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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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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수동면소재지 뒤의 연화산에 있는 옛 산성이다. 성벽은 길이 1,218m, 높이 4m정도로, 성안의 면적은 116,909m2이다. 성벽은 모나게 가공한 납작한 돌과 자연석을 단단하게 쌓아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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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은 적과의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 산을 이용하여 쌓은 성을 말한다. 사근산성은 영남 지방과 호남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에 있다. 지형적으로 동, , 남쪽은 남강과 접한 절벽을 끼고 있는 전략지로 호남의 곡창 지대를 노리는 왜구의 침입을 차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3개의 연못과 봉수대가 기록되었는데, 봉수대의 흔적은 지금도 잘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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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쌓은 시기는 산성의 규모와 이곳이 신라와 백제의 분쟁 지역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삼국 시대로 추정된다. 고려 말 1380년 왜장 아지발도(阿只拔都)가 침입하였을 때 감무(監務)고려·조선 초기 군현에 파견되었던 지방관 장군철이 대항하였으나 패전하여 500여 명이 전사하였다. 조선 1481년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도 이 성에 대한 기록이 있어서 조선 시대까지 성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신라시대에 백제에 대비해 쌓았다고도 전하며, 함양읍지는 1380년에 왜구의 침입에 죽음으로 항전했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서부 경남에서 호남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성 아래로 거창과 함양읍 방면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내려다보인다. 산성 아래의 강은 남강에 합류하는 경호강의 지류로 수운으로도 중요한 지역이었다. 이러한 수륙교통의 요지로서, 조선시대에는 수동에 사근역원이 두어졌고, 산성도 다시 수축되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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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은 능선을 따라 바깥쪽 벽에만 돌을 쌓는 편축(片築) 방식을 바탕으로 길고 네모난 돌을 ‘품(品)’자 형으로 쌓았다. 또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주변 계곡 일대를 돌아가며 성벽을 쌓는 포곡식(包谷式) 형태를 취해 7세기경 신라 산성의 축성 기법이 잘 나타나 있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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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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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geunsanseong Fortress, Hamyang'''
함양군 수동면 연화산(해발 443m) 정상부에 쌓은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테뫼식 산성이란 머리띠처럼 산 정상을 성벽으로 둘러싼 산성을 말한다. 사근산성의 둘레는 약 1.2km이며, 성벽의 높이는 약 5m로 사각으로 다듬은 돌과 자연석을 어긋나게 쌓았다. 산성의 원래 이름을 알 수 없으나 산성 남쪽에 조선시대 때 사근역(沙斤驛)이 있어 사근산성이라 부른다.
 
  
사근산성은 신라가 쌓은 산성이다. 성벽 바깥쪽 기단에서 보축시설이 확인되는데 이러한 시설은 함안의 성산산성, 김해의 양동산성, 거창의 거열산성 등 신라 산성에서 확인된다. 또 『삼국사기』에 ‘624년 신라의 속함(速含 함양의 옛 이름)을 비롯한 6성()을 공격해 함락시켰다.’는 기록이 있으며, 산성 안에서 신라계 유물과 백제계 유물이 함께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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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tone fortress encircling the peak of Yeonhwasan Mountain (443 m above sea level)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57 BCE-668 CE) and used until the Joseon period (1392-1910).
  
사근산성은 영·호남을 잇는 교통의 요지이자 남강에 인접한 전략지여서 백제와 신라의 치열한 공성전이 펼쳐졌던 곳이며, 고려 말 남해안에서 호남 내륙으로 침입하는 왜구를 방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산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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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fortress was located at a strategic pass and was therefore a site of fierce conflicts between the Baekje kingdom (18 BCE-660 CE) to the west and the Silla kingdom (57 BCE-935 CE) to the east. The fortress also played a very important role in guarding against Japanese pirates who invaded from the southern coast in an attempt to reach the fertile lands of the Jeolla region.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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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ording to historical sources, it is said that when the Japanese invaded this area in 1380, around 500 people died here in battle. The fortress was neglected for centuries until it was repaired in the late 15th century.
사근산성은 연화산(해발 443m) 정상부를 둘러 쌓은 석성이다. 삼국시대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성이 위치한 곳은 영·호남을 잇는 교통의 요지이자 남강에 인접한 전략지여서 백제와 신라의 치열한 공성전이 펼쳐졌던 곳이다. 또한 고려 말에는 남해안에서 호남 내륙으로 침입하는 왜구를 방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산성이었다. 산성의 원래 이름은 알 수 없으며, 조선시대에 산성 남쪽에 사근역(沙斤驛)이 있었기 때문에 사근산성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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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ortress wall measures about 1.2 km in circumference and about 5 m in height. The walls are made of rectangular stones and were built using a technique typical of the 7th century. Inside the fortress, various remains were excavated, including building and gate sites and a stone pond, as well as artifacts from the Baekje and Silla kingdoms.
  
둘레는 약 1.2km이며, 성벽의 높이는 약 5m로 사각으로 다듬은 돌과 자연석을 어긋나게 쌓았다. 산성 안에서는 신라계 유물과 백제계 유물이 함께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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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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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근산성은 연화산(해발 443m) 정상부를 둘러 쌓은 석성이다. 삼국시대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다.
  
====자문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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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 위치한 곳은 경상도 지역과 전라도 지역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으며, 서쪽의 백제와 동쪽의 신라가 치열한 분쟁했던 지역이다. 또한 남해안에서 호남 내륙의 곡창지대로 침입하는 왜구를 방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분야별 자문위원 1
 
#*삼국시대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삼국시대 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둘레는 약 1.2km이며, 성벽의 높이는 약 5m로 사각으로 다듬은 돌과 자연석을 어긋나게 쌓았다. 산성 안에서는 신라계 유물과 백제계 유물이 함께 출토되었다. →성의 둘레는 약 1.2km이며, 성벽의 높이는 약 5m로 사각으로 다듬은 돌과 자연석을 어긋나게 쌓았다. 산성 안에서는 건물터와 문터, 돌로 만든 연못 등이 확인되며, 신라계 유물과 백제계 유물이 함께 출토되었다.(둘째 단락으로 이동)
 
#분야별 자문위원 2
 
#*발굴조사 결과 성벽이 무너지지 않게 외벽 하단부를 보강한 기단보축 성벽과 남문지, 집수지 등이 확인되었다.
 
#*성벽의 너비는 지형에 따라 4~9m 이며, 남아 있는 높이는 4.4m 정도이다. 성벽은 사각형의 다듬은 돌과 자연석을 이용하여 한자의 󰡐품(品)자󰡑처럼 좌우 돌의 수평을 맞추면서 상하 돌은 서로 트인 부분이 어긋나게 줄을 맞추어 쌓아 고대산성의 성벽 쌓는 수법과 서로 통하고 있다. 산성 안에서는 신라계 유물과 백제계 유물이 함께 출토되어 성벽의 쌓는 수법과 함께 삼국시대 때 쌓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성이 위치한 곳은 영·호남을 잇는 교통의 요지이자 남강에 인접한 전략지여서 백제와 신라가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던 곳이다.
 
 
 
====2차 수정====
 
사근산성은 연화산(해발 443m) 정상부를 둘러 쌓은 석성이다. 삼국시대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성이 위치한 곳은 영·호남을 잇는 교통의 요지이자 남강에 인접한 전략지여서 백제와 신라가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던 곳이다. 또한 고려 말에는 남해안에서 호남 내륙으로 침입하는 왜구를 방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산성이었다. 산성의 원래 이름은 알 수 없으며, 조선시대에 산성 남쪽에 사근역(沙斤驛)이 있었기 때문에 사근산성이라 부른다.
 
 
 
성의 둘레는 약 1.2km이며, 성벽의 높이는 약 5m로 사각으로 다듬은 돌과 자연석을 어긋나게 쌓았다. 산성 안에서는 건물터와 문터, 돌로 만든 연못 등이 확인되며, 신라계 유물과 백제계 유물이 함께 출토되었다.
 
 
 
=='''문맥요소'''==
 
===Nodes===
 
 
 
===Li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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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의하면 1380년 왜구가 침입하였을 때 패전하여 500여 명이 전사하였으며, 이후 성은 방치되어 있다가 15세기 후반에 보수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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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둘레는 약 1.2km이며, 높이는 약 5m이다. 성벽은 능선을 따라 네모난 돌을 쌓았으며, 7세기의 전형적인 축성 방식을 사용하였다. 산성 안에서는 건물터와 문터, 돌로 만든 연못 등이 확인되며, 신라 유물과 백제 유물이 함께 출토되었다.
  
 
=='''참고자료'''==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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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사적]]
 
[[분류:사적]]
 
[[분류:성곽]]
 
[[분류: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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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20 영문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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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2020 국문집필]] [[분류: 2020 국문초안지원사업]]

2021년 2월 5일 (금) 16:34 기준 최신판


함양 사근산성
Sageunsanseong Fortress, Hamyang
함양 사근산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함양 사근산성
영문명칭 Sageunsanseong Fortress, Hamyang
한자 咸陽 沙斤山城
지정번호 사적 제152호
지정일 1966년 9월 8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수량/면적 93,808
웹사이트 함양 사근산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산성은 적과의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 산을 이용하여 쌓은 성을 말한다. 사근산성은 영남 지방과 호남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에 있다. 지형적으로 동, 서, 남쪽은 남강과 접한 절벽을 끼고 있는 전략지로 호남의 곡창 지대를 노리는 왜구의 침입을 차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성을 쌓은 시기는 산성의 규모와 이곳이 신라와 백제의 분쟁 지역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삼국 시대로 추정된다. 고려 말 1380년 왜장 아지발도(阿只拔都)가 침입하였을 때 감무(監務)고려·조선 초기 군현에 파견되었던 지방관 장군철이 대항하였으나 패전하여 500여 명이 전사하였다. 조선 1481년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도 이 성에 대한 기록이 있어서 조선 시대까지 성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성벽은 능선을 따라 바깥쪽 벽에만 돌을 쌓는 편축(片築) 방식을 바탕으로 길고 네모난 돌을 ‘품(品)’자 형으로 쌓았다. 또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주변 계곡 일대를 돌아가며 성벽을 쌓는 포곡식(包谷式) 형태를 취해 7세기경 신라 산성의 축성 기법이 잘 나타나 있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영문

Sageunsanseong Fortress, Hamyang

This stone fortress encircling the peak of Yeonhwasan Mountain (443 m above sea level)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57 BCE-668 CE) and used until the Joseon period (1392-1910).

This fortress was located at a strategic pass and was therefore a site of fierce conflicts between the Baekje kingdom (18 BCE-660 CE) to the west and the Silla kingdom (57 BCE-935 CE) to the east. The fortress also played a very important role in guarding against Japanese pirates who invaded from the southern coast in an attempt to reach the fertile lands of the Jeolla region.

According to historical sources, it is said that when the Japanese invaded this area in 1380, around 500 people died here in battle. The fortress was neglected for centuries until it was repaired in the late 15th century.

The fortress wall measures about 1.2 km in circumference and about 5 m in height. The walls are made of rectangular stones and were built using a technique typical of the 7th century. Inside the fortress, various remains were excavated, including building and gate sites and a stone pond, as well as artifacts from the Baekje and Silla kingdoms.

영문 해설 내용

사근산성은 연화산(해발 443m) 정상부를 둘러 쌓은 석성이다. 삼국시대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다.

성이 위치한 곳은 경상도 지역과 전라도 지역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으며, 서쪽의 백제와 동쪽의 신라가 치열한 분쟁했던 지역이다. 또한 남해안에서 호남 내륙의 곡창지대로 침입하는 왜구를 방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1380년 왜구가 침입하였을 때 패전하여 500여 명이 전사하였으며, 이후 성은 방치되어 있다가 15세기 후반에 보수되었다고 한다.

성의 둘레는 약 1.2km이며, 높이는 약 5m이다. 성벽은 능선을 따라 네모난 돌을 쌓았으며, 7세기의 전형적인 축성 방식을 사용하였다. 산성 안에서는 건물터와 문터, 돌로 만든 연못 등이 확인되며, 신라 유물과 백제 유물이 함께 출토되었다.

참고자료

  • 사근산성,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 함양사근산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