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 목탑터(익산 미륵사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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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중원 목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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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中院 木塔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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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안내판=익산 미륵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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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den Pagoda Site in the Central Courtyard''' - 논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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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den Pagoda Site in the Center Courtyard''' - 논의 필요
  
 
===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2021년 1월 31일 (일) 16:25 판

중원 목탑터 中院 木塔址
Wooden Pagoda Site in the Center Courtyard
Goto.png 종합안내판: 익산 미륵사지



해설문

국문

탑은 부처님의 사리[身骨]를 모시는 곳이다. 미륵사는 삼원三院의 가람배치로 중원에 목탑을 두고, 동원과 서원에 석탑을 각각 두었다. 이 건물터는 중원의 목탑이 있었던 곳으로, 기단基壇 은 잘 다듬은 돌을 사용하여 상하 이중기단으로 만들었다. 아랫 기단은 면석面石과 덮개석[甲石], 윗 기단은 지대석(地臺石)과 면석 및 덮개석으로 구성되었다. 기단 네 면의 길이는 모두 18.5m로 정사각형 모습이며, 각 면 중앙에 계단을 만들었다. 기초는 메웠던 흙을 깊이 3.5m 정도 다시 파낸 뒤에 사람 머리 크기의 돌을 아래에서부터 1.5m 정도 채워 다졌다. 그 위에 마사토와 점질토를 섞어 3~5cm 두께로 층층이 다져 올라가는 판축(板築)을 했다. 목탑터 기초 아래는 습지의 개흙으로 되어 있어 ‘삼국유사’의 못을 메우고 만들었다는 기록과 같다. 발굴 조사 시 기단 앞에서 발견된 불에 탄 기와들을 통해 목탑은 통일신라 후기 화재로 인해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영문

Wooden Pagoda Site in the Center Courtyard - 논의 필요

영문 해설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