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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이씨 삼효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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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이씨 삼효 정려
세상을 이롭게, 향토문화유산 제11호 전주이씨 삼효정려, 세종특별자치시 공식 블로그 세종 스토리, 네이버 블로그.
대표명칭 전주이씨 삼효 정려
한자 全州李氏 三孝 旌閭
주소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금암리 174-22
지정일 NONE



해설문

국문

전주이씨 삼효 정려는 조선 후기의 효자 이정환(李廷煥)과 그의 손자인 이경설(李景卨), 이경익(李景益) 등 세 명의 효행을 세상에 널리 알려 칭찬하고 기억하기 위해 나라에서 하사한 명정을 현판으로 걸어 놓은 정문이다. 이정환은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묘 옆에 움막을 짓고 6년 동안 죽으로만 끼니를 이었다. 이때 온천으로 가던 현종이 그 사실을 듣고 쌀을 상으로 내렸다고 한다.

그의 손자인 이경설과 이경익 형제는 어려서부터 효심이 깊고 우애가 두터웠다고 한다. 경설이 18세, 경익이 13세 때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묘 옆에 움막을 짓고 3년간 정성을 다해 곁을 지켰다고 한다.

이에 지역 유림들이 글을 올려 이정환은 숙종 7년(1681)에, 이경설·이경익 형제는 숙종 25년(1699)에 명정을 받았으며, 경종 3년(1723)에 세 사람이 같이 정5품 관직인 지평을 받고 정문을 세우게 되었다.

정려는 화강암을 가공한 8각의 높은 초석 위에 둥근 나무 기둥을 올렸고, 네 면에 홍살이 설치되어 있다. 효자들의 정려기가 현판으로 걸려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전주이씨 집안의 이정환과 손자 이경설·이경익 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려이다.

이정환은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무덤 옆에 움막을 짓고 6년 동안 죽만 먹으며 지냈다고 하며, 1681년에 정려를 받았다.

그의 손자인 이경설‧이경익 형제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묘 옆에 움막을 짓고 3년간 곁을 지켰고 이후에도 아버지를 정성을 다해 모셔 1699년에 정려를 받았으며, 1708년에 함께 숨을 거두었다.

지금의 정려는 세 사람의 효행을 기려 정5품 관직에 봉해졌을 때인 1723년에 세워진 것이다. 전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오른쪽부터 이정환, 이경설, 이경익 순으로 모셔져 있다.

참고 자료

  • 세종특별자치시 공식 블로그 세종 스토리,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sejong_story/221946818664 -> 기본 정보 및 사진
  • 디지털세종시문화대전 http://sejong.grandculture.net/sejong/toc/GC07700922 ->정려 입구 정문에는 성구용(成九鏞)이 1969년에 지은 가로 135㎝, 세로 41㎝ 크기의 ‘全州李氏兩世三孝旌閭記’가 걸려 있다. / 원래는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송원리(현 세종특별자치시 한솔동 일대) 만자동 마을 입구에 있었으나,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묘역 이장과 함께 현 위치로 이건(移建)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