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비는 그걸 어떻게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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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보

시대 조선-조선 전기(1392~1592)연대 1400 년대 - 2010 년대

이야기

경기도 양주시에 백석읍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에 조선시대 성종 무렵, 우애가 깊은 두 친구가 살고 있었는데, 한 친구의 이름은 ‘바위’이고, 다른 친구의 이름은 ‘두꺼비’이다. 바위는 과거 시험을 보아 병조판서에 오르지만, 다리가 불편한 두꺼비는 점치는 것을 배워 점쟁이가 된다. 점쟁이가 된 두꺼비는 바위의 도움으로 한양에서 유명해진다. 임금의 잃어버린 옥대를 찾아주고, 임금의 시험을 통과해 부자가 되어 두 친구는 우정을 함께 나누었다고 한다.

양주시 백석읍에 살았던 두 친구
경기도 양주시에 백석읍이라는 곳이 있다. 백석읍은 양주시에서 유일한 ‘읍’단위 마을로 ‘흰돌[白石]’이 많다고 해서 생긴 지명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 조선시대 성종 무렵, 우애가 깊은 두 친구가 살고 있었는데, 한 친구의 이름은 ‘바위’였고, 다른 친구의 이름은 ‘두꺼비’였다. 

 


백석촌의 두 친구의 우정


임금의 옥대를 찾아 준 두꺼비
바위와 두꺼비는 모두 명문가(名門家)의 자손이었지만, 두꺼비는 한 쪽 다리가 불편하였다. 그래서 친구들이 두꺼비의 걸음을 흉내내며 놀렸다. 그럴 때마다 바위는 “너희들 두꺼비 놀리지 마. 그러다가 벌 받아!”라며 두꺼비 편이 되어 주었다. 두꺼비는 바위에게 “너는 마음이 좋아 나중에 분명히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라고 하였고, 바위는 두꺼비에게 “다리가 불편해도 성공한 사람이 많아.”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시간이 흘러 바위와 두꺼비가 과거를 볼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두꺼비는 다리가 불편해 과거를 보러 갈 수 없었다. 바위는 과거를 보러 가면서도 두꺼비 생각을 하였다. 과거를 본 바위는 당당히 급제하였다. 과거에 급제한 바위가 고향으로 돌아오자 제일 기뻐한 사람은 두꺼비였다. 



그 이후 바위는 벼슬길에 올라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기에 두꺼비와 자주 만나지 못하였다. 이렇게 십여 년의 시간이 지나 바위는 병조판서에 올랐다. 한편, 두꺼비는 곤궁한 생활을 하였다. 두꺼비는 곤궁한 생활에서 벗어나려 점치는 것을 배워 한양으로 올라갔다. 이 집 저 집을 다니며 점을 쳐 주었지만, 생활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바위는 두꺼비가 한양에서 점을 치고 다닌다는 소식을 듣고 두꺼비를 찾아갔다. 



오랜만에 만난 두 친구는 반갑기도 하지만 서글프기도 해서 서로 말을 잇지 못하였다. 바위가 먼저 “내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네.”, “무슨 말인가?”, “내가 말을 타고 남소문을 갔다 오다가 문 옆 셋째 소나무에 말을 매어 놓겠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말을 잃어버렸다고 소문을 낸 뒤 자네를 청해 점을 치겠네. 그러면 자네는 내가 일러 준 곳에 말이 있다고 말하게.”, “시키는 대로 하지.” 두 친구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다음 날, 병조판서 댁에서 말을 잃어버렸는데, 유능한 점쟁이에게 점을 쳐서 찾는다는 소문이 났다. “대감 타시는 말이 없어졌으니 점을 좀 쳐주시오.” 두꺼비는 산통을 흔들며 중얼거리다가 “그 말이 지금 남소문 밖 셋째 소나무에 매어 있으니 가보시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병조판서 댁 하인은 두꺼비가 가르쳐 준 곳으로 가 보았다. 그곳에 말이 있었다. 이 소문이 퍼져 두꺼비는 한양에서 가장 유명한 점쟁이가 되었다. 



그런데 얼마 후 대궐에서 큰 소동이 벌어졌다. 임금의 옥대(玉帶)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유명한 점쟁이들이 모두 불려갔고, 두꺼비도 곧 불려가야 했다. 두꺼비는 근심에 싸여 있었다. 그 때 한 관원이 찾아왔다. “선생님! 옥대를 훔친 자가 바로 저인데, 선생님 같은 천하의 점쟁이가 점을 치신다니 미리 찾아 온 것입니다. 저 좀 살려 주십시오.” 두꺼비는 “내 이미 알았소.”, “옥대를 대궐 주춧돌 밑에 넣어 둘 테니 가셔서 주춧돌 밑에 있다고 말씀해 주십시오.”하고 관원은 옥대를 가져다가 몰래 대궐 주춧돌 밑에 넣어 두었다. 



다음날 두꺼비는 궁궐로 불려갔다. 그는 한참동안 점을 치는 체하다가 “옥대는 대궐 주춧돌 밑에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은 신하들을 시켜 주춧돌 밑을 찾아보게 하였다. 그곳에 옥대가 있었다. 임금은 감탄하며, 다른 문제를 또 내려고 하였다. 두꺼비는 다음날 하겠다고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걱정이 태산 같았다. 다음 날 죽음을 각오한 두꺼비는 아침 일찍 대궐로 갔다. 임금은 “내가 문제를 낼 터이니 맞춰보아라. 맞추면 큰 상을 내릴 것이다.” 했다. 곧 신하가 상자를 하나 들고 들어왔다. “이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겠는고?” 두꺼비는 산통도 흔들지 않고 묵묵히 상자 앞에 섰다. 시간이 한참 흐르자 모인 사람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두꺼비는 “바위 때문에 두꺼비가 죽는구나!”라고 탄식을 하였다. 그러자 임금이 크게 기뻐하며, “어쩌면 이렇게 용하단 말이냐?”라며 감탄을 하였다. 상자 안에는 커다란 돌 밑에 두꺼비가 깔려 있었다. 두꺼비는 임금으로부터 후한 상금을 받아 부자가 되었다. 두꺼비는 그 후부터 점쟁이 노릇을 그만 두고, 바위와 함께 우정을 나누며, 행복한 여생을 살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