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단리 유적(蔚州 檢丹里遺蹟)
| 주요 정보 | |
|---|---|
| 이칭·별칭 | 울주 검단리 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환호, 도랑, 구덩이, 가마, 구멍무늬 토기, 깊은 바리 토기, 붉은 간 토기, 반달 돌칼, 홈자귀, 돌낫, 고인돌, 돌덧널무덤 |
| 시대 | 청동기 |
| 위치 | 대한민국 |
| 수록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시대편) |
| 집필자 | 배진성 |
| 상세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크기 | 6,338㎡ |
| 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검단리 산62 일대 |
설명
사적.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검단리 산62 일대에 위치한다. 골프장 증설 공사에 앞서 1990년 조사하여, 집자리 92기, 환호(環濠), 도랑(溝) 13기, 구덩이 3기, 무덤 3기, 가마(炭窯) 2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회야강(回夜江)과 곡천천(曲泉川) 사이의 산 능선 중앙부에서 서쪽으로 뻗어 나온 낮은 구릉의 정상부와 서남쪽 사면에 입지한다.
집자리는 대부분 등고선에 평행하며, 형태는 방형과 장방형이 많다. 기둥 구멍의 배치는 방형은 4주식(柱式), 장방형은 6주식이며, 화덕 자리는 중앙에서 한 쪽으로 치우쳐 1개가 설치되었다. 집자리는 유구의 중복 관계와 공간 배치를 통해 환호를 기준으로 하여 3단계로 나누어진다. Ⅰ기는 환호 설치 이전의 취락, Ⅱ기는 환호 취락, Ⅲ기는 환호가 폐기된 후의 취락으로, 각 단계는 시기 폭이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Ⅰ기는 집자리 26기로, 면적은 14㎡를 초과하지 않는 중·소형이 많다. 4호는 길이 3.8m, 너비 4.9m, 깊이 0.2m의 장방형이다. 화재로 폐기된 집자리는 환호가 지나가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환호 설치 시 의도적으로 폐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토기는 일부 빗금무늬(斜線文)도 있지만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가 많으며, 깊은 바리 토기(深鉢)는 손잡이(把手)가 부착된 것이 몇 점 있다.
Ⅱ기는 집자리 17기로, 1단계에 비해 규모가 크다. 5호는 길이 3.64m, 너비 3.78m, 깊이 0.5m의 방형이고, 31호는 길이 5.55m, 너비 3.92m, 깊이 0.4m의 장방형이다. 주거 영역(住居營域)은 환호의 안과 밖으로 나누어지는데, 환호 안은 집자리 6기, 망루로 추정되는 고상식 건물(掘立柱建物址) 1기와 주거 구역과 떨어진 곳에 위치하여 제사용(祭祀用)으로 추정되는 2기의 도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물 중 토기류는 구멍무늬 토기 소수만 남고 짧은 빗금무늬와 횡선무늬(橫線文)가 증가하며, 붉은 간 토기와 손잡이 달린 깊은 바리 토기(把手附深鉢形土器)가 증가한다.
Ⅲ기는 집자리 37기가 확인되었는데, 이전에 비해 집자리의 수도 많아지고 분포 범위도 확대되는 현상을 보여 이전 단계에 비해 인구가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환호가 폐기된 후 구릉의 정상부와 경사면의 두 그룹으로 주거 영역이 구분되며 대형과 소형 집자리 간의 격차도 심해진다. 9호는 길이 5.48m, 너비 3.6m, 29호는 길이 5.52m, 너비 3.72m, 깊이 0.28m의 장방형이다. 출토 유물은 구멍무늬 토기는 소멸되고 Ⅱ기부터 유행한 짧은 빗금무늬와 횡선무늬가 지속되면서 손잡이 달린 깊은 바리 토기는 더욱 증가한다. 석기류는 반달 돌칼, 홈자귀(有溝石斧), 돌낫(石鎌) 등 농경 문화와 관련된 기종이 가장 많다.
환호는 능선을 따라 타원형상으로 둘러져 있는데, 규모는 길이 298m로 남북에 각각 1개씩의 출입구를 기준으로 지름 70~118m이다. 환호 안쪽에는 집자리, 기둥 건물, 도랑, 구덩이가 있으며, 바깥쪽에는 15~20m 정도 떨어져 집자리와 도랑 외에 3기의 무덤이 있다.
무덤은 고인돌 2기와 돌덧널무덤(石槨墓) 1기가 있다. 고인돌 1호는 길이 2.4m, 너비 1.32m, 높이 0.32m의 덮개돌(上石)과 받침돌(支石)로 이루어져 있다. 덮개돌이 덮개돌(蓋石)을 겸하고 지하에 매장 시설을 마련하지 않은 지상식(地上式) 고인돌로 추정된다. 3호는 덮개돌 주위에 석열(石列)을 돌려 묘역(墓域)을 조성하고, 덮개돌 아래에 깬돌을 설치하여 돌덧널의 역할을 한 유사 돌덧널형(類似石槨形)의 지상식이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무덤 구역을 주거 구역과 의도적으로 분리해서 축조한 점으로 보아 영역의 구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유적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조사된 환호 취락 유적으로, 본격적인 환호 취락 유적 연구의 시발점이 되었다. 유적의 시기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22호 2830±100 BP(보정 연대 기원전 880년), 59호 2880±70 BP(보정 연대 기원전 930년), 101호 2660±100 BP(보정 연대 기원전 710년)이다.
조사정보
| 유형 | 조사시기 | 보고서명 | 발간연도 | 조사기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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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1990년 02월~1990년 04월 | 울산검단리마을유적 | 1995 | 부산대학교박물관 |
참고문헌
- 부산대학교박물관(1995). 울산검단리마을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