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해설문

"화령전 - 이안청, 복도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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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nch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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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building was designed to temporarily house the royal portraits in an emergency. At other times, the building was used to store various items necessary for the rituals. A separate roofed corridor was built between Unhangak and this building, and a royal palanquin was used for moving the portraits. Among the remaining ritual facilities constructed in the Joseon period, this is the only case in which the main hall, the temporary housing building, and the corridor are all p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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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9일 (화) 21:55 판


해설문

국문

이안청은 정전을 수리하는 일이 있을 때 임시로 어진을 봉안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정전에서 어진을 가마에 모시고 이안청으로 이동하는 통로에도 지붕을 올려 복도각을 설치했다. 이안청에는 대본을 모시는 대평상과 소본을 모시는 소평상을 마련해 놓고 오봉대병풍도 설치해서 임시로 봉안하는 동안에도 어진 모시는 격식을 유지하도록 했다. 조선초에 지은 전주 경기전이나 함흥 준원전에서는 정전 좌측에 따로 담장을 두르고 별전(別殿)을 세워 임시 봉안처를 두었지만 17세기 이후에는 정전 가까운 곳에 이안청을 두는 것으로 간소화했다. 정전과 이안청 사이에 복도각을 두는 방식은 화령전이 최초의 사례이다. 복도각이라는 건물 유형은 궁궐 내 왕실 가족의 시신을 모시는 빈전이나 신주를 모시는 혼전 앞에 설치해서 제물을 진설하거나 통행로로 사용한 사례가 있지만 어진을 모신 영전 건물에서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다.

이안청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1칸반 규모이며 양 측면 1칸은 토방으로 기물을 보관하는데 쓰이고 가운데 2칸을 대청으로 삼아 그 안에 대평상과 소평상을 두는 공간을 갖추었다. 복도각의 바닥에는 전돌을 45도 방향으로 깔았는데, 이처럼 사람이 이동하는 곳에 까는 전돌을 45도 각도로 까는 방식은 옛 그림 등에서도 확인된다. 현존하는 조선시대 제사 시설 가운데 정전과 이안청, 복도각이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사례는 화령전이 유일하다.

  • 연혁 - 1801년(순조원년) 건립 / 1966년 수리
  • 구조 - 목조 홑처마 맞배지붕

영문

Iancheong

This building was designed to temporarily house the royal portraits in an emergency. At other times, the building was used to store various items necessary for the rituals. A separate roofed corridor was built between Unhangak and this building, and a royal palanquin was used for moving the portraits. Among the remaining ritual facilities constructed in the Joseon period, this is the only case in which the main hall, the temporary housing building, and the corridor are all preserved.

영문 해설 내용

이안청은 유사시 운한각의 어진을 임시로 모셔두기 위해 마련한 건물이다. 평상시에는 제사에 필요한 물건을 보관하는 데 쓰였다. 운한각과 이안청 사이에는 지붕을 올린 연결 통로를 별도로 가설했고, 어진을 옮길 때에는 가마에 모셔서 이동했다. 현존하는 조선시대 제사시설 가운데 정전, 이안청, 복도각이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사례는 이곳이 유일하다.


정전에 모시고 있는 초상화를 임시로 옮겨 두기 위해 마련한 건물이다. 정전을 수리하거나 크게 청소를 하는 경우에 초상화를 이곳에 모셔두었다. 평상시에는 제사에 필요한 물건을 보관하는 곳으로 쓰였다. 정전과 이 건물 사이에 연결 통로를 두었는데, 이런 연결 통로를 갖춘 제사시설은 이 건물 이전에는 보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