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인금리 월오헌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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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한중연 안내문안 작성

기존 국문

이 건물은 청송심씨(靑松沈氏) 전리판서공파(典理判書公派) 심명한(沈明漢)의 7대손 월오헌(月塢軒) 심동섭(沈東燮)이 19세기 후반에 건립하였다. 그의 증손인 심규하(沈揆夏)는 이상재, 안재홍, 조병옥과 신간회를 조직하고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1926년에는 김국진, 권태석과 함께 안동 신간회(新幹會)를 조직하여 이 곳을 독립운동의 본거지로 삼았다.

건물은 안채의 ‘ㄱ’자형과 사랑채의 ‘ㄴ’자형이 조합되어 전체로는 ‘ㄷ’자형이고 정면 6칸, 측면 6칸 크기의 전형적인 조선 후기 양반가옥이다.

수정 국문

초고

이 건물은 청송심씨(靑松沈氏) 악은공파(岳隱公派)의 종택으로 입향조인 심명한(沈明漢, 1654∼1711)의 7대손 월오헌(月塢軒) 심동섭(沈東燮, 1846∼1924)이 19세기 후반에 건립하였다. 집의 이름은 심동섭의 호를 따서 월오헌으로 하였다.

심동섭은 영락재를 건립하여 후학의 교육과 학문에 힘썼으며, 은계 찰방(銀溪察訪)을 역임하였다. 그의 종손인 심규하(沈楑夏, 1906~1976)는 일제강점기 때 신간회를 조직하여 중앙 간사를 지내는 등 독립운동을 하였다. 1926년 7월 고택에서 동아일보사 6개 군의 지국장 회의를 개최하고 기자단을 조직하여 일제의 잔악상을 취재하였으며, 1927년에는 신간회 안동지회를 조직하여 고택을 항일운동 본부로 사용하였다.

1차 수정

이 집은 청송심씨(靑松沈氏) 악은공파(岳隱公派)의 종택이다. 종택은 한 가문의 맏이가 대대로 살아온 집을 말한다.

인금리에 처음으로 정착한 청송심씨 조상인 심명한(沈明漢, 1654~1711)의 7대손 심동섭(沈東燮, 1846~1924)이 19세기 후반에 건립하였으며, 집의 이름은 심동섭의 호를 따서 월오헌(月塢軒)으로 하였다.

심동섭은 마을에 영락재(暎洛齋)라는 서당을 건립하여 후학의 교육과 학문에 힘썼다. 그의 종손인 심규하(沈楑夏, 1906~1976)는 일제강점기 때 신간회를 조직하는 등 독립운동을 하였다. 1926년 7월 고택에서 동아일보사 6개 군의 지국장 회의를 개최하고 기자단을 조직하여 일제의 잔악상을 취재하였으며, 1927년에는 신간회 안동지회를 조직하여 고택을 항일운동 본부로 사용하였다.

고택은 ‘ㄱ’자형의 안채와 ‘ㄴ’자형의 사랑채가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사랑채는 대청과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고, 왼쪽에는 곳간과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을 두었다. 안채는 안방, 대청, 부엌, 찬방을 배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