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을 위한 이경석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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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정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8월 18일 (수) 23:29 판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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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조선 병자호란 후 세워진 삼전도비를 아시나요? 
신나는 놀이동산 옆에 홀로 서있는 삼전도비는 참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아픔이 느껴지는 그 삼전도비의 비문을 쓴 사람은 누구인지 아시나요? 과연 그 사람은 진정 그 글을 쓰고 싶었을까요? 
지금도 그 사람의 아픔과 무게가 느껴집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일을 했는지 이번 이야기를 읽으며 갚이 살펴보길 바랍니다. 


  • 정의: 조선후기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 생애 및 활동사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경석(李景奭))
  • 스토리: 이경석(李景奭, 1595~1671)의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호는 백헌(白軒)이다. 치욕으로 얼룩진 병자호란. 이 수모의 역사가 새겨진 삼전도비. 1639년(인조 17) 그 치욕의 삼전도비문을 쓰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누가 고양이 목에 방을 달 것인가. 자신의 명예를 희생해서라도 실리와 현실을 추구하였고 그 후에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앞장서서 직분을 충실하게 이행하였다. 그 어려운 시대를 앞장서서 헤쳐나간 명재상 이경석의 묘소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있다.

관련유물


이야기

옛날 조선 시대 때 청나라 군대가 쳐들어 왔어요.

임금님과 신하들은 맞서 싸웠지만 힘이 약해서 항복할 수밖에 없었죠.

청나라는 조선보다 자신들이 뛰어나다는 내용의 비석을 만들라고 명령했어요.

이경석.jpg

임금님은 글을 쓰는 선비들에게 청나라를 높이는 글을 쓰라고 했어요.

하지만, 누가 그런 치욕적인 글을 쓰고 싶겠어요? 더군다나 조선 시대는 글을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던 시대였어요.

당연히 아무도 비석에 들어갈 글을 안 쓰겠다고 했어요.

그때, 이경석이 말했어요.

“제가 이 비문을 쓰면 사람들은 저를 비겁하다고 욕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걸 쓰지 않는다면 다시 청나라의 군대가 우리 백성을 괴롭힐 것입니다.

저는 차라리 이 나라를 위해 비겁하다는 욕을 듣겠습니다.”

이경석은 슬픈 마음으로 어렵게 어렵게 글을 썼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비석을 보고 이경석을 비겁하다고 욕했어요.

그럼에도불구하고 이경석은 이후로도 묵묵히 3명의 임금님을 섬기며 나라의 어려운 일들을 현명하게 해결해 나갔어요.

그런 이경석을 위해 임금님은 궤장이라는 지팡이와 의자를 선물했어요.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었지요.

임금님은 말했어요.

“참된 용기란, 자신의 명예를 위해 고통받는 백성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과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명예를 버리는 것이다.

이경석은, 모두에게 욕을 먹을 것을 알면서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명예를 버렸으니

이것이야말로 진짜 용기다.”

이경석은 어려운 시기에 진짜 용기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어요.

지금도 이와 관련된 유물들을 경기도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답니다.

지리정보



가상현실


지식관계망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