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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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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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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호미산성은 호미산의 정상부를 따라 쌓은 둘레 약 438m 정도의 테뫼식 산성*이다. 성은 해발 80~100m 정도에 걸쳐서 쌓았으며, 성벽의 위쪽으로 폭 5~8m의 정도의 순찰 길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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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중동리 고분군은 남산 정상부에서 서쪽 경사면을 따라 4기의 큰 무덤이 있는 유적이다. 1호분부터 3호분은 10m 정도의 간격를 두고 나란히 있으며, 4호분은 3호분에서 동쪽으로 8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모두 오래전부터 심하게 도굴되어 사람들의 출입이 가능할 정도로 무덤의 내부가 노출되어 있었다.  
  
2009년 이루어진 조사결과 호미산성은 삼국시대에 처음 만들어졌으며 통일신라시대에 성을 수리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호미산성은 돌로 쌓은 성벽 뒤에 흙벽을 다시 쌓은 토석혼축(土石混築) 산성이다. 특히 흙벽에서는 벽을 단단하게 다져쌓기 위해 나무 기둥을 세운 흔적도 발견되었다. 성벽은 죽전리 고분의 조성 방법과 비슷한데, 돌로 쌓은 벽은 큰 돌을 다듬은 후 중간 중간 작은 돌을 끼워놓아 수평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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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호분과 4호분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 1호분은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 4호분은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임이 밝혀졌다. 1호분은 동서 17m, 남북 21m, 높이 3.6m정도로 큰 규모의 무덤에 속하며, 2호분과 3호분도 1호분과 크기가 비슷하다. 다만 위쪽에 멀리 떨어져 있는 4호분은 규모가 약간 작은 편이다.  
  
호미산이라는 이름은 산의 모양이 호랑이 꼬리처럼 생겼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며, 망우당 곽재우가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 의병을 배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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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은 도굴로 인해 거의 남아있지 않았으나, 1호분에 딸린무덤*에서 많은 토기들이 발견되었다. 이 유물들을 통해 대략 6세기 초반에서 중반에 만들어진 고분군임을 알 수 있으며, 이 지역의 지배자급 무덤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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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뫼식 산성: 산 정상부의 능선을 따라 테를 두르듯이 돌려 쌓은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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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린무덤: 한 무덤의 옆에 딸린 조그마한 무덤으로, 순장 혹은 껴묻거리만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
  
 
===영문===
 
===영문===
'''Homisanseong Fortress, Uir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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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cient Tombs in Jungdong-ri, Uiryeong'''
  
This fortress surrounding the peak of Homisan Mountain (80-100 m above sea level) was built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It is presumed to have once been repaired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according to a survey conducted in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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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se four tombs are presumed to have been built in the early to mid-6th century for the local rulers.  
  
This fortress was built utilizing the terrain of a cliff over the nearby Namgang River. The stone walls were reinforced with an earthen wall behind it. Some traces of wooden poles erected to support the earthen walls were discove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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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excavation conducted in 1993 revealed that Tomb No. 1 is a stone-lined tomb and Tomb No. 4 is a stone chamber tomb with corridor. Tomb No. 4 is comparatively smaller than the other three and located further to the north.  
  
The fortress measures 438 m in circumference, but many sections of the fortress were damaged and are now used as farm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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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the tombs had been looted, and there were few remaining artifacts inside. However, a large amount of earthenware was found in Tomb No. 1. Other artifacts excavated in this complex include mounted dishes, iron swords, iron axes, and leather pieces for horse equipment.  
 
 
It is recorded that a well-known Korean civilian army leader, Gwak Jae-u (1552-1617), stationed his army here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호미산(해발 80-100m) 정상부를 둘러쌓은 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조되었다. 2009년에 이루어진 조사결과, 통일신라시대에 수리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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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에 있는 4기의 무덤은 6세기 초반에서 중반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산성은 철벽이 있는 남강변을 살려 쌓았으며, 돌로 쌓은 성벽 뒤에 흙벽을 다시 쌓았다. 흙벽을 지지하기 위해 나무 기둥을 세운 흔적도 발견되었다.
 
  
둘레는 438m 이며, 많은 구간이 훼손되고 밭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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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에 실시된 조사 결과 1호분은 구덩식돌덧널무덤, 4호분은 굴식돌방무덤임이 밝혀졌다. 4호분은 다른 무덤들에 비해 규모가 작은 편이다.  
  
의병장인 곽재우가 임진왜란 때 이곳에 주둔했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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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무덤들은 모두 오래전에 도굴되었고, 내부에는 유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1호분에서 많은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이곳에서 출토된 다른 유물에는 굽다리접시, 철검, 쇠도끼, 가죽으로 된 말꾸미개 조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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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의령군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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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3일 (토) 00:33 기준 최신판

의령 중동리 고분군
Ancient Tombs in Jungdong-ri, Uiryeong
의령 중동리 고분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의령 중동리 고분군
영문명칭 Ancient Tombs in Jungdong-ri, Uiryeong
한자 宜寧 中洞里 古墳群
주소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충익로 1-25 (중동리)
지정번호 시도기념물 제189호
지정일 1997년 12월 31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고분군
수량/면적 660㎡
웹사이트 의령 중동리 고분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의령 중동리 고분군은 남산 정상부에서 서쪽 경사면을 따라 4기의 큰 무덤이 있는 유적이다. 1호분부터 3호분은 10m 정도의 간격를 두고 나란히 있으며, 4호분은 3호분에서 동쪽으로 8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모두 오래전부터 심하게 도굴되어 사람들의 출입이 가능할 정도로 무덤의 내부가 노출되어 있었다.

1993년 1호분과 4호분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 1호분은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 4호분은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임이 밝혀졌다. 1호분은 동서 17m, 남북 21m, 높이 3.6m정도로 큰 규모의 무덤에 속하며, 2호분과 3호분도 1호분과 크기가 비슷하다. 다만 위쪽에 멀리 떨어져 있는 4호분은 규모가 약간 작은 편이다.

유물은 도굴로 인해 거의 남아있지 않았으나, 1호분에 딸린무덤*에서 많은 토기들이 발견되었다. 이 유물들을 통해 대략 6세기 초반에서 중반에 만들어진 고분군임을 알 수 있으며, 이 지역의 지배자급 무덤으로 보인다.


  • 딸린무덤: 한 무덤의 옆에 딸린 조그마한 무덤으로, 순장 혹은 껴묻거리만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

영문

Ancient Tombs in Jungdong-ri, Uiryeong

These four tombs are presumed to have been built in the early to mid-6th century for the local rulers.

An excavation conducted in 1993 revealed that Tomb No. 1 is a stone-lined tomb and Tomb No. 4 is a stone chamber tomb with corridor. Tomb No. 4 is comparatively smaller than the other three and located further to the north.

All the tombs had been looted, and there were few remaining artifacts inside. However, a large amount of earthenware was found in Tomb No. 1. Other artifacts excavated in this complex include mounted dishes, iron swords, iron axes, and leather pieces for horse equipment.

영문 해설 내용

이 곳에 있는 4기의 무덤은 6세기 초반에서 중반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1993년에 실시된 조사 결과 1호분은 구덩식돌덧널무덤, 4호분은 굴식돌방무덤임이 밝혀졌다. 4호분은 다른 무덤들에 비해 규모가 작은 편이다.

이곳의 무덤들은 모두 오래전에 도굴되었고, 내부에는 유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1호분에서 많은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이곳에서 출토된 다른 유물에는 굽다리접시, 철검, 쇠도끼, 가죽으로 된 말꾸미개 조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