제는 다음날 바로 4개 학교를 폐교명령을 내렸다. 대신 목포의 경우 810명의 학생과 교사들을 제일공립보통학교와 제2공립보통학교에 분산 편입시켰다. [1] 정명여학교는 해방 후인 1947년 9월 23일 4년제 목포정명중학원으로 복교하였고,. 영흥학교는 1952년 3월 21일 목포 영흥중학교로 복교하였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