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등재 신청서

논문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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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재신청서

-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

1.0 개요 •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1907년 1월 29일 국채보상운동 발기문이 선포되면서부터 한일강제병합으로 종결될 때까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온 국민적 외채 갚기 운동의 전 과정을 기록한 발기문 및 취지문과 모금 장부 등의 수기手記 기록물, 언론 기록물, 정부 기록물 등을 총칭한다.

• 국채보상운동은 일본이 20세기 초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한 정략적 의도로 1,300만원이라는 거액의 차관을 강요했는데 대한제국 정부가 이 차관과 고리대를 갚을 수 없게 되어 외채망국의 위기에 처했을 때, 전 국민이 스스로 나서서 평화적으로 특히, 자기희생을 통하여 나랏빚을 대신 갚아 국권을 수호하려는 운동이다.

• 국채보상운동은 대구지역의 지식인 ∙ 상공인이 중심이 된 민회民會에서 시작되지만, 당시 거의 모든 신문과 잡지가 참여한 언론 캠페인에 힘입어 전국적으로 순식간에 확산되어, 전 국민이 동참한 풀뿌리 연대의 국민운동으로 발전한다. 이 운동이 전개되자 남성은 술과 담배를 끊은 돈을, 여성은 반지와 비녀 등 패물을, 저잣거리의 서민들은 짚신과 나무를 판 돈을, 학생은 용돈을, 아이는 심부름 돈을 의연금으로 내며, 기생과 걸인, 심지어 도적까지도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호응한다. 이로써 국채보상운동은 한국 최초의 여성 운동, 최초의 학생 운동, 최초의 언론 캠페인, 최초의 전 국민 기부운동 등의 성격을 부여받으며 한국 시민운동의 초기적 양상을 띠게 된다.

• 국채보상운동은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 때 금모으기 운동이라고 하는 신新국채보상운동으로 재현된다. 당시 국가 부도라는 위기상황에서 시민은 자신의 귀금속을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이후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 연이은 유럽의 외채위기, 최근 그리스의 국가부도 위기 등 세계적 부채 위기가 일어날 때마다, 국채보상운동은 채무자의 책임을 다하면서도 채권자의 ‘부추김과 꼬심’의 책임도 함께 묻는, 외채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 방안으로 주목되고 있다. 국채보상운동은 국민적 도리, 혹은 책임을 기본정신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UN 및 세계시민사회에서 벌이고 있는 다양한 사회 책임 캠페인에 중요한 역사적 전범이 되고 있다. 국채보상운동은 서구에서 일반화된 지배계층의 책임Noblesse Oblige과는 구별되는 시민적 책임Citizen’s Oblige에 근거한 행동 규범을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기록물은 서구 근대의 출발을 규정한 「책임장전」 章典으로 명명될 수 있을 것이다.

2.0 신청자

2.1 신청자명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2.2 신청유산과의 관계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소유자 및 관리자 2.3 연락 담당자 엄창옥 :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추진단장 2.4 연락처 이름: 엄창옥 주소: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로 670 전화번호: 053)745-6753 / FAX: 053)746-6753 / E-mail:master@gukchae.com 2.5 권한 선언 본인은 해당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Signature 이름(공동추진위원장) 김영호(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명예이사장) 문희갑(전 대구광역시장) 신동학(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상임대표)

기관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날짜 2015. 8.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