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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응석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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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응석사 대웅전
[ https://www.jinju.go.kr/02793/02258/02282.web?amode=view&idx=289 진주 응석사 대웅전], 진주 관광, 진주시청.
대표명칭 진주 응석사 대웅전
한자 晉州 凝石寺 大雄殿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정평리 741
지정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1호
지정일 1976년 4월 15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불전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진주 응석사 대웅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응석사 대웅전은 보물 제1687호로 지정된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을 모신 불전이다.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중에 불탄 것을 영조 12년(1736)과 광무 3년(1899) 두 차례에 걸쳐 새로 지은 것이다. 그 뒤 1983년과 2003년에 보수하였다. 1983년의 보수 당시에는 처마가 정면과 왼쪽만 겹처마이고 뒷면과 오른쪽은 홑처마였는데, 2003년에 보수하면서 모두 겹처마로 고쳤다. 배흘림기둥은 이 건물의 특징이다. 건물 규모에 비해 지붕이 소박하고 지붕의 마루 선이 비교적 완만하여 안정감을 준다.

신라 진흥왕 15년(554)에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응석사를 세운 뒤 문무왕 2년(662)에 의상대사(義相大師)가 강원(講院)을 열어 교풍을 크게 떨쳤다. 고려 시대의 지공(指空)과 고려 말 조선 초의 무학(無學) 등 큰스님들이 이 절에서 수행하였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봉안한 법당으로, 응석사의 중심건물이다.

응석사는 554년 연기조사가 세웠으며, 662년에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설법했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때 불상 밑에 숨겨진 무기를 발견한 왜군들에 의해 전소되었던 것을 1630년에 중건하였고, 이후 두 차례 더 새로 지어졌다. 대웅전 건물도 사찰 중건 때마다 새로 지어졌으며, 1983년과 2003년에 보수가 이루어졌다.

1983년까지도 처마의 형태가 혼용되어 있었는데, 이것을 2003년 지금의 모습으로 고쳤다고 한다. 건물의 기둥은 중앙 부분이 가장 불룩한 형태이다.

내부에 조성된 불단에는 1643년 청헌을 비롯한 6인의 조각승에 의해 제작된 석가여래삼불좌상[진주 응석사 목조석가여래 삼불좌상, 보물 제1687호]이 모셔져 ᄋᆔᆻ다.

  • 진주 응석사 대웅전, 진주 관광 https://www.jinju.go.kr/02793/02258/02282.web?amode=view&idx=289 -> 이미지 출처/ 기본 정보
  • [진주 응석사 목조석가여래 삼불좌상] 항목 참조 ; 임진왜란으로 사찰이 폐허가 된 후 1630년에 경천敬天, 극순克修, 일휘日輝 세 사람이 발원하여 사찰을 중건하였으며, 1643년 이 삼존상을 조성하여 법당에 모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