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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창원진해제포진성.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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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801840000 창원 진해 제포진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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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Jepojinseong Fortress, Changwon
 
|한자=昌原 鎭海 薺浦鎭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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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제덕동 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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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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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이 성은 본래 1390년(고려 공양왕 2)에 왜구(倭寇)의 침입을 막기 위해 처음 쌓은 것으로, 조선 성종(成宗)때 경상우도의 해군사령부[慶尙道右水營]으로 사용되었다. 지금 남아 있는 제포진성(薺浦鎭城) 1436년(세종 18년)에 제포를 개항(開港)한 후 왜인(倭人)의 불법 이주(移住)를 막기 위하여, 1437년에 합포(合浦,지금의 마산)에 있던 해군기지[水軍僉節制使營, 절제사는 종3품 관직]를 이곳으로 옮기면서 쌓았다고 한다. 이후 1485년(성종 16년)에 다시 쌓기 시작하여, 이듬해에 완성하였다. 이 성은 산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해안에 이르는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크고 작은 돌로 불규칙하게 쌓았다. 원래의 성벽은 둘레 1,377m, 높이 3~5m, 폭 4.5m 정도로 큰 규모였으나, 지금은 해안 가까이에 100m 정도만 원형대로 남아 있고 나머지는 파괴되었다. 성의 구조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바깥쪽에 반원형으로 쌓은 또 다른 성[曲城]이 있으며, 외부로부터의 접근을 막기 위해 방어용 도랑[垓字]를 둘렀다. 현재 성 안쪽은 경작지로 변해 있어 성 내부의 구조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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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포진성은 조선 시대 수군이 해상 방어를 위해 만든 성이다.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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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제포는 일본인들의 왕래가 많았으며 왜관을 두기도 하였다. 그 뒤 일본인의 수가 늘어나자 왜구의 침입을 막고 왜관을 통제할 수 있도록, 성종 17년(1486) 진성을 지어 제포에 주둔하는 수군을 강화하였다. 중종 5년(1510) 삼포왜란으로 제포가 함락된 이후에는 치소를 인근 웅천읍성으로 옮겼으나 제포진성은 조선 후기까지 사용하였다.  
====초고====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제덕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성곽이다. 고려 공양왕 2년(1390) 왜구의 침략에 대비하여 수군만호진(水軍萬戶鎭)을 처음 설치하였고, 조선 성종 때 경상도 우수영을 설치한 곳이다.
 
  
『성종실록』 17년 10월 29일 기록을 보면 “이 달에 경상도 제포성을 쌓았는데, 높이가 13척이고, 둘레가 4,316척 3촌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진해 제포진성은 축성 당시 4,313척[측정 결과 1,377m]으로, 웅천 읍성[3,514척] 보다 1.23배가량 석성(石城)이었다. 다만 지금은 성체를 볼 수 없으며, 동문지와 해자, 남쪽 축대와 성벽 일부 등이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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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포진성은 산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크고 작은 돌로 불규칙하게 쌓아올렸다. 원래의 성벽은 둘레 1,377m, 높이 2m, 폭 4.5m 정도로 규모였으나, 지금은 해안 근처의 100m 정도만 원형대로 남아있다. 동쪽, 서쪽, 북쪽에는 옹성형의 성문 터가 있고, 성벽 곳곳을 돌출시켜 치성을 두었으며, 성벽 바깥쪽에는 폭 5~9m, 깊이 약 5m의 해자*를 둘렀다. 제포진성 안에는 객사와 동헌**을 비롯하여 여러 관아 건물과 군사 시설을 두었으며 우물도 2개 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성은 산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해안에 이르는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크고 작은 돌로 불규칙하게 쌓았다. 원래의 성벽은 둘레 1,377m, 높이 3~5m, 폭 4.5m 정도로 큰 규모였으나, 지금은 해안 가까이에 100m 정도만 원형대로 남아 있고 나머지는 파괴되었다. 성의 구조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바깥쪽에 반원형으로 쌓은 또 다른 성[曲城]이 있으며, 외부로부터의 접근을 막기 위해 해자(垓字)를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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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자(垓子): 성벽 밖에 도랑을 둘러 파고 물을 채워 적의 침입을 막는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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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 지방 관아에서 고을 수령들이 업무를 처리하던 중심 건물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는 1872년의 『지방지도』 경상도 부분의 「제포진 지도」에 의하면 진해 제포진성 안에는 객사와 동헌을 비롯하여 내아·이청·문루·신당·사령청·포수청·화포청·사공청·장교청·창고 등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또한 『웅천현 읍지』에 의하면 성내에 우물이 2개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성외 시설로는 수군의 무기고 역할을 했던 어변정(禦邊亭)이 있었으며 『웅천현 읍지』에 따르면 웅천현 읍성에서 4리 떨어진 제포 해변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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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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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pojinseong Fortress, Changwon'''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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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pojinseong Fortress was built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to be used by naval forces for maritime def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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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ring the early Joseon period, Jepo Port oversaw the movement and settlement of Japanese people, even operating an Office of Japanese Affairs. In 1486, with the number of Japanese immigrants steadily increasing, a fortress was constructed at Jepo Port to reinforce the naval forces stationed there, protect the port from invasions of Japanese pirates, and to provide control over the government office. In 1510, when Jepo Port was captured by Japanese invaders, the government office was moved to the nearby Ungcheoneupseong Walled Town, but the fortress at Jepo Port continued to be used until the late Joseon period.
  
=='''문맥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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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ortress was built with mixed large and small stones and stretches from the peak of the mountain along its ridge, making use of the natural coastal topography. It was a considerably large construction as its wall originally measured about 1.38 km in perimeter, 2 m in height, and 4.5 m in width. Today, only a segment of the wall along the coast measuring 100 m in length remains in its original condition. There are outer gate sites in the eastern, western, and northern parts of the fortress, several bastions built on the protruding parts of the wall, and a moat measuring 5 to 9 m in width and 5 m in length, which protected part of the wall’s exterior.
===Nodes===
 
  
===Li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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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were various government and military facilities within the fortress walls, including a guesthouse and a local government building. Historical records also mention the existence of two we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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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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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포진성은 조선시대 수군이 해상 방어를 위해 쌓은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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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제포는 일본인들의 왕래와 거주가 허가된 포구였으며, 왜관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일본인의 수가 점차 늘어나자 왜구의 침입을 막고 왜관을 통제할 수 있도록, 1486년 진성을 지어 제포에 주둔하는 수군을 강화하였다. 1510년 왜란으로 제포가 함락된 이후에는 인근의 웅천읍성으로 관아를 옮겼고, 제포는 제포진성으로 조선 후기까지 사용되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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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포진성은 산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해안에 이르는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크고 작은 돌로 불규칙하게 쌓았다. 원래의 성벽은 둘레 1.38km, 높이 2m, 폭 4.5m 정도로 큰 규모였으나, 지금은 해안 가까이에 100m 정도만 원형대로 남아있다. 동쪽, 서쪽, 북쪽에는 옹성형의 성문 터가 있고, 성벽 곳곳을 돌출시켜 치성을 두었으며, 성벽 바깥쪽에는 폭 5-9m, 깊이 약 5m의 해자를 둘렀다.  
* 창원 진해 제포진성 (昌原 鎭海 薺浦鎭城),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801840000
 
 
 
* 창원 진해 제포진성 (昌原 鎭海 薺浦鎭城), 두산백과
 
https://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68493
 
  
* 진해 제포 진성[ 鎭海薺浦鎭城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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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포진성 안에는 객사와 동헌을 비롯하여 여러 관아 건물과 군사 시설이 있었고, 우물도 2개 있던 것으로 전한다.
http://www.grandculture.net/ko/Contents?dataType=99&contents_id=GC02206221
 
  
===참고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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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gallery mode=packed heights=250px>
 
<gallery mode=packed heights=250px>
 
File:창원진해제포진성_해자.jpg|창원 진해 제포진성 해자
 
File:창원진해제포진성_해자.jpg|창원 진해 제포진성 해자
 
</gallery>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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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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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문화재연구원, 『창원 진해 제포진성 – 정밀지표조사보고서』,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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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 진해 제포진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8018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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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 진해 제포진성,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95444&cid=40942&categoryId=33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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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해 제포 진성, 디지털창원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changwon.grandculture.net/changwon/toc/GC02206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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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문화유산해설문]]
 
[[분류:문화유산해설문]]
 
[[분류:창원시 문화유산]]
 
[[분류:창원시 문화유산]]
[[분류:시도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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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경상남도 기념물]]
 
[[분류:성곽]]
 
[[분류:성곽]]
 
[[분류:창원 진해 제포진성]]
 
[[분류:창원 진해 제포진성]]
 
[[분류:2021 국문집필]]
 
[[분류:2021 국문집필]]
 
[[분류:2021 국문초안지원사업]]
 
[[분류:2021 국문초안지원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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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21 영문집필]]

2024년 3월 25일 (월) 15:57 기준 최신판

창원 진해 제포진성
Jepojinseong Fortress, Changwon
창원 진해 제포진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창원 진해 제포진성
영문명칭 Jepojinseong Fortress, Changwon
한자 昌原 鎭海 薺浦鎭城
주소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제덕동 830
지정번호 경상남도 기념물 제184호
지정일 1997년 12월 31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지
수량/면적 8,916㎡
웹사이트 창원 진해 제포진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제포진성은 조선 시대 수군이 해상 방어를 위해 만든 성이다.

조선 초기 제포는 일본인들의 왕래가 많았으며 왜관을 두기도 하였다. 그 뒤 일본인의 수가 늘어나자 왜구의 침입을 막고 왜관을 통제할 수 있도록, 성종 17년(1486) 진성을 지어 제포에 주둔하는 수군을 강화하였다. 중종 5년(1510) 삼포왜란으로 제포가 함락된 이후에는 치소를 인근 웅천읍성으로 옮겼으나 제포진성은 조선 후기까지 사용하였다.

제포진성은 산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크고 작은 돌로 불규칙하게 쌓아올렸다. 원래의 성벽은 둘레 1,377m, 높이 2m, 폭 4.5m 정도로 큰 규모였으나, 지금은 해안 근처의 100m 정도만 원형대로 남아있다. 동쪽, 서쪽, 북쪽에는 옹성형의 성문 터가 있고, 성벽 곳곳을 돌출시켜 치성을 두었으며, 성벽 바깥쪽에는 폭 5~9m, 깊이 약 5m의 해자*를 둘렀다. 제포진성 안에는 객사와 동헌**을 비롯하여 여러 관아 건물과 군사 시설을 두었으며 우물도 2개 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해자(垓子): 성벽 밖에 도랑을 둘러 파고 물을 채워 적의 침입을 막는 시설.
  • 동헌: 지방 관아에서 고을 수령들이 업무를 처리하던 중심 건물

영문

Jepojinseong Fortress, Changwon

Jepojinseong Fortress was built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to be used by naval forces for maritime defense.

During the early Joseon period, Jepo Port oversaw the movement and settlement of Japanese people, even operating an Office of Japanese Affairs. In 1486, with the number of Japanese immigrants steadily increasing, a fortress was constructed at Jepo Port to reinforce the naval forces stationed there, protect the port from invasions of Japanese pirates, and to provide control over the government office. In 1510, when Jepo Port was captured by Japanese invaders, the government office was moved to the nearby Ungcheoneupseong Walled Town, but the fortress at Jepo Port continued to be used until the late Joseon period.

The fortress was built with mixed large and small stones and stretches from the peak of the mountain along its ridge, making use of the natural coastal topography. It was a considerably large construction as its wall originally measured about 1.38 km in perimeter, 2 m in height, and 4.5 m in width. Today, only a segment of the wall along the coast measuring 100 m in length remains in its original condition. There are outer gate sites in the eastern, western, and northern parts of the fortress, several bastions built on the protruding parts of the wall, and a moat measuring 5 to 9 m in width and 5 m in length, which protected part of the wall’s exterior.

There were various government and military facilities within the fortress walls, including a guesthouse and a local government building. Historical records also mention the existence of two wells.

영문 해설 내용

제포진성은 조선시대 수군이 해상 방어를 위해 쌓은 성이다.

조선 초기 제포는 일본인들의 왕래와 거주가 허가된 포구였으며, 왜관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일본인의 수가 점차 늘어나자 왜구의 침입을 막고 왜관을 통제할 수 있도록, 1486년 진성을 지어 제포에 주둔하는 수군을 강화하였다. 1510년 왜란으로 제포가 함락된 이후에는 인근의 웅천읍성으로 관아를 옮겼고, 제포는 제포진성으로 조선 후기까지 사용되었다.

제포진성은 산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해안에 이르는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크고 작은 돌로 불규칙하게 쌓았다. 원래의 성벽은 둘레 1.38km, 높이 2m, 폭 4.5m 정도로 큰 규모였으나, 지금은 해안 가까이에 100m 정도만 원형대로 남아있다. 동쪽, 서쪽, 북쪽에는 옹성형의 성문 터가 있고, 성벽 곳곳을 돌출시켜 치성을 두었으며, 성벽 바깥쪽에는 폭 5-9m, 깊이 약 5m의 해자를 둘렀다.

제포진성 안에는 객사와 동헌을 비롯하여 여러 관아 건물과 군사 시설이 있었고, 우물도 2개 있던 것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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