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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 추성산성 - 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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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南城
재)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증평 추성산성 종합정비사업 학술연구』, 증평군청, 2016.
Goto.png 종합안내판: 증평 추성산성



해설문

국문

추성산성 남성은 여러 차례 발굴 조사를 통해 4~5세기 백제가 흙으로 성벽을 쌓아 올려 축조한 산성으로 밝혀졌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토대로 성 안에 거주했던 사람들의 자취를 추정할 수 있다.

유구[1]의 특징으로는 첫째, 남쪽 성벽의 성문(城門)이 통행로와 배수로의 역할을 동시에 하여 성문과 수문(水門)의 분화 전 단계를 확인할 수 있다. 둘째, 한성백제[2] 때 산성 중 최초의 돌로 쌓은 우물과 터널 형태의 배수 시설이 확인되어 당시 사람들이 돌을 이용하여 건축물을 축조하는 고도의 기술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셋째, 한성백제 때 산성 중 최대 규모의 주거지가 확인되어 산성 안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주거지에서는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지역 고유 양식인 토기 편과 한성백제 중앙 지역의 특징적인 토기 편이 함께 발견되어 한성백제 세력이 지방으로 영향력을 확장해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 유구(遺構): 옛날 토목· 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
  2. 한성백제: 백제가 위례성 (현재 서울)에 수도를 두고 있었던 기간(BC 18년~AD 475년).

영문

영문 해설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