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금리 월오헌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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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금리 월오헌 고택
Woroheon House in Ingeum-ri
인금리 월오헌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인금리 월오헌 고택
영문명칭 Woroheon House in Ingeum-ri
한자 仁今里 月塢軒 古宅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월애길 171 (인금리)
지정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30호
지정일 1997년 9월 29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일곽
웹사이트 인금리 월오헌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월오헌 고택은 청송 심씨(靑松 沈氏) 전리판서공파(典理判書公派) 악은공파(岳隱公派) 심명한(沈明漢, 1654~1711)의 7세손인 월오헌(月塢軒) 심동섭(沈東燮, 1846~1924)이 19세기 후반에 지어서 살던 집이다. 집의 이름은 심동섭의 호를 따서 월오헌이라 하였다.

심동섭은 마을에 영락재를 세워서 후학의 교육과 학문에도 힘썼다. 그의 종손인 심규하(沈楑夏)는 일제강점기 때 신간회를 조직하는 등 독립운동을 하였다. 1926년 7월 고택에서 동아일보사 6개 군의 지국장 회의를 개최하고 기자단을 조직하여 일제의 잔악상을 취재하였으며, 1927년에는 신간회 안동지회를 조직하여 고택을 항일운동 본부로 사용하였다.

월오헌은 ‘ㄱ’자형의 안채와 ‘ㄴ’자형의 사랑채가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사랑채는 대청과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고, 왼쪽에는 곳간과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을 두었다. 안채는 안방, 대청, 부엌, 찬방이 있다.

영문

Woroheon House in Ingeum-ri

This is the head house of the Ageungong Branch of the Cheongsong Sim clan. A head house is a residence passed down among the male successors of a family lineage. It was built in late 19th century by Sim Dong-seop (1846-1924, pen name: Woroheon), the 7th-generation descendant of Sim Myeong-han (1654-1711), who was the first person from the Cheongsong Sim clan to settle in the Ingeum-ri area.

The house consists of a men’s quarters and a women’s quarters which together form a square layout with a courtyard in the middle. The men’s quarters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and an underfloor-heated room. To the left is a storehouse with a gate leading into the women’s quarters. The women’s quarters consists of, from left to right, an underfloor-heated room, wooden-floored hall, kitchen, and pantry.

This house and its residents played an active role in the local independence movemen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Sim Dong-seop’s great-grandson Sim Gyu-ha (1906-1976) organized the United Front for Independence (Singanhoe). In 1926, a meeting of the six regional directors of the Dong-a Ilbo Newspaper was hosted in this house, during which it was decided to create a group of reporters for reporting on the cruelties of the Japanese colonial policy. In 1927, when the Andong branch of the United Front for Independence was organized, they used this house as the office and the center for the local anti-Japanese movement.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청송심씨(靑松沈氏) 악은공파(岳隱公派)의 종택이다. 종택은 한 가문의 맏이가 대대로 살아온 집을 말한다.

인금리에 처음으로 정착한 청송심씨 조상인 심명한(沈明漢, 1654~1711)의 7대손 심동섭(沈東燮, 1846~1924)이 19세기 후반에 건립하였으며, 집의 이름은 심동섭의 호를 따서 월오헌(月塢軒)으로 하였다.

심동섭은 마을에 영락재(暎洛齋)라는 서당을 건립하여 후학의 교육과 학문에 힘썼다. 그의 종손인 심규하(沈楑夏, 1906~1976)는 일제강점기 때 신간회를 조직하는 등 독립운동을 하였다. 1926년 7월 고택에서 동아일보사 6개 군의 지국장 회의를 개최하고 기자단을 조직하여 일제의 잔악상을 취재하였으며, 1927년에는 신간회 안동지회를 조직하여 고택을 항일운동 본부로 사용하였다.

고택은 ‘ㄱ’자형의 안채와 ‘ㄴ’자형의 사랑채가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사랑채는 대청과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고, 왼쪽에는 곳간과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을 두었다. 안채는 안방, 대청, 부엌, 찬방을 배치하였다.

참고자료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과 기존 국문에는 전리판서공파(典理判書公派)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파의 시조인 심원부(沈元符)가 고려시대에 전리판서를 지내기는 하였으나, 파보의 명칭은 그의 호인 악은(岳隱)을 따서 악은공파이다. 족보에 기재되어 있는 내용을 참고하여 이들의 생몰년을 확인할 수 있다. 악은공파의 파조인 심원부는 청송심씨 4대손이고, 입향조인 심명한은 17대손, 심동섭은 24대손, 심규하는 27대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