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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령전 - 재실"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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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풍화당.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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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333101150000 화령전]", 문화재 검색,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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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국문===
 
===국문===
정전에서 제사를 지낼 때 제사를 주관하는 헌관이 제사를 준비하는 곳이다. 국왕이 직접 제사지낼 때는 어재실로도 쓰였다. 헌관은 재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대기하고 있다가 시간이 되면 재실 앞 동문을 통해 정전 마당으로 들어선다. 동문에서 정전 월대 사이에는 헌관이 나아가는 길을 구분해 놓았으며 월대에 오르기 전에 대기하는 장소인 판위(版位)가 마련되어 있다. 국왕 친제 또는 작헌례 때는 이 길을 따라 국왕이 판위에 나아간다. 제사 시각이 되면 판위에서 월대 동편 계단을 통해 월대에 오른다. 재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1칸반 규모이며 좌우 양 끝에 온돌방이 1칸씩 있고 가운데 3칸은 대청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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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순조 1) 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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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주관하는 헌관이 행사를 준비하는 곳이다. 국왕이 직접 제사를 지낼 때 면 어재실로도 쓰였다. 재실 앞 협문 안쪽으로는 정전까지 어로를 마련하고 잠시 대기하는 장소인 판위(版位)를 설치했다. 1908년 정조 어진을 서울로 옮긴 뒤 빈 화령전을 수원의 풍화당(風化堂) 부로(父老)들에게 관리하도록 하는 조처가 있었는데, 그 흔적으로 재실에 풍화당 현판이 걸려있다.  
  
현재 대청 처마 밑에는 풍화당(風化堂)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1908년 정전에 모시고 있던 정조 어진을 서울로 옮겨 모시고 난 후에 쓸모를 잃은 화령전을 두고 당시 국정을 총괄하던 내각에서 화령전의 빈 건물을 수원의 풍화당 부로들이 머물면서 관리하도록 하라는 명을 내렸다. 풍화당이란 수원 지역 향교 유림을 지칭한다. 이명에 따라 수원의 유림에서 재실을 거처로 사용하면서 풍화당으로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재실 본래의 기능에 맞추어 정전에서 제례를 있을 때 제관이 머무는 장소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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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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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실은 제사를 주관하는 헌관이 준비하는 건물이다. 국왕이 직접 제사를 지낼 때면 어재실(御齋室)로 쓰였다. 재실에서 정전 앞까지 임금이 지나가는 길인 어로와 잠시 대기하는 장소인 판위(版位)가 설치되어 있다. 1908년 어진을 서울로 옮긴 뒤 비어 있는 화령전 건물을 수원의 풍화당(風化堂) 부로(父老)들에게 관리하도록 했는데, 그 이후로 풍화당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영문===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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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oden plaque hung on this building reads “Punghwadang (風化堂),” meaning “a hall for cultivating the customs and discipline of society.” The building got this name in the early 20th century when it was used by local Confucian scholars, after rituals were suspended at Hwaryeongjeon Shrine.
 
The wooden plaque hung on this building reads “Punghwadang (風化堂),” meaning “a hall for cultivating the customs and discipline of society.” The building got this name in the early 20th century when it was used by local Confucian scholars, after rituals were suspended at Hwaryeongjeon Shrine.
  
===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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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수정===
운한각에서 제사를 지낼 때 제사를 주관하는 관리가 제사를 준비하던 곳이다. 왕이 직접 제사에 참여할 때는 이 건물에서 옷을 갈아입고 재실 맞은편의 문을 통해 운한각 마당으로 들어섰다. 재실에서 운한각으로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 바닥에 벽돌을 깔아 동선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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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tual House'''
 
 
처마 밑에는 ‘풍화당(風化堂)’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데, ‘사회의 풍속과 기강을 교화한다’는 뜻이다. 20세기 초 정조의 어진을 서울로 옮긴 후 화령전에서의 제사가 중단되자, 화령전의 재실 건물은 수원의 유림들이 사용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풍화당이라고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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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a ritual house where the officiants prepared to preside over the rituals. When a king took part in the rituals in person, he changed his clothes here. He entered into the courtyard of the main hall through the gate in front of this building and followed the stone pathway to the main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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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에서 제사를 지낼 때 제사를 담당하는 관리가 대기하던 곳이다. 국왕이 직접 제사에 참여할 때는 국왕이 이 건물에서 옷을 갈아입고 정전으로 나아갔다. 건물 앞 출입문에서 정전 까지 왕이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 바닥에 벽돌로 깔아 동선을 표시했다. 실내 중앙 바닥은 나무 판자(마루)를 깔았고 좌우 방은 온돌을 설치했다. 마루와 온돌은 한국의 전통적인 주택의 기본적인 구성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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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 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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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문화유산해설문]]
 
[[분류:문화유산해설문]]
 
[[분류:수원시 문화유산]]
 
[[분류:수원시 문화유산]]
[[분류: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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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수원 화성행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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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18 영문집필]]

2020년 6월 10일 (수) 09:38 기준 최신판


재실 齋室
"화령전", 문화재 검색,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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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 1801년(순조 1) 창건

제사를 주관하는 헌관이 행사를 준비하는 곳이다. 국왕이 직접 제사를 지낼 때 면 어재실로도 쓰였다. 재실 앞 협문 안쪽으로는 정전까지 어로를 마련하고 잠시 대기하는 장소인 판위(版位)를 설치했다. 1908년 정조 어진을 서울로 옮긴 뒤 빈 화령전을 수원의 풍화당(風化堂) 부로(父老)들에게 관리하도록 하는 조처가 있었는데, 그 흔적으로 재실에 풍화당 현판이 걸려있다.

국문 수정

재실은 제사를 주관하는 헌관이 준비하는 건물이다. 국왕이 직접 제사를 지낼 때면 어재실(御齋室)로 쓰였다. 재실에서 정전 앞까지 임금이 지나가는 길인 어로와 잠시 대기하는 장소인 판위(版位)가 설치되어 있다. 1908년 어진을 서울로 옮긴 뒤 비어 있는 화령전 건물을 수원의 풍화당(風化堂) 부로(父老)들에게 관리하도록 했는데, 그 이후로 풍화당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영문

Ritual House

This is a ritual house where the officiants who presided over the rituals prepared for the rituals. When a king took part in the rituals in person, he changed his clothes here and entered into the courtyard of the main hall through the gate in front of this ritual house. A brick pathway was laid to mark the path from this ritual house to the main hall.

The wooden plaque hung on this building reads “Punghwadang (風化堂),” meaning “a hall for cultivating the customs and discipline of society.” The building got this name in the early 20th century when it was used by local Confucian scholars, after rituals were suspended at Hwaryeongjeon Shrine.

영문 수정

Ritual House

This is a ritual house where the officiants prepared to preside over the rituals. When a king took part in the rituals in person, he changed his clothes here. He entered into the courtyard of the main hall through the gate in front of this building and followed the stone pathway to the main hall.

VR To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