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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 중금당 불상(경주 황룡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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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룡사지(황룡사 중금당 불상)
사소녀, 신라왕경복원사업 아는만큼 느끼는 천년의 역사 경주야행 필수코스, 건강한 언어 사용자, 네이버 블로그.
대표명칭 경주 황룡사지(황룡사 중금당 불상)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320-2
시대 신라



해설문

국문

진흥왕 35년(574)에 인도의 아육왕(阿育王)이 완성하지 못하고 보내온 황금과 황철로 금동장육삼존불상을 조성하고 진평왕 6년(584)에 이 장육상(丈六像)을 봉안하기 위한 중금당을 건립하였다. 장육상은 높이가 1장6척, 즉 16척 크기의 불상을 말하는데, 환산하면 높이 4.8m에 이르는 신라 최대 금동불상이었다.

중금당에는 삼존상 외에 16분의 제자상을 추가하여 모두 19구의 불상이 모셔졌으나 지금은 17구의 대좌(받침돌)만 남아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황룡사 중금당에 봉안되었던 장육상은 574년 조성되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장육상은 높이가 16척인 불상을 이르는 것으로, 1척의 기준에 따라 최소 4.8m에서 최대 5.6m에 이르는 초대형 불상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인도의 아소카왕이 불상을 완성하지 못하고 배에 실어 보낸 황금과 황철을 진흥왕이 수습하여 ‘문잉림(文仍林)’에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 불상은 신라의 3대 보물 중 하나였으나, 1238년 몽골 침입 때 황룡사 전체가 불타면서 함께 소실되었다.

지금은 금당이 있었던 자리에 삼존상의 받침돌만 남아있다.

금동장육삼존불상을 봉안하기 위해 584년에 건립된 중금당에는 삼존상 외에도 16분의 제자상을 추가하여 모두 19구의 불상이 모셔졌다고 전하나, 지금은 남아있는 받침돌은 17개뿐이다.

  • 불삼존상 좌우의 10기 대석은 불제자상, 좌우벽 앞의 4기는 금강역사상과 獅子像, 그 앞 공간의 2기는 공양자상의 것으로 상정하였다. 동일한 구성은 통일신라 연기지방의 불비상에도 보인다. 특히 비암사의 673년 癸酉銘 불비상과 蓮華寺 불비상에도 승려상, 금강역사상, 사자상이 함께 등장하며, 689년 己丑銘 불비상에는 불제자상, 금강역사상, 사자상, 궤좌의 공양자상이 모두 등장한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