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의 눈물 탄생(1935)은 일제하 '민족의 노래'였고 지금은 국민 가요라 할 수 있는 "목포의 눈물"이 1935년 이난영의 노래로 세상에 나온 사건이다. 1935년 오케레코드의 향토노래 10대도시 찬가 모집에 당선된 '목포의 눈물'은 목포출신 문일석이 작사하고 갓 데뷔한 18세의 목포출신 이난영이 불러 전국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거두면서 이난영은 단연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하였다. 목포의 눈물은 당시 나라를 잃은 한민족의 슬픔을 어루만지며 호남인들의 애창곡을 넘어 국민가요로 대중들에게 사랑받았다. 목포의 눈물은 1958년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어 흥행을 거두었으며, 1969년 대중가요로서는 국내 최초로 유달산에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건립되었다. 목포시에서 악기점을 하던 박오주(朴午周)씨가 600만원을 기증하여 세워진 노래비이다. 목포의 눈물과 관련하여 이난영 가요제가 1968년 개최되었고, 2003년 목포시 양동에 있는 이난영 생가에 소공원이 조성되었으며, 2006년 경기도 파주에 있던 이난영 묘지를 삼학도 난영공원으로 이전하였다.[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