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도성암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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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16일 (목) 11:04 판
창녕 도성암 석조아미타여래좌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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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창녕 도성암 석조아미타여래좌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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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昌寧 道成庵 石造阿彌陀如來坐像 |
주소 |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자하곡길 147 (송현리 8) |
지정번호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37호 |
지정일 | 2005년 10월 13일 |
분류 |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구 |
웹사이트 | 창녕 도성암 석조아미타여래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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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창녕 도성암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은 창녕 도성암의 대웅전에 모셔진 본존불이다. 양쪽의 협시보살상은 1991년 대웅전을 신축하면서 새로 조성하였다. 불상을 받치고 있는 대좌도 후대에 제작된 것이다.
이 불상은 신체에 비해 머리가 크며 전체적으로 균형감 좋은 몸체, 머리를 앞으로 숙인 자세, 손의 표현 등 조선 후기 불상의 형식적인 특징을 따르고 있다. 법의를 표현하는데 오른쪽 어깨에 비스듬히 곡선을 그리며 내려오는 옷자락이나 양 다리 사이에 두 개의 옷주름이 겹쳐 흘러내리는 등의 특징은 17세기 후반 활동한 승일(勝日) 계보의 조각승에서 보여 지는 특징이다. 다만 이 불상은 승일 계보의 조각승이 만든 불상의 얼굴이나 옷주름 등의 표현과는 이질적이 부분이 보이며, 삼도의 표현이 없고 눈머리 아래 곡선을 그리며 내려오는 코의 표현 등 전통적인 불상의 얼굴 특징과는 다른 부분이 있어 수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불상은 아미타불을 나타낸 것이다. 아미타불은 극락정토의 부처로, 아미타불의 공덕을 기리고 그의 이름을 염(念)하는 모든 중생들은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창녕 도성암 대웅전의 본존불로, 17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양쪽의 협시보살상은 1991년 대웅전을 신축하면서 새로 조성하였다. 불상을 받치고 있는 대좌도 후대에 제작된 것이다.
머리를 숙인 자세의 불상은 흰 재질의 불석으로 조성되었으며 신체에 비해 머리가 크다.
불상은 오른손 끝은 땅을 향하고 왼손은 다리 위에 올린 손모양을 취하고 있다.
대좌는 가운데가 뚫려 비워져 있으며, 그 구멍 아래에는 현대에 제작된 축원문을 적은 다량의 다라니가 납입되어 있다. 불상의 상태는 부분적으로 도금과 나발의 채색이 조금씩 벗겨졌을 뿐 전체적으로 매우 양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