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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송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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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10월 23일 (금) 02:4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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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송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Clay Seated Sakyamuni Buddha Triad and Excavated Relics of Songgwangsa Temple, Wanju
대표명칭 완주 송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영문명칭 Clay Seated Sakyamuni Buddha Triad and Excavated Relics of Songgwangsa Temple, Wanju
한자 完州 松廣寺 塑造釋迦如來三佛坐像 및 腹藏遺物
주소 전북 완주군 소양면 송광수만로 255-16, 송광사 (대흥리)
지정번호 보물 제1274호
지정일 1997년 8월 8일
분류 유물/불교조각/소조/불상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일괄 (불상 3구, 복장물 2종 6점)
웹사이트 완주 송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곳 삼존불은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상을 안치했으며 석가여래는 5.5m, 양쪽 협시불은 5.2m 높이로, 흙으로 빚었고(은) 우리나라 삼존불상 중 큰 편에 든다.

1993년 불상 안에 들어있던 복장유물 12종 가운데 불상조성기 유물 3점, 다섯 개의 거울과 오보병, 수정이 발견된 후령통 3점은 보물로 일괄 지정되었다.

석가여래상에서 나온 조성기에 따르면, 이 삼불좌상은 인조 19년(1641) 6월 29일에 임금과 왕비의 만수무강을 빌고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기 위하여 조성한 것이다. 조선 후기 불교 중흥을 이끌었던 고승 벽암 각성(碧巖 覺性, 1575~1660)이 시주하고, 청헌(淸憲) 등 17인의 승려 조각가가 참여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국난 극복의 의지를 반영하여 당시의 문화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한 것으로 평가된다.

영문

Clay Seated Sakyamuni Buddha Triad and Excavated Relics of Songgwangsa Temple, Wanju

영문 해설 내용

이 삼불좌상은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로 구성되어 있다. 석가여래상과 양쪽 협시불상의 높이는 각각 5.5m, 5.2m이며, 한국에 남아있는 흙으로 빚은 삼존불상 중 큰 편에 속한다.

1993년 불상 안에서 발견된 복장유물 중 불상조성기 3점, 다섯 개의 거울과 오보병, 수정이 발견된 후령통 3점이 보물로 일괄 지정되었다.

석가여래상에서 발견된 조성기에 따르면, 이 삼불좌상은 1641년 임금과 왕비의 만수무강을 빌고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기 위해 조성한 것이다. 조선 후기 불교 중흥을 이끌었던 고승 각성(1575-1660)이 시주하고, 청헌 등 17명의 승려 조각가가 참여하였다. 전쟁 이후 국난 극복의 의지를 반영하여 당시의 문화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한 것으로 평가된다.

참고자료