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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식사전:두루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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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마기
周衣
ckid costume0432
한글 두루마기
한자 周衣
영문(음역) Du-ru-magi
영문(의미) Coat
분류 일상복
성별 남녀공용
시대 조선
연령 성인
신분 모든계층
데이터 소스:
☞ 한국연구재단 한국복식사전 【두루마기】



정의

  • 우리 민족이 예부터 현재까지 입고 있는 남녀의 겉옷(포)
  • Man’s and woman’s coat still worn today; this term means a closed style with no slits

해설

두루마기는 우리의 전통 옷 중 가장 기본적인 옷이라 할 수 있는 저고리에서 길이가 길어진 옷으로, 교임(交袵) 형식으로 여며 입는 옆트임이 없는 긴 옷이다. 곧은 깃에 동정을 달았으며 섶과 겨드랑 아래에 삼각형 무가 있다. 고(故) 김동욱(金東旭, 1922-1990)은 두루마기 명칭이 고려 말 몽고어의 ‘후루막치’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두루마기는 ‘터진 곳 없이 막혔다’는 의미의 ‘두루막이’에서 나온 우리 말에서 비롯된 명칭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자 명칭은 주의(周衣)인데 주막의(周莫衣), 주차의(周遮衣) 등의 기록도 있다. 주의(周衣)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 『영조실록(英祖實錄)』 영조 52年(1776) 3月 9日 기사인 영조의 재궁의대(梓宮衣襨)에 ‘남선단협수주의(藍扇緞狹袖周衣), 연남궁초협수주의(軟藍宮綃狹袖周衣)’가 처음 보인다. 협수주의는 착수주의와 같은 용어이다. 조선 후기에는 소매가 넓은 것은 광수주의(廣袖周衣)라고 하였고 소매가 좁은 것은 착수주의(窄袖周衣), 착수의(窄袖衣), 착수장포(窄袖長袍), 개화 두루마기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다. 『고종실록(高宗實錄)』 권25 고종 25년 10월 28일(병오) 기사에는 착수장포가 보인다. 지금은 두루마기라고 하면 의당 소매가 좁은 두루마기를 의미한다. 여말(麗末) 선초(鮮初) 방배동 출토 남자 목우(木偶)나 국립청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오세검(1563~1611) 묘의 17세기 남자 목우상 등에서 두루마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상류층에서는 두루마기를 겉옷의 받침옷으로 입었으나 서민 계층에서는 겉옷으로 착용하였으며 임진왜란 이후에는 무관의 전복이나 괘자와 함께 군복으로 입었다. 흔히 협수(狹袖)라고 하였다. 두루마기는 1884년(고종 21) 윤5월과 6월에 걸쳐 내려진 갑신 사복변제절목(私服變制節目)에 의해 귀천을 막론하고 입는 대표적인 옷이 되었다. 벼슬이 있는 사람은 두루마기[窄袖衣]에 전복(戰服, 褡護)을 더 입도록 하였으며 서민은 착수의만 착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대한 대신들과 성균관 유생, 지방 유림들의 상소가 빗발치자 생원 진사 등까지도 두루마기에 답호(전복) 착용할 수 있도록 하고 제사(祭祀)와 조문(弔問)에는 도포를 허용하였다. 그 후 계속되는 의복제도 개혁에 의해 두루마기는 점차 확산되어 갔다. 20세기 초 남학생들의 교복으로 고름 대신 단추를 사용하는 두루마기가 입혀지기도 하였다. 장옷을 입었던 여성들도 20세기에 들어 서면서 남자와 마찬가지로 두루마기를 착용하게 되어 명실공히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복식이 되었다.

참고문헌

  • 김미자, 1980, 「두루마기(周衣)의 변천에 관한 연구」, 『서울여자대학 농촌발전연구총서』, 5권 【REF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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