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평 추성산성 - 남성
HeritageWiki
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5월 14일 (화) 03:36 판 (새 문서: {{진행중}} {{개별안내판 |사진=추성산성_남성_주요유구.jpg |사진출처=재)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증평 추성산성 종합정비사업 학술연구...)
남성 南城 |
|
종합안내판: 증평 추성산성 |
해설문
국문
추성산성 남성은 여러 차례 발굴 조사를 통해 4~5세기 백제가 흙으로 성벽을 쌓아 올려 축조한 산성으로 밝혀졌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토대로 성 안에 거주했던 사람들의 자취를 추정할 수 있다.
유구[1]의 특징으로는 첫째, 남쪽 성벽의 성문(城門)이 통행로와 배수로의 역할을 동시에 하여 성문과 수문(水門)의 분화 전 단계를 확인할 수 있다. 둘째, 한성백제[2] 때 산성 중 최초의 돌로 쌓은 우물과 터널 형태의 배수 시설이 확인되어 당시 사람들이 돌을 이용하여 건축물을 축조하는 고도의 기술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셋째, 한성백제 때 산성 중 최대 규모의 주거지가 확인되어 산성 안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주거지에서는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지역 고유 양식인 토기 편과 한성백제 중앙 지역의 특징적인 토기 편이 함께 발견되어 한성백제 세력이 지방으로 영향력을 확장해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 유구(遺構): 옛날 토목· 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
- ↑ 한성백제: 백제가 위례성 (현재 서울)에 수도를 두고 있었던 기간(BC 18년~AD 47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