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비는 그걸 어떻게 알았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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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양주의 백석촌이라는 마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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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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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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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는 서당에서 사이좋은 친구로 지냈습니다. 그런데 두꺼비가 다리가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들에게 종종 놀림을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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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는 그때마다 두꺼비를 놀리는 친구들을 혼내줬고, 두꺼비는 돌이의 착한 마음씨에 감동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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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 두 사람은 어른이 되었고, 돌이는 한양으로 가서 과거에 급제했지만 두꺼비는 다리가 불편해 멀리 한양까지 갈 수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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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는 병조판서라는 높은 관직에 올랐지만, 두꺼비는 과거시험을 보지 못했고 동네엇 점쟁이가 되었어요. 그나마 벌이가 시원치 않아 먹고 사는게 무척 힘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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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가 어렵게 산다는 소식을 들은 돌이는 마음이 아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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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는 두꺼비를 돕고 싶었지요. 이때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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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좋은 생각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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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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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말을 끌고 가 남소문 밖 세 번째 소나무에 매어놓겠네. 그리고 말을 잃어버렸다고 온 한양에 소문을 내는 거야. 그런 뒤 하인들을 너에게 보내 말을 찾아달라고 점을 치게 하겠네, 자네는 그냥 점 치는 시늉만 하다 말이 있는 곳을 말해주면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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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는 알겠다고 하고 두 사람은 헤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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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돌이는 말을 잃어버렸다고 소문을 낸 후 하인들을 돌이가 있는 점집에 보냈죠. 두꺼비는 산통을 요란히 흔들고는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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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조판서의 말은 남소문 밖 세번째 소나무에 매여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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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들은 하인들은 그곳에서 말을 찾았어요. 그리고 놀라워하며 온 한양에 소문을 냈죠. 덕분에 두꺼비는 하루아침에 한양에서 제일가는 점쟁이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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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얼마 뒤, 난리가 났어요. 임금님의 도장인 옥쇄가 없어진 거예요. 임금님은 옥쇄를 찾기 위해 유명한 점쟁이들을 불렀어요. 두꺼비도 임금님을 만나러 가야 했는데 걱정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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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한 관원이 찾아왔죠. 관원은 자신이 옥쇄를 훔쳐 집에 있는 장롱에 숨겨놨다고 했어요. 하지만 신통방통하다는 두꺼비가 점을 쳐 자신의 잘못이 드러날까 봐 겁이 났죠. 그래서 무릎을 꿇고 두꺼비에게 부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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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제발 저 좀 살려 주십시오. 오늘 밤 옥쇄를 궁궐 주춧돌 밑에 숨겨 두겠습니다. 임금님께 제 얘기를 하지 말아 주십시오." 두꺼비는 알겠다하고, 다음날 임금님께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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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는 임금님 앞에서 산통을 흔들었어요. 한참을 흔들다가 멈추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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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 옥쇄는 궁궐 주춧돌 밑에 있습니다." 라고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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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의 명령을 받은 신하들이 주춧돌 밑을 봤는데 정말 옥쇄가 있지 뭐예요? 임금님은 눈이 동그래져 두꺼비의 점술에 감탄했어요. 그리고 문제 하나를 더 내겠다고 했죠. 이 문제를 맞추면 큰 상을 내린다고 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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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는 다음날 하겠다고 하고 집에 왔어요. 하지만 자신이 없었어요. 두꺼비는 혹시 자신의 점이 거짓이라는 게 들통나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밤새 벌벌 떨다 해가 뜨자 궁궐로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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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에는 신하들이 잔뜩 모여있었어요. 모두들 두꺼비의 신통방통 점술이 보고 싶었거든요. 두꺼비는 식은땀을 흘리며 임금님 앞에 갔어요. 그러자 임금님은 상자를 들고 있는 신하를 가리키며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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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상자 안에 무엇이 있는지 맞춰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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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는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당연했죠. 돌이의 말도, 임금님의 옥쇄도, 모두 거짓말이었으니 까요. 어떻게 두꺼비가 그 상자 안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있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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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망설이던 두꺼비는 임금님께 벌 받을 생각에 눈물을 흘리며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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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때문에 두꺼비가 죽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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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임금님은 크게 기뻐하며 "정말 대단하구나"라고 말했어요. 그때 신하가 상자를 열었는데 그 안에는 돌에 깔린 두꺼비가 있었어요. 구경하던 신하들도 탄성을 지르며 감탄했고, 임금님은 약속대로 큰 상을 내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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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는 상을 받아 돌아왔지만, 이제 더는 거짓으로 점치는 일을 하지 않고 정직하게 살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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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정보==
 
==지리정보==

2021년 7월 9일 (금) 09:34 판

개요

경기도 양주의 백석촌이라는 곳에서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백석촌에서 사는 죽마고우인 바위와 두꺼비라는 이름을 가진 두 친구의 이야기로, 처음에는 서로를 선의로 도우려 시작했으나 반복되는 거짓말로 결국은 큰 일을 겪게 된다. 가짜 점쟁이의의 점복담으로 1992년 양주문화원에서 출간한 '양주군지'와 경기문화재단의 '경기도의 설화 및 민담'에 수록되어 있다.

이야기

옛날 양주의 백석촌이라는 마을에
‘돌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와 
‘두꺼비’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살았어요.

두 아이는 서당에서 사이좋은 친구로 지냈습니다. 그런데 두꺼비가 다리가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들에게 종종 놀림을 받았어요. 

돌이는 그때마다 두꺼비를 놀리는 친구들을 혼내줬고, 두꺼비는 돌이의 착한 마음씨에 감동했어요.

시간이 지나 두 사람은 어른이 되었고, 돌이는 한양으로 가서 과거에 급제했지만 두꺼비는 다리가 불편해 멀리 한양까지 갈 수가 없었어요. 

돌이는 병조판서라는 높은 관직에 올랐지만, 두꺼비는 과거시험을 보지 못했고 동네엇 점쟁이가 되었어요. 그나마 벌이가 시원치 않아 먹고 사는게 무척 힘들게 되었습니다.

두꺼비가 어렵게 산다는 소식을 들은 돌이는 마음이 아팠어요.

돌이는 두꺼비를 돕고 싶었지요. 이때였어요.

"나에게 좋은 생각이 있네."
"무슨 말인가?"

"오늘 내가 말을 끌고 가 남소문 밖 세 번째 소나무에 매어놓겠네. 그리고 말을 잃어버렸다고 온 한양에 소문을 내는 거야. 그런 뒤 하인들을 너에게 보내 말을 찾아달라고 점을 치게 하겠네, 자네는 그냥 점 치는 시늉만 하다 말이 있는 곳을 말해주면 되는 거지."

두꺼비는 알겠다고 하고 두 사람은 헤어졌어요.

다음날, 돌이는 말을 잃어버렸다고 소문을 낸 후 하인들을 돌이가 있는 점집에 보냈죠. 두꺼비는 산통을 요란히 흔들고는 말했어요.

"병조판서의 말은 남소문 밖 세번째 소나무에 매여 있소."

이 말을 들은 하인들은 그곳에서 말을 찾았어요. 그리고 놀라워하며 온 한양에 소문을 냈죠. 덕분에 두꺼비는 하루아침에 한양에서 제일가는 점쟁이가 됐어요.

그런데 얼마 뒤, 난리가 났어요. 임금님의 도장인 옥쇄가 없어진 거예요. 임금님은 옥쇄를 찾기 위해 유명한 점쟁이들을 불렀어요. 두꺼비도 임금님을 만나러 가야 했는데 걱정이 됐어요.

그때, 한 관원이 찾아왔죠. 관원은 자신이 옥쇄를 훔쳐 집에 있는 장롱에 숨겨놨다고 했어요. 하지만 신통방통하다는 두꺼비가 점을 쳐 자신의 잘못이 드러날까 봐 겁이 났죠. 그래서 무릎을 꿇고 두꺼비에게 부탁했어요. 

"선생님, 제발 저 좀 살려 주십시오. 오늘 밤 옥쇄를 궁궐 주춧돌 밑에 숨겨 두겠습니다. 임금님께 제 얘기를 하지 말아 주십시오." 두꺼비는 알겠다하고, 다음날 임금님께 갔어요.

두꺼비는 임금님 앞에서 산통을 흔들었어요. 한참을 흔들다가 멈추고는 

"임금님, 옥쇄는 궁궐 주춧돌 밑에 있습니다." 라고 말했어요. 

임금님의 명령을 받은 신하들이 주춧돌 밑을 봤는데 정말 옥쇄가 있지 뭐예요? 임금님은 눈이 동그래져 두꺼비의 점술에 감탄했어요. 그리고 문제 하나를 더 내겠다고 했죠. 이 문제를 맞추면 큰 상을 내린다고 하면서요.

두꺼비는 다음날 하겠다고 하고 집에 왔어요. 하지만 자신이 없었어요. 두꺼비는 혹시 자신의 점이 거짓이라는 게 들통나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밤새 벌벌 떨다 해가 뜨자 궁궐로 갔어요. 

궁궐에는 신하들이 잔뜩 모여있었어요. 모두들 두꺼비의 신통방통 점술이 보고 싶었거든요. 두꺼비는 식은땀을 흘리며 임금님 앞에 갔어요. 그러자 임금님은 상자를 들고 있는 신하를 가리키며 말했어요. 

"저 상자 안에 무엇이 있는지 맞춰 보아라"

두꺼비는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당연했죠. 돌이의 말도, 임금님의 옥쇄도, 모두 거짓말이었으니 까요. 어떻게 두꺼비가 그 상자 안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있었겠어요? 

한참을 망설이던 두꺼비는 임금님께 벌 받을 생각에 눈물을 흘리며 말했어요. 
"돌이 때문에 두꺼비가 죽는구나." 

그러자 임금님은 크게 기뻐하며 "정말 대단하구나"라고 말했어요. 그때 신하가 상자를 열었는데 그 안에는 돌에 깔린 두꺼비가 있었어요. 구경하던 신하들도 탄성을 지르며 감탄했고, 임금님은 약속대로 큰 상을 내렸어요. 

두꺼비는 상을 받아 돌아왔지만, 이제 더는 거짓으로 점치는 일을 하지 않고 정직하게 살기로 했어요.

지리정보

가상현실

지식 관계망


참고문헌

  • 동국대학교한국문학연구소, 『한국문헌설화전집』3.「동야휘집 권4」, 민족문화사, 1981
  • 양주시•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 양주문화대전』-제8권 삶의 이야기(구비전승•언어•문학), 2017. 12. p.59
  • 임동권, 『한국의 민담』, 서문당, 1975
  • 조희웅, 『한국설화의 유형적 연구』.「다시 찾은 옥새」, 한국연구원, 1983
  • 최운식, 『성대문학』23.「‘다시 찾은 옥새’ 설화의 구조와 의미」, 성균관대학교국어국문학과, 1984
  • 한국구비문학회, 『한국구비문학선집』, 일조각, 1977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구비문학대계』, 1980∼1988
  • 한상수, 『한국민담선』, 정음사, 1975


참고: 지역N 제공 이야기 본문

경기도 양주시에 백석읍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에 조선시대 성종 무렵, 우애가 깊은 두 친구가 살고 있었는데, 한 친구의 이름은 ‘바위’이고, 다른 친구의 이름은 ‘두꺼비’이다. 바위는 과거 시험을 보아 병조판서에 오르지만, 다리가 불편한 두꺼비는 점치는 것을 배워 점쟁이가 된다. 점쟁이가 된 두꺼비는 바위의 도움으로 한양에서 유명해진다. 임금의 잃어버린 옥대를 찾아주고, 임금의 시험을 통과해 부자가 되어 두 친구는 우정을 함께 나누었다고 한다.

양주시 백석읍에 살았던 두 친구
경기도 양주시에 백석읍이라는 곳이 있다. 백석읍은 양주시에서 유일한 ‘읍’단위 마을로 ‘흰돌[白石]’이 많다고 해서 생긴 지명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 조선시대 성종 무렵, 우애가 깊은 두 친구가 살고 있었는데, 한 친구의 이름은 ‘바위’였고, 다른 친구의 이름은 ‘두꺼비’였다. 

 


백석촌의 두 친구의 우정


임금의 옥대를 찾아 준 두꺼비
바위와 두꺼비는 모두 명문가(名門家)의 자손이었지만, 두꺼비는 한 쪽 다리가 불편하였다. 그래서 친구들이 두꺼비의 걸음을 흉내내며 놀렸다. 그럴 때마다 바위는 “너희들 두꺼비 놀리지 마. 그러다가 벌 받아!”라며 두꺼비 편이 되어 주었다. 두꺼비는 바위에게 “너는 마음이 좋아 나중에 분명히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라고 하였고, 바위는 두꺼비에게 “다리가 불편해도 성공한 사람이 많아.”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시간이 흘러 바위와 두꺼비가 과거를 볼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두꺼비는 다리가 불편해 과거를 보러 갈 수 없었다. 바위는 과거를 보러 가면서도 두꺼비 생각을 하였다. 과거를 본 바위는 당당히 급제하였다. 과거에 급제한 바위가 고향으로 돌아오자 제일 기뻐한 사람은 두꺼비였다. 



그 이후 바위는 벼슬길에 올라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기에 두꺼비와 자주 만나지 못하였다. 이렇게 십여 년의 시간이 지나 바위는 병조판서에 올랐다. 한편, 두꺼비는 곤궁한 생활을 하였다. 두꺼비는 곤궁한 생활에서 벗어나려 점치는 것을 배워 한양으로 올라갔다. 이 집 저 집을 다니며 점을 쳐 주었지만, 생활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바위는 두꺼비가 한양에서 점을 치고 다닌다는 소식을 듣고 두꺼비를 찾아갔다. 



오랜만에 만난 두 친구는 반갑기도 하지만 서글프기도 해서 서로 말을 잇지 못하였다. 바위가 먼저 “내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네.”, “무슨 말인가?”, “내가 말을 타고 남소문을 갔다 오다가 문 옆 셋째 소나무에 말을 매어 놓겠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말을 잃어버렸다고 소문을 낸 뒤 자네를 청해 점을 치겠네. 그러면 자네는 내가 일러 준 곳에 말이 있다고 말하게.”, “시키는 대로 하지.” 두 친구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다음 날, 병조판서 댁에서 말을 잃어버렸는데, 유능한 점쟁이에게 점을 쳐서 찾는다는 소문이 났다. “대감 타시는 말이 없어졌으니 점을 좀 쳐주시오.” 두꺼비는 산통을 흔들며 중얼거리다가 “그 말이 지금 남소문 밖 셋째 소나무에 매어 있으니 가보시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병조판서 댁 하인은 두꺼비가 가르쳐 준 곳으로 가 보았다. 그곳에 말이 있었다. 이 소문이 퍼져 두꺼비는 한양에서 가장 유명한 점쟁이가 되었다. 



그런데 얼마 후 대궐에서 큰 소동이 벌어졌다. 임금의 옥대(玉帶)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유명한 점쟁이들이 모두 불려갔고, 두꺼비도 곧 불려가야 했다. 두꺼비는 근심에 싸여 있었다. 그 때 한 관원이 찾아왔다. “선생님! 옥대를 훔친 자가 바로 저인데, 선생님 같은 천하의 점쟁이가 점을 치신다니 미리 찾아 온 것입니다. 저 좀 살려 주십시오.” 두꺼비는 “내 이미 알았소.”, “옥대를 대궐 주춧돌 밑에 넣어 둘 테니 가셔서 주춧돌 밑에 있다고 말씀해 주십시오.”하고 관원은 옥대를 가져다가 몰래 대궐 주춧돌 밑에 넣어 두었다. 



다음날 두꺼비는 궁궐로 불려갔다. 그는 한참동안 점을 치는 체하다가 “옥대는 대궐 주춧돌 밑에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은 신하들을 시켜 주춧돌 밑을 찾아보게 하였다. 그곳에 옥대가 있었다. 임금은 감탄하며, 다른 문제를 또 내려고 하였다. 두꺼비는 다음날 하겠다고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걱정이 태산 같았다. 다음 날 죽음을 각오한 두꺼비는 아침 일찍 대궐로 갔다. 임금은 “내가 문제를 낼 터이니 맞춰보아라. 맞추면 큰 상을 내릴 것이다.” 했다. 곧 신하가 상자를 하나 들고 들어왔다. “이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겠는고?” 두꺼비는 산통도 흔들지 않고 묵묵히 상자 앞에 섰다. 시간이 한참 흐르자 모인 사람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두꺼비는 “바위 때문에 두꺼비가 죽는구나!”라고 탄식을 하였다. 그러자 임금이 크게 기뻐하며, “어쩌면 이렇게 용하단 말이냐?”라며 감탄을 하였다. 상자 안에는 커다란 돌 밑에 두꺼비가 깔려 있었다. 두꺼비는 임금으로부터 후한 상금을 받아 부자가 되었다. 두꺼비는 그 후부터 점쟁이 노릇을 그만 두고, 바위와 함께 우정을 나누며, 행복한 여생을 살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