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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구룡사 사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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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구룡사 사적비
청주 구룡사 사적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청주 구룡사 사적비
한자 淸州 九龍寺 事蹟碑
주소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135-1
지정번호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99호
지정일 2009년 3월 6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청주 구룡사 사적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상당산성 성 내에 있었던 구룡사의 내력을 기록한 사적비로, 1764년(영조40) 은재거사(隱齋居士)가 비문을 짓고 글을 썼다. 본래 상당산성 남동쪽 서남 암문 안쪽에 있었는데, 1970년대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조선시대 상당산성에는 성을 관리하는 승병들이 머무는 사찰이 구룡사를 포함하여 3곳 이상 있었지만, 현재는 모두 사라지고 사적비만 전해지고 있다. 비석에는 구룡사의 창건배경과 상당산성의 개축 사실 등이 기록되어 있다. 비문에 따르면 1716년(숙종42) 상당산성을 개축하고 삼남지역(충청도ㆍ전라도ㆍ경상남도)의 요충지로 삼았으며, 구룡사는 1720년(숙종46)에 도천(道天)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청주 구룡사 사적비는 임진왜란 이후 상당산성의 개축과 산성 유지보수를 위해 성 안에 사찰이 운영되었음을 알려주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사적비는 상당산성 안에 있었던 구룡사의 내력과 함께 상당산성의 개축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1764년에 세웠다.

비석은 본래 구룡사가 있었던 자리로 추정되는 산성의 서남쪽 암문 근처에 있었는데, 1970년대에 현재 위치인 성의 남문(공남문) 앞으로 옮겨졌다.

비석은 사각형의 바닥돌 위에 몸돌을 올리고, 건물의 지붕 모양을 본뜬 머릿돌을 올린 형태이다. 비문을 짓고 글씨를 쓴 사람은 은재거사로, 그의 행적에 대한 다른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비문에 따르면, 구룡사는 1720년 도천(道天) 스님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1743년에는 구룡사의 극락보전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사찰의 건물은 모두 사라진 상태이다.

한편, 비문을 통해 절을 창건할 당시 절도사였던 이태망과 홍서일이 성 안에 군영의 건물을 새로 짓고 연못을 팠다는 사실, 이곳이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했으며, 성 안에 두 곳의 사찰이 더 있었다는 사실 등도 확인할 수 있다.


참고자료

  • 역사문화+자연환경 어우러진 명소, 상당산성, 충북innews, 2015.6.10. http://www.cbi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3251 -> 1764년(영조40) 은재거사(恩齋居士)가 쓴 구룡사사적비는 산성 안쪽에 세 곳의 사찰이 있었고, 1716년 대대적인 보수가 있었던 사실을 전한다. 구룡사사적비의 기록을 따라 구룡사 터로 향한다. 구룡사 가까이에 남악사(南岳寺, 南嶽寺)가 있었고 서장대 아래에 장대사(將臺寺)가 있었다. 구룡사는 1720년(숙종 46) 창건하였고, 상당산성도(上黨山城圖)에는 5동의 건물과 장고(醬庫) 등 66칸의 건물이 있었다. 지금의 옛 모습을 간직한 우물과 사적비를 세웠던 비좌가 남아있다.
  • 구룡사지 사적비, 디지털청주문화대전 http://cheongju.grandculture.net/cheongju/toc/GC00201865 -> 비문에서는 구룡사(九龍寺)는 상당산성 서남암문(西南暗門) 안쪽에 있던 사찰로 1720년(숙종 46)에 절도사(節度使) 이태망(李台望)과 홍서일(洪敍一)이 군영의 건물을 신축하고 연못을 팔 때 함께 도천(道天) 스님스님이 창건한 절이라는 건립경위와 1743년에 대방광극락보전(大方廣極樂寶殿)을 완성했다는 사실을 기술했다. 또 1716년 숙종(肅宗) 임금 때 절도사 유성추(柳星樞)에 명하여 상당산성을 개축하게 하여 삼남의 요충지로 삼았다는 내용도 기술했다.
  • 청주 구룡사 사적비,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211330299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