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평 추성산성 - 남성 내성 수혈주거지
HeritageWiki
남성 내성 수혈주거지 南城 內城 竪穴住居址 |
|
종합안내판: 증평 추성산성 |
해설문
국문
동향 계곡에 인접한 내성(內城)에서 대규모 수혈주거지[1]가 발견되었다. 주거지는 가로 850cm, 세로 472cm, 깊이 116cm로 한성백제[2] 때 조성된 산성 안 주거지 중 가장 큰 규모이다.
주거지 서북쪽 모서리에 부뚜막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이고, 벽체의 판재와 기둥으로 보이는 목탄과 탄화된 곡물(쌀, 팥)이 출토되어 화재로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된 유물이 대부분 단단하지 않은 장란형[3] 토기, 심발형[4] 토기, 시루[5] 등인 점으로 보아 주거지는 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 ↑ 수혈주거지(竪穴住居址): 땅을 파서 사람이 살던 집.
- ↑ 한성백제: 백제가 위례성 (현재 서울)에 수도를 두고 있었던 기간(BC 18년~AD 475년).
- ↑ 장란형(長卵形): 길쭉한 달걀 모양.
- ↑ 발형(深鉢形): 속이 깊은 사발 모양.
- ↑ 시루: 떡이나 쌀 등을 찔 때 쓰는 한국 고유의 찜 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