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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영암사지 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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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1월 16일 (토) 05:2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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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영암사지 귀부
Tortoise-shaped Pedestals at Yeongamsa Temple Site, Hapcheon
합천 영암사지 귀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합천 영암사지 귀부
영문명칭 Tortoise-shaped Pedestals at Yeongamsa Temple Site, Hapcheon
한자 陜川 靈岩寺址 龜趺
주소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산 170-1
지정번호 보물 제489호
지정일 1968년 12월 19일
분류 유물/불교조각/석조/귀부이수
시대 통일신라
수량/면적 2기
웹사이트 합천 영암사지 귀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귀부(龜趺)는 거북모양의 돌비석 받침돌이다. 합천 영암사터의 거북받침[龜趺]은 법당터의 동서에 각각 1구씩 배치되어 있다. 두 거북받침 모두 비(碑)와 머리장식[螭首]이 결실되었다.

동쪽 귀부는 용머리를 약간 아래로 향하고 여의주를 물고 있다. 앞발은 없어졌고, 뒷발만 남아있다. 등에는 육각의 귀갑문(龜甲文)*이 표현되었고, 그 위에 구름이 새겨져 있다. 비좌(碑座)의 정면과 뒷면에는 당초무늬가 양쪽에는 물고기 두 마리가 깊게 새겨져 있다.

서쪽 귀부는 동쪽 귀부보다 작고, 목을 곧게 세우고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다. 등에 귀갑문을 얕게 새기고, 비좌의 4면에 연꽃무늬를 표현하였다. 전체적으로 조각의 깊이나 섬세함이 동쪽의 것 보다 약하고 조각이 적다.

거북받침은 통일신라 말~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나, 이러한 차이에서 동쪽 귀부가 다소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 귀갑문(龜甲文) : 거북의 등껍질 모양과 비슷한 육각형의 문양.

영문

Tortoise-shaped Pedestals at Yeongamsa Temple Site, Hapcheon

영문 해설 내용

이 2기의 거북 모양 석조각은 비석을 받치던 받침돌이다. 영암사지의 서쪽 건물지 양옆에 1구씩 배치되어 있다. 비문이 새겨져 있던 몸돌과 머릿돌이 없어졌기 때문에, 누구 또는 무엇을 위해 세워진 비석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두 귀부 모두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동쪽 귀부가 다소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동쪽 귀부는 앞발은 없어졌고,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등에는 육각형의 귀갑문과 구름 문양을 새겼고, 등 가운데에 있는 비좌는 당초 문양과 물고기 모양을 새겨 장식했다.

서쪽 귀부는 동쪽 귀부보다 크기가 작고, 역시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등에는 육각형의 귀갑문을 새겼고, 등 가운데에 있는 비좌는 연꽃 문양을 새겨 장식했다.

참고자료

  • 지자체 제공 조사자 의견 -> 법당터는 발굴조사보고서와 안내판에 서금당터로 일컫어지고 있지만, 좌우에 부도탑비를 얹고 있을 귀부가 있기 때문에 금당터라기 보다 고승의 진영을 모시는 전각이 있었을 것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 영암사터의 두 귀부는 비가 남아있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둘중의 하나는 적연선사탑비로 추정되고 있다. 귀부의 제작시기는 「영암사적연국사자광탑비」 비문을 통해 11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 합천 영암사지 귀부(보물 489호), 비석을 올렸던 거북받침돌, Culture & History Traveling, 개인 블로그 http://www.dapsa.kr/blog/?p=43519 -> 상세 사진
  • 한국의 사지 현황조사보고서 上 – 경상남도, 문화재청, 2019. pp.513-516 -> 기본 설명 상세
    • 영암사는 8세기에서 9세기 사이에 처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고려 때의 승려 적연선사(932-1014)에 의한 중창, 중심 사역 변화 등을 거치며 18세기까지 존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8차례에 걸쳐 발굴조사 등이 이루어졌으며, 다수의 건물지와 관련 유물들이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