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선고인 합동위령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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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기존 국문=

조선후기 홍도원에 묻혀진 원홍주 등 6군상무사 소속의 이름 없는 보부상들을 제사하기 위한 위령제단이다. 이곳 홍도원의 묘소가 있던 땅을 경지로 사용하기 위해 밭으로 개간하면서 거기에 있던 유골을 한 곳에 모아 묻고 합동으로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현재는 개간한 밭을 경작하지 않아 느티나무 등을 심어놓은 상태이다.

수정 국문

초고

이 비석은 조선후기 홍도원에 묻혀진 원홍주 등 6군상무사(元洪州等六郡商務社壇祭碑) 소속의 이름 없는 보부상들을 제사하기 위한 위령제단에 세워진 것이다.

보부상은 봇짐장수인 보상(褓商)과 등짐장수인 부상(負商)을 합쳐서 부르는 말로, 조선 후기 시장의 발달과 함께 등장하여 해방이후까지 활동하였던 상업단체로 근대의 상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원홍주 등 6군상무사는 서해안의 홍성·광천·보령·청양·대흥·결성 등 6군 중심의 상권을 관할하였다.

한식 제사 전날 상무사의 초대접장인 임인손(林仁孫)의 묘에서 제사를 지내고, 한식제 당일에는 원홍주 등 6군상무사 단제비(元洪州等六郡商務社壇祭碑)를 시작으로 6기의 묘소를 들른 다음 이곳 합동위령비로 간다. 홍도원의 공동묘지는 별다른 연고 없이 떠돌아다니던 보부상들에게는 사후 안식처이자 이들을 하나로 묶는 매개체가 되었다.

1차 수정

이 비석은 조선 후기에 홍도원에 묻힌 원홍주 6군상무사 소속의 이름 없는 보부상들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1967년에 세워졌다.

원래 이곳 홍도원에는 묘소가 여럿 있었다고 하며, 땅을 밭으로 개간하면서 유골을 한곳에 모아 합장하였다. 지금도 매년 한식날(4월 5일경)에는 제사를 지내는데, 술과 밥 등을 봉분 위에 뿌려 놓아 많은 영혼들이 흡족히 먹을 수 있도록 한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이름 없는 보부상 → 이름을 알 수 없는 보부상
      • 수정이유: 정확히 표현하면, 이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것임.
    • 많은 영혼들이 → 많은 영혼이
      • 수정이유: ‘많은’과 같은 수식어가 들어가면 복수형을 쓰지 않음.

2차 수정

조선 후기 홍도원에 묻힌 원홍주 6군상무사 소속의 이름을 알 수 없는 보부상들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1967년에 세운 비석이다.

원래 이곳 홍도원에는 묘소가 여럿 있었다고 하며, 땅을 밭으로 개간하면서 유골을 한곳에 모아 합장하였다. 지금도 매년 한식날(4월 5일경)에는 제사를 지내는데, 술과 밥 등을 봉분 위에 뿌려 놓아 많은 영혼이 흡족히 먹을 수 있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